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가 쏘아 올린 '차별금지'... "고개 들 수 있게 됐다" 美 이민계 울컥

입력
2022.06.02 17:34
수정
2022.06.02 18:2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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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여의 짧지만 강력한 메시지...미국 사회 곳곳 반향
'BTS 아시안 혐오 반대' 메시지 지지글 잇따라
미국 학계도 주목 "증오범죄 직면한 아시아계에 큰 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지난달 31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집무실을 나와 건물 밖에서 그룹 방탄소년단을 맞이하고 있다. 백악관 사회관계망서비스 영상 캡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지난달 31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집무실을 나와 건물 밖에서 그룹 방탄소년단을 맞이하고 있다. 백악관 사회관계망서비스 영상 캡처

중국계 미국인 버나뎃 야오(62)씨는 1960년 뉴욕에서 나고 자랐다. 어려서 미국 공영방송 PBS의 어린이 프로그램에 출연했지만, 그 활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당시 미국 TV와 스크린은 온통 '소 화이트(So White·백인 중심)'였다. 배우로 꿈을 키우기 어려웠던 아시아계 소녀는 결국 좌절했다. 그렇게 기회를 놓치면서 자라온 야오씨는 지난달 31일(이하 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방탄소년단이 "다름을 인정하는 게 평등의 시작"이라고 한 아시안 혐오 반대 영상을 보고 울컥했다고 한다. 그는 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아시안 혐오 범죄가 폭증하고 차별이 만연한 미국에서 우리(아시아계)가 고개 들고 다닐 수 있게 해줘 고마웠다"고 적었다.

한국계 미국인인 마크 김 버지니아주 하원의원이 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그룹 방탄소년단의 만남에 대해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라고 적었다.

한국계 미국인인 마크 김 버지니아주 하원의원이 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그룹 방탄소년단의 만남에 대해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라고 적었다.


인도계 미국인 의사인 빈센트 메니즈씨가 한국 그룹 방탄소년단의 미국 백악관 연설 내용을 1일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렸다.

인도계 미국인 의사인 빈센트 메니즈씨가 한국 그룹 방탄소년단의 미국 백악관 연설 내용을 1일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렸다.


"BTS 연설이 이민사회에 힘 줘"

2분여의 메시지는 짧지만 강력했다. 방탄소년단이 백악관에서 "우리는 모두 각자의 역사를 갖고 있다"며 문화다양성을 강조한 연설이 미국 사회에 반향을 낳고 있다. 이민사회에선 "한국인이 백악관에서 한국말로 아시안 혐오 반대 목소리를 내는 걸 직접 본 게 꿈 같다"며 호응했고, SNS엔 영어와 일본어로 쓰인 지지의 글이 쏟아졌다. 미국 학계에선 K팝 아티스트의 백악관 방문이 서구 주류 사회에 아시안에 대한 인식을 바꿀 계기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룹 방탄소년단 리더 RM이 미국 백악관 브리핑룸 마이크 앞에 서 아시안 혐오 반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RM은 이날 영어로 메시지를 전했고, 나머지 멤버 6명은 한국어로 말했다. 백악관 제공

그룹 방탄소년단 리더 RM이 미국 백악관 브리핑룸 마이크 앞에 서 아시안 혐오 반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RM은 이날 영어로 메시지를 전했고, 나머지 멤버 6명은 한국어로 말했다. 백악관 제공

북미와 유럽에서 그간 '공장형 아이돌'로 폄하받던 K팝 아이돌그룹의 백악관 방문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에게 역사적 순간으로 평가받는 분위기다. 한국계 미국인인 마크 김 버지니아주 하원 의원은 "나같이 생긴 누군가가 백악관에서 현 대통령을 만나 정부가 어떻게 '반(反)아시안 혐오'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울 수 있는지 토론하는 것 자체를 상상해본 적이 없다"며 놀라워했다. 미국 등을 향한 반전과 화합의 메시지를 내기 위한 마이크는 그간 비틀스나 U2 등 서구 패권국의 백인 아티스트에게 주로 주어졌다. 이 견고한 유리천장을 깨고 K팝 아이돌 그룹이 세계 정치 무대의 중심에서 목소리를 내는 건 미국 역사상 초유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간 백악관엔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1984) 등이 개별 아티스트로 초대된 적이 있지만, 미국 백인 대통령(조 바이든)이 아시아 가수를 백악관으로 부르기는 방탄소년단이 유일하다. 그레이스 카오 예일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팬데믹(코로나19 대유행)으로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더 많은 증오 범죄에 직면했는데 방탄소년단의 연설이 그 공포를 덜어주고 힘을 줬다"며 "백악관의 이번 초청은 방탄소년단이 세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스피커가 됐는지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방탄소년단이 지난해 3월 SNS에 올린 아시안 혐오 반대 촉구 게시글은 그해 전 세계 트위터에서 가장 많이 리트윗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달 백악관을 방문한 방탄소년단 멤버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바이든 대통령과 '반(反)아시안 증오범죄 대응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워싱턴= EPA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달 백악관을 방문한 방탄소년단 멤버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바이든 대통령과 '반(反)아시안 증오범죄 대응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워싱턴= EPA 연합뉴스


'BTS와 미국 대통령의 만남, 역사가 판단할 것'

미국 대통령과 방탄소년단의 만남은 미국뿐 아니라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의 문화적 중요성을 환기하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이메일로 만난 샘 리처드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사회학과 교수는 "좋든 나쁘든 미국은 세계인들이 나라 밖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상상하는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며 "미국 내 반아시안 혐오 메시지가 중국·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에게서 나왔고, 이 현상은 미국이 아시아를 바라보는 데 한국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집무실 밖 현관 앞에서 두 팔을 들어 올리며 방탄소년단을 환하게 맞았다. 이 환대는 방탄소년단과 K팝의 세계적 영향력을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일 '보이 밴드가 반아시안 증오를 얘기하며 백악관을 휩쓸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1970년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엘비스 프레슬리를 만났을 때만큼 기억에 남는 이미지를 만들었는지 여부는 역사가 판단할 것'이라고 썼다.

K팝 아티스트와 바이든 대통령의 이례적 만남을 두고 세계의 관심이 쏠린 가운데 잡음도 불거졌다. 미국 방송 폭스뉴스 앵커는 자신의 이름을 딴 '터커 칼슨 투나잇 쇼'에서 방탄소년단의 백악관 방문을 두고 "미국의 급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막말했다. 5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계 주민 유산의 달'을 맞아 백악관을 방문한 방탄소년단은 이날 귀국했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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