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된 혐오의 확성기...진짜 요즘 애들의 목소리는 그게 아닙니다

입력
2022.06.04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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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생의 전장연 대표 강의 반대,
연대생의 청소·경비 노동자 고소...
일부 혐오 목소리가 더 부각돼 보도'
그 혐오 반대하는 수많은 움직임 봐야

지난 5월 26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광장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지지하는 서울대 구성원들이 연대서명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전혼잎 기자

지난 5월 26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광장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지지하는 서울대 구성원들이 연대서명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전혼잎 기자


"마치 모두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에 반대하는 것처럼 말하는 일부의 혐오 선동과 달리 연대하고자 하는 서울대 학생들 그리고 시민들이 여기에 실존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을 따름입니다."

지난달 26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광장에 선 '전장연에 연대하는 서울대학교 학생들(전연서)'의 변현준 대표(사회학과 2학년)는 이렇게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20명 남짓의 학생이 모였지만, 한 달가량 진행된 연대서명에 서울대 학부생과 대학원생, 졸업생, 교직원 등 구성원 638명이 이름을 올렸다. 시민들의 서명까지 합해 총 1,127명이었다.

서울대는 지난 5월 18일 박경석 전장연 대표의 로스쿨 강연을 놓고, 학내 비판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는 식의 보도가 나왔다. 보도만 보면 마치 반(反) 전장연 정서가 주류처럼 느껴진다. 익명 기반 온라인 커뮤니티인 서울대의 '스누라이프'나 '에브리타임'에 올라온 글을 근거로 한 기사들이었다.

올해 4월부터 학내 인권단체 등과 연대해 전연서를 만든 변 대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전장연에 대한 비판이 주류로 느껴져 (지지 활동을 하면서) 혹시 폭력을 휘두르거나 욕을 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했었다"고 털어놨다. 막상 서울대입구역에서의 1인 시위 및 연대서명을 받으면서 느낀 학내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변 대표는 "예상보다 훨씬 많이 관심을 가져주고 응원을 해줬다"며 "이렇게 실존하는 600명의 연대하는 서울대 구성원이 있는데 어떻게 온라인 커뮤니티 글 하나 가지고 서울대가 전장연 강연을 반대한다는 기사를 쓸 수 있나"라고 물었다.


지난 5월 26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광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석자가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전혼잎 기자

지난 5월 26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광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석자가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전혼잎 기자

혐오의 목소리가 공론장을 메우고 있다. 소위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로 묶이는 '요즘 애들'이 사회문제에 무심하고 이기적이라는 편견과 함께 혐오를 주도한다는 비판도 흔하다.

한국일보는 장애인과 비정규직 노동자, 성소수자와 함께하는 요즘 애들을 만났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혐오가 과대 대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온라인 세계의 극단 세력이 청년의 전부인 것 마냥 비춰지면서 인권과 연대를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당연시되거나 외면당한다는 이야기다.

학생이 노동자 고소? "15년의 연대 봐달라"

지난해 1월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제4공학관에서 만난 청소노동자 김모씨가 일하는 모습. 김씨는 오후 동안 지하 1층부터 10층까지 층마다 배출되는 쓰레기를 전부 치워야 해 허리 펼 새가 없다고 말했다. 우태경 기자

지난해 1월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제4공학관에서 만난 청소노동자 김모씨가 일하는 모습. 김씨는 오후 동안 지하 1층부터 10층까지 층마다 배출되는 쓰레기를 전부 치워야 해 허리 펼 새가 없다고 말했다. 우태경 기자

최근 한 연세대 학생이 학내 집회를 벌인 청소·경비 노동자들을 고소·고발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수십 개의 기사가 쏟아졌다. 재학생이라고 신분을 밝힌 이는 연세대 에브리타임을 통해 노동자들의 시위로 수업과 총무처 업무를 방해받았다면서 업무방해죄 등으로 지난 5월 9일 서울 서대문경찰서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를 고소·고발했다고 밝혔다. 손해배상 소송도 진행할 예정이라면서 동참할 이들을 구했다.

연세대 학내 노동자들은 2011년부터 매년 학교 내에서 처우 개선을 요구해왔지만 학생으로부터 고발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청소·경비 노동자가 시위를 통해 요구한 것은 최저임금 인상분에 맞춰 내년도 시급을 청소노동자는 400원, 경비노동자는 440원 올려줄 것과 정년퇴직자 발생에 따른 인원 충원, 샤워실 설치였다.

유례없는 고소는 크게 주목받았지만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발표된 연세대 비정규직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의 '매년 끊이지 않는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성명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연세대 학생들은 이 성명서에서 "삶의 최저선을 사수하기 위해 매 순간 거리로 내몰리는 노동자들에게 투쟁은 지겹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라며 시위의 이유를 짚고 지지 의사를 밝혔다.

또 일부 학생들이 노조를 찾아가 대신 사과의 뜻을 전한 일도 있었지만, 이 역시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연세대 비정규직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 지난 5월 19일 발표한 학내 노동자 투쟁 지지 성명문의 일부. 공동대책위원회 제공

연세대 비정규직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 지난 5월 19일 발표한 학내 노동자 투쟁 지지 성명문의 일부. 공동대책위원회 제공

사실 연세대 청소·경비 노조는 출발부터 재학생의 연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포럼에 참여한 연세대 학생들이 학내 노동자 인권실태조사를 진행하다가 2007년 대학 내 비정규직 문제를 고민하는 학생모임 '살맛'을 만들었고 이는 노조가 만들어지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살맛은 오늘날 공동대책위로 이어졌다. 현재 재학생만 30명이 넘고, 졸업생도 함께 활동하고 있다. 15년째 이어온 '연대'다.

공동대책위의 유해슬(22)씨는 "이번 고소는 노조 혐오가 처음으로 행동으로 드러난 사건이지만 그렇다고 조직력을 갖췄다거나 관련 혐오가 만연해졌다고 판단하긴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고소에 함께하겠다고 나선 이들의 수는 적은 것으로 안다. 그런 이들에게 마이크를 주기보다는 연대하는 사람들이나 노동자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동대책위 역시 청소·경비 노동자 투쟁에 연대하는 서명을 받고 있고 2,400명(6월 2일 기준)이 넘는 이들이 응원의 뜻을 밝혔다.

와해 위기 성소수자 동아리, 더 성장했다

지난 5월 21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성소수자 인권포럼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성소수자 인권포럼 제공

지난 5월 21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성소수자 인권포럼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성소수자 인권포럼 제공

"등록 취소를 통보받은 '열린문'은 와해 위기에 처했지만 많은 연대 속에 전라북도 성소수자 모임 열린문으로 개칭,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지난달 21일 서울에서 열린 14회 성소수자 인권포럼에서 전북 성소수자 모임 '열린문'의 린다(활동명) 비상대책위원장은 2017년 벌어졌던 동아리 인준 취소 사건을 이야기했다. 2016년 전북대 내 비공식 동아리에서 시작된 열린문은 이듬해 사회과학대학 소속 동아리로 인준을 받았지만, 이후 사회과학대 학생회가 구성원의 이름과 성별, 주거 형태, 전화번호 등 명단 제출를 요구하자 이를 거부하면서 등록이 취소됐다.

사회적 편견으로 현실에서 정체성을 숨기곤 하는 성소수자에게 명단제출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린다 비대위원장은 "인준 당시 성소수자 동아리의 특수성이 있으므로 (명단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가 학생회가 바뀌면서 갑자기 요구해왔다"고 전했다. 전북대뿐 아니라 성공회대와 건국대, 한국외대 등에서도 성소수자 동아리를 두고 비슷한 일이 벌어져 정식 동아리가 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역의 인권단체와 다른 지역 성소수자 동아리 등의 지지가 이어졌고, 열린문은 전북대에서는 쫓겨났지만 지역의 성소수자 모임으로 '확대'될 수 있었다. 지역에 연고가 없던 전북대 학생이었던 린다 비대위원장도 동아리 등록 취소가 부당하다고 호소하는 대자보를 보고서야 열린문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는 "(등록 취소는) 슬픈 일이지만 그 안에서 좋은 일도 생겼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우리사회의 인권, 분명히 진보하고 있어"

지난달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민단체 뒤로 대통령 취임식을 위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영등포구청은 윤석열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식을 앞두고 5일 전까지 국회 앞 농성장 자진철거를 요청했다가 반발에 부딪히자 철회했다. 뉴스1

지난달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민단체 뒤로 대통령 취임식을 위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영등포구청은 윤석열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식을 앞두고 5일 전까지 국회 앞 농성장 자진철거를 요청했다가 반발에 부딪히자 철회했다. 뉴스1

인권단체 활동은 혐오를 최전선에서 접하는 일이기도 하다. 대학생 성소수자 인권단체에서 시작한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행성인)에 10년째 몸담은 호림 활동가는 "차별금지법 제정 농성장에서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도 '동성애 반대' 시위를 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이어 "그런 일들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고 상처받는 순간도 있다"면서도 "나와 비슷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있고, 성소수자 인권 의제를 지지하고 동의하는 사람 역시 다양하다는 사실을 확인해나가는 과정이기에 상처만 받지는 않는다"고 했다.

호림 활동가에게 성소수자 인권이 과거에 비해 발전했다고 느끼는지를 묻자 바로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법·제도적인 상황만 놓고 보자면 여전히 10년 전 의제인 동성혼 법제화, 차별금지법 제정 등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인권시민사회 안에서의 확장이나 사법적인 차원의 진전은 체감한다"고 했다. 차별받는 소수자 집단에 성소수자가 포함되고, 트랜스젠더의 법적 성별 정정 시 외부 성기·생식능력 제거 수술 없이도 이를 가능하도록 하는 법원의 판단이 개별적인 차원이지만 있었다는 것.


연세대, 이화여대, 서강대 등 신촌·홍대 권역 대학생들이 모인 배리어프리 보장을 위한 공동행동에서 5월 21일부터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갈리치기하는 서울교통공사와 기획재정부 등을 규탄하는 연대서명을 진행하고 있다. 신촌·홍대 권역 배리어프리 보장을 위한 공동행동 제공

연세대, 이화여대, 서강대 등 신촌·홍대 권역 대학생들이 모인 배리어프리 보장을 위한 공동행동에서 5월 21일부터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갈리치기하는 서울교통공사와 기획재정부 등을 규탄하는 연대서명을 진행하고 있다. 신촌·홍대 권역 배리어프리 보장을 위한 공동행동 제공

연대는 또 다른 연대로 이어지기도 한다. 올해 3월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신촌·홍대 권역 배리어프리 보장을 위한 공동행동(신배공)은 연세대와 이화여대, 서강대 등 인근 대학 학생들이 모인 단체다. 서울대 배리어프리 보장을 위한 공동행동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이들은 전장연 시위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조장하려 대응문건을 만든 서울교통공사에 반성과 사과를 촉구하는 성명문을 낸 데 이어 아직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갈라치기를 계속하는 정부와 정치권을 향한 기자회견도 준비하고 있다.

신배공의 은결(22) 활동가는 "장애인 이동권 시위가 대중에게 공론화됐지만 변한 것이 없다"며 "혐오의 수위만 강해졌을 뿐 누구도 응답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연대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목소리를 내지만 묵살당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혐오에 맞서기 위해 학교에서 발생하는 혐오 발언을 모으고 이를 문제시하는 활동도 기획하고 있다"며 "장애인의 목소리와 동료 시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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