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의사는 영원한 의사?

입력
2022.06.05 18:00
22면
구독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신경계에 치명적인 약들을 지인에게 불법 투여한 뒤 지인이 사망하자 시신을 유기한 산부인과 의사 A씨에게 다시 의사면허를 주라는 지난달 30일 법원 판결에 보건복지부가 항소했다. 법원은 A씨가 중대한 과오를 범했지만 반성하는 게 확실해보이니 의료인으로서 재기할 기회를 주는 게 공익에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온라인은 들끓었다. “살인면허를 주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판사 가족이 죽어도 저런 판결을 할까”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 A씨는 2012년 7월 서울 자신의 병원에서 잠 좀 푹 자게 해달라는 지인의 요청을 받고 향정신성의약품과 마취제를 마구 섞어 주사했다. 지인은 곧 약물 중독으로 숨이 멎었다. A씨는 시신을 공원에 버렸다. A씨가 징역 1년 6개월 실형을 살고 출소한 뒤 2014년 8월 복지부는 A씨의 의사면허를 취소했다. 취소 기간 3년을 채운 뒤 A씨는 면허 재교부를 신청했는데, 복지부가 이를 수용하지 않자 소송을 제기했고 1심에서 이겼다.

▦ 복지부는 끝까지 간다는 입장이다. 2011~20년 사이 재교부 신청이 들어온 103건 중 100건에 복지부가 의사면허를 내준 걸 감안하면 이례적인 의지다. 복지부 관계자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기 때문에 재교부는 안 된다”고 말했다. 사건은 대법원까지 가야 매듭지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면허당국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1심과 같은 판결을 내리면 A씨는 재기의 기회를 얻게 된다.

▦ 금고 이상 형을 받으면 직무 관련성이 없어도 의사면허를 취소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개정안엔 실형 집행종료 후 5년 동안 면허 재교부가 불가능하도록 결격 기간을 추가했다. 그런데 개정안이 통과돼도 A씨 같은 사건이 발생할 경우 시간만 더 걸릴 뿐 면허를 다시 받을 수 있는 건 마찬가지다. 대한의사협회는 “중범죄는 면허 결격 사유를 강화해야 한다”면서도 A씨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는 게 타당한지에 대해선 “개별 사건이라 공식 입장이 없다”고 했다. 국민의 법감정으론 살인한 의사에게 진료받을 가능성을 차단하는 게 공익이다.

임소형 논설위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