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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서열 1위' 박지현에 "상의하고 말하라" 집단 훈계한 민주당 86들

입력
2022.05.25 19:30
수정
2022.05.25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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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현, 사과·쇄신론 거듭 주장
당 지도부 "발언 자제해 달라" 경고
박지현, "흔들림 없이 가겠다"

윤호중(왼쪽),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정균형과 민생안정을 위한 선대위 합동회의에서 어두운 표정을 보이고 있다. 오대근 기자

윤호중(왼쪽),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정균형과 민생안정을 위한 선대위 합동회의에서 어두운 표정을 보이고 있다. 오대근 기자

25일 더불어민주당의 6·1 지방선거 선거대책위 비공개 회의장에서 고성이 흘러나왔다. 회의 참석자들이 다투는 소리였다. 싸움의 전선은 1996년생인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 1명 대 86세대(80년대 학번ㆍ1960년대생) 출신 당 지도부 소속 의원 다수. 민주당 관계자가 전한 말싸움의 요지는 이렇다.

▷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 (책상을 쾅 내리치며) "(박 위원장은) 지도부 자격이 없다. 오늘 비대위 회의 안 하겠다."

▷박홍근 원내대표: "여기가 (박 위원장) 개인으로 있는 자리가 아니지 않나."

▷전해철 의원: "(박 위원장은) 앞으로 지도부와 상의를 하고 발언을 하면 좋겠다."

▷박지현 위원장: "그럼 저를 왜 여기에 앉혀 놓으셨나."

박지현 '당 쇄신 요구'에 86세대 “개인 의견”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은 한동안 박 위원장을 '쇄신의 아이콘'으로 떠받들었다. 당 서열 1위인 공동비대위원장에 임명했다. 박 위원장은 왜 약 3개월 만에 집단 질책을 당하는 처지가 됐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당 주류인 '86세대의 퇴진'을 거푸 요구했기 때문이다.

박 위원장은 25일 언론에 공개된 선대위 모두발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2022년 대한민국 정치의 목표는 86 정치인들이 상상도 못했던 격차, 차별, 불평등을 극복하는 것이다. 86세대의 남은 역할은 2030세대 청년들이 이런 이슈를 해결하고 더 젊은 민주당을 만들 수 있게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민주당 강경파가 감싸는 최강욱 의원의 성희롱 의혹에 대해서도 박 위원장은 25일 ‘무관용 원칙’을 재확인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극렬 지지층의 문자폭탄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비대위 비상징계 권한을 발동해서라도 최 의원 징계 절차를 마무리하겠다”고 했다.

박 위원장의 '직언'에 86 당사자인 회의 참석자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일부 참석자들은 한숨을 쉬거나 박 위원장을 노려봤다고 한다.

박 위원장은 24일에도 지방선거 참패 위기에 몰린 민주당의 과오를 대표로 사과하는 기자회견을 하면서 86세대 정치인들의 퇴진, 그들이 방패처럼 활용한 팬덤 정치와의 결별을 주장했다. “개인 의견이다”(윤호중 위원장) “틀린 자세와 방식이다”(김민석 선대위 총괄본부장) 등 공개적인 '훈계'를 듣고도 박 위원장은 물러서지 않은 것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들의 법무법인 인턴 경력 확인서를 허위로 써준 혐의로 기소된 더불어민주당 최강욱 의원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은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들의 법무법인 인턴 경력 확인서를 허위로 써준 혐의로 기소된 더불어민주당 최강욱 의원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은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신의 아이콘’에서 ‘고립무원 처지’로

박 위원장은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에 합류, 2040세대 여성 유권자들을 이재명 전 대선후보에게 결집시키는 데 기여했다. 정파적 이해와 거리를 둔 채 상식과 민의에 부합하는 '바른말'을 거침없이 하는 모습이 화제가 됐고, 힘 있는 미래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검수완박 입법 과정에서 민형배 전 민주당 의원이 ‘위장 탈당’을 하자 “편법을 관행으로 만든 것”이라고 꼬집었고, 차별금지법 입법이 지지부진한 것을 두고 “15년 전 공약으로 내세운 것도 민주당, 15년 동안 방치한 것도 민주당”이라며 반성문을 썼다.

박 위원장은 그러나 최근 고립무원 처지가 됐다. 그를 발탁해 비대위원장 타이틀을 달아 준 당 지도부 가운데 그를 옹호하는 목소리는 없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박 위원장이 돌출 행동을 해 민주당 의원들을 ‘반성을 모르는 정치인’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민주당 주류가 허락하는 쇄신만 말하라"는 게 최근 박 위원장에게 쏟아지는 공격의 요지인 셈이다. 다만 당 지도부 관계자는 “박 위원장과 윤 위원장은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어서 입장을 낼 때는 서로 상의해야 한다”며 “박 위원장이 상의를 하지 않아 절차적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했다.

“흔들림 없이 갈 것” 직진 선택한 박

박 위원장은 강경하다. 25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어떤 난관에도 당 쇄신과 정치개혁을 위해 흔들림 없이 가겠다”며 “좀 시끄러울지라도 달라질 민주당을 위한 진통이라 생각하고 널리 양해해 달라”고 했다.

소수의 지지 목소리도 나왔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SNS에서 “박 위원장의 옆에 함께 서겠다. 박 위원장의 솔직하고 직선적인 사과가 울림이 있었으리라 본다”고 했다. 양이원영 의원은 “박 위원장의 문제가 아니라 듣기 싫은 얘기를 들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상황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정지용 기자
강진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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