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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최북단, 절대적 고요와 날것의 자연을 마주하다

입력
2022.06.17 06:0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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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가다]<4> 인천 옹진군 대청도
옆 백령도에 쏠린 관심으로 자연풍광 훼손 덜해
지질공원으로 지정될 만큼 풍부한 관광자원 자랑
백령공항 예타 중...'섬다운 섬' 자랑거리 놓칠 수도

편집자주

3,348개의 섬을 가진 세계 4위 도서국가 한국. 그러나 대부분 섬은 인구 감소 때문에 지역사회 소멸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생존의 기로에서 변모해 가는 우리의 섬과 그 섬 사람들의 이야기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대청도 서풍받이 가는 길에서 내려다본 모래울해변. 수령 100년 안팎의 적송 150그루가 자라고 있다. 대청도=최주연 기자

대청도 서풍받이 가는 길에서 내려다본 모래울해변. 수령 100년 안팎의 적송 150그루가 자라고 있다. 대청도=최주연 기자

대청도(大靑島)는 이름과 달리 그리 큰 섬은 아니다. 서해 최북단 삼형제 섬의 막내인 소청도보다는 크지만, 맏이인 백령도와 비교하면 4분의 1(15.56㎢) 수준이다.

섬 이름은 조선 명종 때 ‘수목이 울창한 큰 섬’이라는 뜻으로 붙여졌다고 한다. 연평도에 논밭이 많은 것과 대조적이다. 경작할 땅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해산물이 풍부해 굳이 쟁기질을 해야 할 필요가 없는 곳이었다.

섬 인구는 계속 줄고 있다. 지난해 2월 기준(소청도 217명 포함) 1,466명에서 현재 1,399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어업 이외에는 마땅한 일거리가 없다 보니 젊은이들은 속속 고향을 등지고 있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배로 4시간...연간 1만6,000명 찾아

대청도는 인천 연안부두에서 배로 4시간(202㎞ 거리)이나 걸린다. 여기에 북한과 마주한 접경지라는 특수성이 섬의 발전을 늦춰왔다. 지방자치단체의 관광개발마저 큰 섬 백령도에 집중됐다. 때문에 2019년 백령도와 함께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알려진 섬이다. 이 섬에는 지금도 택시가 1대뿐이다.

하루 6편의 배가 대청도를 드나든다. 카페리급 여객선이 아니어서 파도가 조금이라도 심하거나 안개가 끼면 결항하거나 연착하기 일쑤다.

지난달 26일 대청도로 향했다. 출항 1시간쯤 지나자 여객선이 파도에 뒤흔들렸다. 승무원은 비닐봉투를 들고 객실을 수시로 돌아다녔고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들렸다. 10여 명은 아예 바닥에 누워버렸다. 마치 테마파크에서 바이킹을 타는 기분이었다.


사람 없어 해변, 산책로 독차지...홍어회가 별미

대청도 농여해변에서 갈매기가 먹이를 찾아 날고 있다. 농여해변에 물이 자박해질 때면 마치 우유니 사막 같은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대청도=최주연 기자

대청도 농여해변에서 갈매기가 먹이를 찾아 날고 있다. 농여해변에 물이 자박해질 때면 마치 우유니 사막 같은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대청도=최주연 기자

푸른 섬 대청도에는 뭍사람들이 그리워할 자랑거리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고요함'의 끝판왕이다. 북적북적한 바쁜 일정의 단체여행객이 아니라면 손쉽게 절대고독에 빠져들 수 있다. 몇 시간 동안 사람을 만나지도 보지 않을 수도 있다. 그저 새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햇빛을 따라 반짝이는 물비늘을 쳐다보며 지칠 때까지 ‘물멍’에 빠지는 곳이다.

섬 어디를 가도 인공구조물이 없다. 툭툭 튀어나오는 해병대 진지랑 막사는 특수지역이니 너그럽게 넘어간다면 이곳 자연은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관광객을 위한 시설이라고는 옥죽동 해안사구의 조망 데크와 검은낭 산책로 정도다. 으레 따라붙는 식당이나 기념품점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이곳은 또 예상 밖으로 홍어회가 유명하다. 남도처럼 삭힌 게 아니라 갓 잡은 홍어를 기름장이나 초장에 찍어 먹는다. 물고기는 큰 게 맛나다지만 다 자라지 않아도 찰지고 고소하다. 소고기로 치면 송아지 고기인 셈이다. 홍어는 이곳에서 태어나 남도를 향해 가면서 살이 올라 비로소 커지고 맛을 채우게 된다. 홍어정식(홍어회, 무침, 홍어애탕, 튀김)은 1인분에 3만 원인데 푸짐해서 다 먹기 힘들다.

농여해변 나이테 바위..."대만 예류공원보다 낫다"

대청도 남서쪽의 서풍받이 절벽. 서풍을 막아준다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대청도=최주연 기자

대청도 남서쪽의 서풍받이 절벽. 서풍을 막아준다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대청도=최주연 기자

농여해변에는 이 섬의 마스코트인 나이테 바위가 있다. 보통 지층은 수평으로 돼 있는데 이 바위는 수직으로 서 있다. 암석이 휘는 습곡작용 이후 풍화작용을 거치며 현재 모습을 갖췄다고 한다. 섬 어디를 가도 수평보다는 대각선 마냥 기울어진 곳이 더 많다. 기암괴석이 즐비한 대만 예류지질공원에 못지않은 곳이다.

해변의 광활한 풀등(썰물 때 드러나는 모래사장)도 자랑이다. 국내 최대 규모인 데다 점점 넓어지고 있어 언젠가는 맞은편 백령도까지 이어질지도 모른다. 백사장 바위 표면에는 파도가 지나간 흔적인 물결무늬가 또렷이 새겨져 있어 신비로움을 더한다.

섬 서남쪽에는 80m 높이의 거대한 절벽, 서풍받이가 자리 잡았다. 규암으로 돼 하얗게 빛나는 표정으로 중국 쪽에서 불어오는 편서풍을 온몸으로 받아낸다. 섬을 찾은 관광객들이 꼭 들르는 트래킹 코스 중 하나다.

모래울해변과 적송보호림도 절경을 뽐낸다. 수령이 80~120년에 달하는 적송 150그루를 산림유전자보호구역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소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서쪽 바다를 쳐다보며 망중한을 즐기는 여유가 일품이다. 사방을 둘러보면 자연도감에서나 봤던 개미지옥이 지천이다. 큰 녀석을 하나 파보니 개미귀신(명주잠자리 유충)이 화들짝 놀라 숨는다.

자연도감에서나 볼 만한 개미지옥, 구렁이도 눈에 자주 띄어


대청도 농여해변의 바위. 사막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대청도=최주연 기자

대청도 농여해변의 바위. 사막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대청도=최주연 기자

옥죽동 해안사구로 가기 위해 선진포항 쪽으로 차를 모는데 길 위에 어른 키만한 구렁이가 꿈틀대며 지나갔다. 밟지 않기 위해 급하게 핸들을 꺾었다. 뒤따라오던 버스도 휘청대며 피했다. 혹시나 해서 차를 되돌려 왔는데 다행히 없었다. 멸종위기종 2급의 귀한 몸을 해칠 뻔했다. 주민들은 "팔뚝만한 구렁이를 접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의 사하라’로 불리는 옥죽동 해안사구는 한때 축구장 60여 개 크기에 달했다. 하지만 40여 년 전 방풍림을 조성하고 난 이후로 많이 줄어들었다. 이곳 속담에 ‘모래 서 말은 먹어야 시집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모래바람은 골칫덩이였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했지만 결과적으로 천혜의 관광자원을 훼손하게 됐다. 논란이 계속되면서 인천시는 방품림을 없애야 하는지를 놓고 면밀히 검토하는 중이다.

원나라 마지막 황제 순제(順帝)가 유배 중 자주 올랐다는 서해5도 최고봉 삼각산(343m)에 오르면 멀리 북한 땅도 볼 수 있다. 순제의 부인은 널리 알려진 드라마 속 기황후다.

대청도는 돌 하나, 풀 한 포기가 가볍지 않다. 두 발로 걸으며 시선을 던지고, 몸을 구부려 만지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면 결단코 이 섬은 아름답다.

어획량 줄어들고 주민들은 관광업에 눈 떠...관광객도 느는 추세



대청도 선진포항 인근에서 한 어민이 그물을 기우고 있다. 어획량이 갈수록 줄어 걱정이란다. 대청도=최주연 기자

대청도 선진포항 인근에서 한 어민이 그물을 기우고 있다. 어획량이 갈수록 줄어 걱정이란다. 대청도=최주연 기자

대청도가 이처럼 매력적인 자연 풍광을 언제까지 간직할지는 미지수다. 관광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민들의 요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획량마저 예전 같지 않아 섬 개발 필요성은 더욱 절실한 실정이다.

선진포항에서 그물 손질을 하고 있던 한 어부는 “최근 4, 5년간 죽을 맛"이라며 "바다에 나가지도 않고 그물 손질이나 하는 날이 더 많다"고 말했다. 과일나무 해거리처럼 물고기도 주기적으로 풍어와 흉어를 되풀이한다지만 고기잡이가 갈수록 쇠락해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선진포 어촌계장 주영철 씨는 “예전보다 확실히 물고기가 잡히지 않는다"면서 "그렇다고 배를 몰지 않을 수는 없으니 참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반면 펜션과 여행사를 운영하는 현청국씨는 “관광객이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50%, 사회적 거리두기 때와 비교하면 3, 4배 늘었다”면서 “주말에 손님이 몰릴 때는 옆 펜션을 알선해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현씨는 섬 내 렌터카가 부족해 인천으로 차량을 구입하러 떠났다. 지난해 1만6,748명의 관광객이 섬을 찾았다.

백령공항 2027년 개장 목표 예타 중...개발 꿈틀

대청도 선진포항 여객터미널에서 관광객들이 배를 기다리고 있다. 꼬박 4시간을 가야 인천에 닿는다. 대청도=최주연 기자

대청도 선진포항 여객터미널에서 관광객들이 배를 기다리고 있다. 꼬박 4시간을 가야 인천에 닿는다. 대청도=최주연 기자

인천시는 2027년 개장을 목표로 백령공항 건설 예비타당성 조사를 추진 중이다. 최북단 비행장이 생기는 셈인데 공항이 생기면 뒤따라 많은 관광객이 들어오고 관련 시설이 우후죽순 들어설 것은 뻔하다. 이에 발맞춰 옹진군은 관광 인프라를 확충할 계획이다.

지질공원해설사 김옥자씨는 “연평도를 거쳐 온 관광객들은 ‘대청도에 오기를 정말 잘했다’고들 한다"며 "일부는 농여해변이 대만 예류공원보다 낫다면서 엄지를 치켜세운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청도는 사람이 아닌 자연이 주는 온갖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섬”이라고 덧붙였다.

‘섬다운 섬’ 대청도. 여전히 외진 섬이지만 갈수록 거세지는 개발의 유혹 앞에 위태로이 놓여 있다.


대청도는

위치: 인천시 옹진구 대청면 대청리

인구: 741가구 1,182명

면적: 15.56㎢

산업구조: 어업

그래픽=김문중 기자

그래픽=김문중 기자


이범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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