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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조씨의 유쾌한 은퇴

입력
2022.06.05 22:00
23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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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은 퇴직을 앞둔 K기자였다. K와 산행을 다녀오며 내가 물었다. "이제 뭐 할 생각이요? 회사는 그만둬도 뭐든 해야 할 것 아니요?" K의 대답은 의외였다. "하긴 뭘 해요? 기자 생활 35년 했으면 됐지. 한 1~2년은 원 없이 놀 거요." 맙소사, 놀아? 은퇴하고 논다고? 내색은 하지 않았어도 하산하는 내내 마음만 시끄러웠다. 은퇴도 노는 것도 내 팔자와 무관하다고 여겼건만 그 말이 뇌리에 꽂히고 만 것이다.

평생을 저임금 노동자로 살았다. 열일곱 살, 월급 2000원짜리 금은세공 도제로 시작해, 열흘 철야, 열흘 야근을 해도 월급 2만 원을 넘지 못하는 인쇄공, 시급 2만5,000원에 전국 어디든 달려가야 하는 시간강사, 그리고 죽어라 매달려도 최저임금을 오락가락하는 번역까지. 100권의 번역서도 내 능력과 실력보다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가족 부양은커녕 내 몸뚱아리 하나 건사가 어려운 서글픈 팔자를 반증할 뿐이다. 자본과 임노동의 부등가 교환… 남들은 자문 흉내만으로 수억 원이라는데, 평생을 경쟁의 낙오자에 공정의 열외자로 살아왔구나.

이게 다 K 탓이다. 그 양반만 은퇴하지 않았던들, 은퇴하고 놀겠다고 선언만 하지 않았던들, 그저 팔자려니 이 비생산적이고 비인간적이고 비벌이적인(?) 노동을 이어갔을 터인데 그만 의지에 브레이크가 걸리고 말았다. 얼마나 더 벌겠어? 쥐꼬리보다 못한 번역료로? 표현을 만들어내기는커녕 어휘마저 증발해버리는 나이 아닌가? 그런데, 나 같은 프리랜서한테도 은퇴라는 게 가능은 한 건가? K야 평생 다니던 직장과 동료를 떠난다는 의미가 있고 퇴직금까지 챙긴다지만 나야 직장이 어차피 집인 데다 이 일마저 끊으면 말 그대로 손가락이나 빨아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문득, 이렇게 늙어 은퇴도 못 한다니! 아, 참 못나게도 살았군. 자괴감만 들었다. 아니 그렇기에 "은퇴"라는 단어는 더욱더 내 일생의 상처를 어루만져 줄 묘약이라도 되는 양, 달콤한 유혹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판타지로 끝났을 은퇴 갈망에 다시 불을 지핀 것은 국민연금이다. 지난달 통장에 생애 최초의 연금이 들어왔다. 59만9,910원.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애매한 액수다. 어차피 자급자족에 특화한 인간이다. "이 정도면 내 입에 풀칠은 하지 않을까?" 어지간한 요리는 직접 해서 먹고, 식재료는 작지 않은 텃밭에서 조달하고, 친구들을 만나도 가난한 글쟁이라며 술값을 못 내게 하지 않는가. 가족들도 다들 어느 정도 밥벌이는 하니 부양도 의미가 없기는 하다. 게다가… 이놈의 국민연금이야, 어차피 노동착취 효율성이 떨어진 노령인구에게 더 이상 노동현장에서 알짱거리지 말고, 이거나 먹고 떨어지라며 체제가 주는 마지막 선물이 아닌가 말이다! 어느 날, 아내에게 국민연금이 찍힌 통장을 보여주며 조심스레 은퇴 얘기를 꺼냈다. 아내는 그간 고생이 많았다며 이제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라고 되레 응원을 해주었다. 오, 브라보 브라보 마이 라이프!

마지막 원고를 넘기자 출판사에서 이메일이 들어왔다. "소설 두 권을 검토해주세요." 난 공손히 답신을 보냈다. "제가 얼마 전 은퇴를 했습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작정입니다." 내 삶을 착취한 망할 시스템에 생애 최초의 빅엿(?)을 날리는 순간이다. 노동할수록 더 많이 빼앗기는 삶이여, 이제 안녕.


조영학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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