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민 위한 것" vs "공공 지원 시설"… 아파트 경로당 '외부인 이용' 논란

입력
2022.05.31 04:30
수정
2022.05.31 08:29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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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시설 할애… 주민 편의 우선돼야"
회원 자격 차등 등 외부인 이용 제한
"지자체 운영비 지원받는데" 볼멘소리
"건축 법령상 필수 부대시설" 지적도

노인복지관, 경로당 등 노인 여가복지시설 정상 운영이 시작된 지난달 25일 오후 어르신이 서울 동작구의 한 노인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인복지관, 경로당 등 노인 여가복지시설 정상 운영이 시작된 지난달 25일 오후 어르신이 서울 동작구의 한 노인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의 한 신축 아파트 단지엔 최근 단지 내 경로당 시설 일부를 어린이 도서관으로 변경해달라는 입주민 집단 민원이 제기됐다. 단지에 사는 노인 가운데 경로당 이용자가 없어 주민 복지에 보탬이 안 된다는 이유였다. 민원에 동참한 A씨는 "경로당이 인근 주택가 어르신들이 와서 화투 치고 노는 장소로 쓰이고 있다"며 "이럴 거면 (경로당을) 주민에게 필요한 시설로 바꾸는 게 맞지 않냐"고 말했다.

아파트 경로당의 '공공성'을 두고 단지 안팎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단지 내부에선 입주민 공동 공간을 할애하는 시설인 만큼 운영에 있어 주민 편의가 우선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아파트는 원칙적으로 경로당 설치 의무가 있고 지자체에서 운영비도 지원받는 만큼 이용자를 가려선 안 된다는 반론도 나온다.

30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고령 인구 증가로 경로당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지만, 아파트 경로당은 외부인 입장을 꺼리는 곳이 적지 않다. 경로당에 따라선 회원 자격에 차등을 두고 단지 주민에게만 정회원 자격을 부여한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아파트 관리비 일부를 경로당에 지원하는 단지라면 이런 '이용자 선별' 분위기가 더 강화된다. 대한노인회 관계자는 "대단지 아파트의 경우 분양 가격에 부대시설 이용 혜택이 반영돼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외부인 제한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외부 이용자들, 특히 부근에 다른 경로당이 없어서 아파트 경로당을 이용하는 이들은 주민들이 보내는 '눈치'를 못마땅해한다. 경기도에 사는 B씨는 옆 단지 경로당을 다니다가 주민이 아니니까 버스로 15분 거리에 있는 노인복지관을 이용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B씨의 손녀 안모씨는 "가까운 곳이라 찾아가셨는데 입주민이 아니면 이용할 수 없다는 이야기에 상심하신 듯하다"며 "노인들은 먼 거리 이동이 어려운데 인심 참 팍팍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경로당은 장소에 관계없이 공공시설 성격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로당은 1998년부터 노인복지법상 노인여가복지시설로 분류됐고, 국토교통부 규정에도 150가구 이상 주택단지를 건설할 땐 주민 공동시설로 경로당을 짓도록 하고 있다. 관련 규정이 2014년부터 입주 예정자의 5분의 4 이상 또는 입주 후 입주자 3분의 2 이상이 동의하면 공동시설 간 용도 변경을 할 수 있도록 완화되긴 했지만, 경로당을 사회 필수 시설로 보는 제도적 관점은 그대로라는 것이다. 아울러 경로당 운영비는 지자체가 전액 보조해주는 만큼 이용에 차별을 둬선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노인 관련 단체에선 지역사회에 노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끔 복지지설이 촘촘히 배치되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한다. 강희성 대한노인회 본부장은 "경로당을 이용하는 고령자는 차를 타고 이동하기 쉽지 않은 만큼 인근 복지시설의 근접성이 중요하다"며 "젊은 세대의 편의주의를 넘어 노인복지 확충을 위해 경로당을 공공재로 받아들이는 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주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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