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분광학과 광기술 분야를 연구하는 고재현 교수가 일상생활의 다양한 현상과 과학계의 최신 발견을 물리학적 관점에서 알기 쉽게 조망합니다
지난달 10일의 신임 대통령 취임식 때 구름을 배경으로 수평으로 배열된 무지개가 뜨고, 같은 날 전임 대통령 사저엔 원형 햇무리가 등장해 화제가 됐다. 지지자들은 드문 대기 현상에 환호하며 자신만의 소원들을 빌었을 것 같다. 고대로부터 무지개는 강력한 시각적 상징으로 해석됐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무지개를 천국을 향한 다리처럼 신성의 현현(顯現)으로 인식했고, 또 다른 문화권은 보는 것만으로도 위험한 악의 출현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과학적으로는 다양한 대기 현상 중 하나일 뿐이다.
비가 내린 후 풍부한 물방울이 대기를 채울 때 태양을 등지고 서면 보이는 무지개, 인류에게 가장 친숙한 반원형 무지개에 대한 과학적 설명은 고대부터 시도됐고 13, 14세기 문헌에 체계적 설명이 등장한다. 태양빛이 물방울에 들어가면서 굴절되고 방울의 뒤에서 반사된 후 다시 굴절되어 빠져나오면서 백색의 빛이 무지개로 갈라진다는 설명이 그것이다. 즉 물방울은 하늘에 떠 있는 천연 프리즘인 셈이다.
프리즘을 구성하는 유리는 백색광을 굴절시키는 과정에서 색깔별로 나눈다. 빛과 유리 속 원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색깔에 따라 꺾이는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뉴턴은 프리즘을 이용해 햇빛을 무지개색으로 나눈 후, 이를 다른 프리즘으로 모아 다시 백색으로 만드는 실험을 통해 햇빛이 다양한 색의 혼합임을 밝힌 바 있다. 백색광을 색깔별로 나누는 성질은 유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플라스틱, 물, 심지어 지구의 대기도 햇빛을 무지개색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럼 5월 초 햇무리나 수평 무지개를 만든 주인공도 물방울이었을까? 하늘에는 또 다른 주인공이 있다. 바로 얼음 알갱이, 빙정(氷晶)이다. 높은 고도로 올라간 물분자는 수소 결합을 통해 육각형 빙정으로 얼며 상층운을 형성한다. 빙정 역시 햇빛을 무지개색으로 나눌 수 있는 훌륭한 프리즘이다. 육각형 빙정은 위아랫면, 측면의 여섯 면 등 총 여덟 개 표면을 갖는다. 햇빛이 어디로 들어가 어느 표면으로 나오는가에 따라 하늘에는 다채롭고 신기한 광학 현상이 펼쳐진다.
우선 햇무리를 떠올려 보자. 햇빛이 빙정의 여섯 측면 중 하나로 들어간 후에 하나 건너뛴 옆면을 통해 빠져나오면 원래 오던 방향으로부터 약 22도 각도로 꺾인다. 이것이 태양을 중심으로 22도의 시야각 방향에 보이는 무리 현상이다. 두 번의 굴절 과정에서 햇빛이 색깔별로 약간 갈라지기 때문에 약한 무지개색을 나타낸다. 만약 빙정이 수평으로 정렬해 드론처럼 편대 비행을 하듯 떠 있으면, 태양의 좌우 22도에 또 다른 두 태양이 나타나듯 보이는 환일(幻日)이 펼쳐지기도 한다.
반원 형태가 아닌 수평 무지개는 어떨까? 이 역시 상층운 속 빙정이 만드는 현상이다. 한낮에 높은 고도의 태양에서 내려오던 빛이 육각형 얼음의 옆면으로 비스듬히 들어간 후 아랫면으로 빠져나오면서 수평 시선의 약간 위에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든다. 이를 '수평호'(水平弧)라 부른다. 반대로 태양 고도가 낮을 땐 햇빛이 육각형 빙정의 윗면으로 들어가 측면으로 꺾이기도 한다. 이 경우 굴절되는 각도가 커서 보통 하늘 위쪽에 찬란한 무지개가 뜬다. 이는 '천정호'(天頂弧)라 부른다. 물방울과 다르게 여덟 면을 가진 빙정은 빛이 들어가고 꺾이고 반사되는 경우의 수가 많아 다채로운 광학 현상들을 하늘에 연출한다.
이런 과학적 설명이 무지개의 아름다움을 빼앗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대기 속 물방울과 빙정이 연출하는 다양한 변주를 상상하며 하늘 어딘가에 숨어 있을 아름다움을 찾는 나침반 역할을 해줄 것 같다. 상쾌한 날 시내를 걸으며 하늘을 슬쩍 쳐다보는 건 어떨까? 놀라운 무지개가 나를 향해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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