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앙리코 마샤스(Enrico Macias)가 발표한 '녹슨 총(Le Fusil Rouillé)'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반전(反戰) 노래다. 1938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 태어난 앙리코 마샤스는 알제리 독립전쟁에서 가족을 잃었다. 전쟁의 비극을 직접 체험한 앙리코 마샤스는 노래를 통해 인류애와 평화를 호소했다.
가사의 대략은 다음과 같다. "숲속 깊은 어딘가에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수풀 속에 놓아 두었던 어느 병사의 녹슨 총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전쟁을 위해 북을 치는 이 세상에서 녹슨 총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더 이상 그 총은 사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내용이지만, 현실은 반전(反轉)의 연속이다. 프랑스인이 된 앙리코 마샤스에 고국 알제리는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며 아직도 입국을 거부하고 있다.
한편, 고향에 돌아가기 위해서 총을 들어야 하는 이들도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그 일례다. 올해 2월 시작된 전쟁은 아직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우크라이나는 그들이 누리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각국에 무기 요청을 하였는데 그중에 한국도 있었다. 전쟁을 끝장내고 고향에서의 삶을 누리기 위해서 총이 필요한 셈이다.
지난 3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은 한국 정부에 소총 수만 정의 무상 지원을 요청했다. 우리 정부는 2만~3만 정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살상용 무기 지원 불가로 방침을 정하고 대신 인도적 지원을 하기로 했다. 4월, 한국 국회에서 진행된 화상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한국에는 러시아의 탱크와 미사일을 막고 우크라이나 국민의 목숨을 살릴 군사 장비가 있다"며 무기 지원을 거듭 요청했다.
이렇듯 전쟁을 종식하기 위해서 녹슨 총 한 자루가 아쉬운 것이 우크라이나의 현실이다. 개전 초기에는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하지 않으면 전쟁이 끝날 것이다, 혹은 러시아·우크라이나의 평화회담과 유엔 중재안이 효과를 낼 것이라는 등 분석도 있었지만, 늘어만 가는 사상자 숫자 앞에 탁상공론이 되었다.
민간인 살상을 자행하는 러시아군의 만행이 드러나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가해자 편을 드는 나라들을 보면서 국제 정치의 비정함을 절감하게 된다.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던 서구사회마저도 전비 부담과 물가 폭등에 '휴전'과 '평화 협정'을 종용하고 있다. 결국 러시아가 점령한 지역을 인정하라는 말과 같다.
국권을 유린당하며 침략에 시달리는 우크라이나를 보니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세상에서 '권리'란 오직 힘이 비슷한 사이에서의 문제일 것이다. 강자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할 것이며, 약자는 자신들이 당해야만 하는 고통을 받을 것이다."
지정학상 최악의 지역에 속한다는 한국도 신냉전 시대에 맞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오자(吳子)'에 이런 말이 있다. "옛날 '승상씨'라는 군주는 덕만 닦고 무력을 소홀히 하다가 망국의 화를 당했고, '유호씨'라는 군주는 군사력만 믿고 전쟁을 일삼다가 사직을 잃고 말았다. 그러므로 영명한 군주는 이를 거울 삼아 안으로 문덕(文德)을 닦고, 밖으로 무비(武備)에 힘쓴다. 군주가 적의 침략을 받고도 나아가 싸우지 않는 것을 정의롭다 할 수 없고, 전쟁에 패하고 나서 죽은 병사의 시신을 보고 슬퍼하는 것을 어질다 할 수 없다."
통수권자가 추구할 의(義)와 인(仁)은 국가에 대한 어떤 위협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현충일을 보내면서 대한민국을 지켜주신 무명용사께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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