적자 개선 자구 노력 없이 '공공재' 지하철역명 팔아도 되나

입력
2022.06.07 04:0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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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통공사, 부역명 판매 전역 확대 계획
공공성 훼손 우려와 적자 근본 대책 요구돼
"요금 인상과 무임승차 보전 없어 최선의 방법"

서울지하철 2・3호선 을지로3가역 안내판에 부역명이 병기돼 있다. 서울교통공사 제공

서울지하철 2・3호선 을지로3가역 안내판에 부역명이 병기돼 있다. 서울교통공사 제공

서울교통공사가 연간 1조 원대 적자를 줄이기 위해 지하철 부역명 판매를 모든 역사로 확대키로 한 것을 두고, 공공성 훼손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지하철 요금 인상과 무임승차 국비 보전 등 정부와 서울시의 노력이 지지부진하자, 공사가 역명 판매로 손쉽게 돈을 벌려고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교통공사는 6일 "서울지하철 1~8호선 275개 역 가운데 시에서 무상으로 부역명을 병기하는 67개 역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역에 부역명 판매 사업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재 공사에서 부역명을 판매해 운영 중인 역은 33개로, 공사는 연내 100개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6년째 부역명 판매 사업을 시행 중인 서울교통공사가 올해 공격적으로 사업에 나선 이유는 사상 최악의 적자 때문이다. 공사의 당기순손실은 수년 전부터 수천억 원대를 이어오다 2020년 코로나19로 승객이 감소하면서 1조1,137억 원을 기록했다. 공사는 지난해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시도했지만 노조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운수 수입 개선을 위한 지하철 요금 인상과 무임수송 국비 보전도 답보 상태라, 공사는 부대사업인 부역명 판매 사업 확대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공공재 성격이 강한 역사 명칭을 특정 기관이나 기업이 점유할 경우 지역과 무관한 이미지가 씌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년 전 사교육업체 에듀윌이 노량진역 부역명 공개 입찰에 나섰다가, 동작구 주민 97%가 반대하는 등 극심한 반발에 부딪혀 무산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또 유동인구가 많고 인근에 기업이 많이 자리 잡은 지하철역에선 과열 경쟁이 일어날 우려도 있다. 이번에 입찰에 나온 유동인구 1위 강남역은 최소 입찰가가 8억7,598만 원으로, 기존 최고가인 을지로3가역(8억7,400만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부역명 판매가 공사 경영을 개선할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점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공사의 대규모 적자 발생 원인은 부대사업의 수익성 악화보다는 7년째 동결된 지하철 운임과 고령층 무임수송의 영향이 크다. 2020년 기준 서울지하철 1인당 평균 수송원가는 2,061원으로, 1인 요금(1,250원)과 비교했을 때 승객 한 명당 800원의 적자를 보는 구조다. 2020년 무임수송 적자는 2,643억 원으로 그해 당기순손실의 23.7%를 차지했다.

교통 전문가들은 부역명 판매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미국 등 해외에선 민간 기업이 기부채납 등 지하철역 건설에 도움을 준 경우에 한해서 선별적으로 부역명을 병기한다"며 "공공재인 지하철 역명을 단순하게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판매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이에 대해 "공개입찰을 하더라도 심의위원회를 거치기 때문에 공공성이 훼손될 우려는 적다"며 "부역명 판매로 적자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순 없겠지만, 코로나로 요금 인상이 어려운 상황에선 최선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우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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