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우스갯소리에 '마님은 왜 돌쇠에게 고봉밥을 주었을까?'라는 게 있었다. 여기서 고봉(高峰)이란, 높은 산봉우리로 밥그릇 위까지 수북이 담긴 밥을 의미한다.
예전에는 영양 섭취가 쉽지 않아 밥 양이 무척 많았다. 대접 같은 밥공기에 피라미드처럼 쌓은 후, 푸드파이터처럼 먹는 모습은 구한말 이사벨라 버드 비숍 등 외국인의 눈에는 경악스러운 놀라움을 선사하곤 했다. 그 때문에 이들의 기록에서 한국인의 '위대한 대식'을 찾아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오늘날 우리나라가 먹방의 강국이 된 것도 깊은 연원이 있다고 해야 할까?
얼마나 밥을 많이 먹었으면, 1970년대 박정희 정부는 급기야 식당의 밥공기를 규제하는 특단의 조치를 단행한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규격화된 스뎅(스테인리스) 밥공기가 전국 식당을 장악한 배경이 된다. 오늘날에야 쌀 소비가 줄어서 걱정이지만, 당시만 해도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이 아니던가!
그런데 예전의 고봉밥 문화가 아직도 남아 있는 곳이 있다. 다름 아닌 사찰이다. 사찰에서는 오전 9∼11시 사이에 사시불공이라고 해서 부처님께 진지(밥 공양)를 올리고 기도를 한다. 이는 붓다께서 하루 1끼를 12시 이전에 드셨던 측면을 종교의식화한 것이다.
이때 올리는 진지를 마지(摩旨)라고 한다. 마지란, 손으로 만져서 지은 밥이라는 의미다. 예전에는 나락을 절구로 찧어 껍질을 벗겼는데, 이 과정에서 돌이 섞이고 쌀이 깨지는 일이 다수 발생했다. 이 때문에 귀한 분의 밥은 온전한 쌀만을 일일이 손으로 골라내어 지었다. 이렇게 되면 돌이나 뉘 또는 깨진 쌀이 없는 밥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즉 마지란, 부처님이나 임금님께 올리는 특별한 정성의 밥을 일컫는 말이다.
마지를 담는 그릇을 마지 그릇이라고 하는데, 사이즈가 퍽이나 크다. 그 위에 밥을 수북이 그것도 주걱으로 꼭꼭 눌러 담는데, 어떨 때는 그나마도 뚜껑이 닫히지 않을 정도다.
마지 그릇은 놋그릇을 사용하는데, 이로 인해 마지 뚜껑을 열 때 식겁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갓 지은 밥의 열기가 놋그릇을 생각 외로 뜨겁게 달구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부처님께는 마지밥만 올리지 반찬이 없다는 점이다. 즉 맨밥만 드시는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불상이 통통하고 풍만한 것은 탄수화물 중독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그러나 삼국유사의 '백률사' 편에는 5개가 1벌인 금 그릇과 은 그릇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는 5개 1벌로 이루어진 발우 즉 불교의 식기(食器)이다. 이는 예전 발우에 반찬 등 음식을 담아 올렸던 유풍을 알게 한다. 즉 예전에는 마지밥 외에도 발우에 반찬을 담아 올렸다는 말씀.
그런데 왜 지금은 이런 전통이 사라졌을까? 그것은 조선이라는 숭유억불 시대를 거치면서 사찰의 경제력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사원경제에 빨간불이 들어오자, 부처님 역시 맨밥만 드시게 됐던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반찬만 사라진 게 아니다. 부처님께는 차(茶)도 올렸는데, 이 역시 물로 대체됐다. 이로 인해 오늘날까지 사찰에서는 "내가 이제 청정수를 올리오니, 감로의 차로 변해지이다"라는 염불을 하고는 한다. 세상의 변화 속에서 부처님에 대한 처우도 사뭇 달라졌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또다시 세월이 바뀌었으니, 반찬을 올려도 되지 않을까? 그러나 이번에는 이 또한 오랜 전통이 되다 보니, 오늘날에는 도리어 올리는 것이 어색해지고 말았다. 이래저래 부처님께서는 오늘도 맨밥만 드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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