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아시아 순방의 주요 목적 중 하나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동맹국들과의 공조 강화였다.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으로 규범 기반 국제질서에 위협이 증가하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미일 협력이 강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문제를 두고 미국과 아시아 우방국 사이의 공동 전선은 선명해지고 있다.
그런데 중동의 미국 동맹국들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으로 국제유가 상승을 멈출 여력을 지닌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미국의 증산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미국의 대표적 중동 우방국인 이스라엘마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과 서방 제재의 동참을 꺼리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이스라엘 국영 군수기업 라파엘이 개발해 독일에서 생산한 스파이크 대전차 유도미사일을 우크라이나로 보내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이스라엘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왜 미국의 중동 우방국들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하나같이 중립적 태도를 보임으로써 사실상 러시아의 손을 들어 주고 있을까?
사우디 같은 걸프 지역 미국 우방국들은 미국의 탈중동 정책에 대해 불만이 누적되어 있다. 특히 워싱턴의 소극적인 안보 지원에 대해 반발해 왔다. 2019년 사우디의 아람코 석유 시설이 공습을 받았는데도, 미국이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서 불안이 고조됐다. 이후 예멘 내전을 돌아보지 않는 미국을 향한 사우디의 반발은 2021년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 강화협정 체결로 이어졌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전 장기 저유가 기조에 따라 러시아와의 에너지 협력 필요성이 커진 측면도 있다. 당시 미국의 막대한 셰일오일 생산은 저유가의 일등 공신이다. 이 때문에 걸프 산유국들은 2016년 12월 비(非)OPEC을 이끄는 러시아와 협력을 도모한 OPEC+(오펙 플러스) 회의를 출범시켰다. 에너지 협력의 흐름 속에서 2019년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사우디의 리야드를 방문하였고, 러시아·사우디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전략적 헤징(위험회피)의 차원을 넘어서 중동에 대한 미국의 비전과 가치를 거부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인권과 민주주의 등 미국이 강조하는 가치가 중동에서 먹혀들지 않는다는 얘기다. 리비아 내전 기간 사우디와 UAE가 군 출신 스트롱맨으로 알려진 칼리파 하프타르를 지원한 것은 이러한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한편, 이스라엘은 2000년대 이후 러시아와의 우호 관계를 발전시켜 왔다. 2005년 푸틴이 이스라엘을 방문하자 모셰 카차브 이스라엘 대통령은 푸틴을 이스라엘의 친구라 칭했다. 2012년 이스라엘을 재차 방문한 푸틴은 소련 붉은 군대의 나치 독일 군대 승전 기념물 개관식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푸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자 하는 이스라엘 국민과 유대인들에 대해 깊은 존경을 표시했다. 이러한 양국 협력의 연장선상에서 2022년 3월 나프탈리 베네트 총리는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푸틴과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의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에 나서면서도 러시아와 소통을 유지하고 있다. 소련 붕괴로 1990년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대거 이주한 결과, 현재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약 120만 명의 러시아계 유대인들은 양국 협력을 추동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질서의 지각변동이 촉발되는 가운데 중동 우방국들의 외교적 줄타기는 바이든 정부의 고민을 깊어지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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