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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와 영희가 우리에게 알려준 것

입력
2022.05.24 22:00
27면
tvN '우리들의 블루스' 영상 캡처

tvN '우리들의 블루스' 영상 캡처

초등학교에 들어간 딸에게 "어떤 과목이 제일 좋아?"라고 물었을 때 "체육!"이라고 답했던 때를 잊지 못한다. 휠체어를 타는 딸은 자신도 참여할 수 있는 놀이 규칙을 만들어 가며 친구들과 함께 몸놀이했던 게 그렇게도 좋았나 보다.

그래서일까. EBS의 어린이 프로그램 '딩동댕유치원'에 등장한 휠체어 소녀 캐릭터 '하늘이'를 보고 특별한 감회에 젖었다. "파는 싫고, 체육이 좋다"는 휠체어 탄 아이라니.

놀랄 일이 또 있었다.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다운증후군을 가진 정은혜씨가 '영희' 역으로 등장했다. 실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인 장애 당사자다. 주인공 영옥(한지민 분)의 언니로 성장 과정에 큰 영향을 준 비중 있는 인물로 등장한다.

두 캐릭터의 등장은 분명 한국 방송사에서 획기적 사건이다. 뒤늦은 감도 있다. 등록장애인 인구로만 봐도 5%, 일시적 장애까지 포함하면 전체 인구의 20%가 훌쩍 넘는데 장애인이 주요 인물로 그동안 나오지 않은 게 더 이상한 거다.

그동안 한국에도 장애를 다룬 교양프로그램, 장애를 모티브로 한 영화나 드라마는 제법 많았다. 생각해 보면 서사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엇비슷하다. 선천적 또는 사고나 병으로 인해 후천적으로 장애를 갖게 된 사람이나 그 가족의 어려움…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장애'인'이 아닌 '장애'가 주인공인 경우가 많았다.

EBS '딩동댕유치원' 영상 캡처

EBS '딩동댕유치원' 영상 캡처

'딩동댕유치원'의 하늘이를 보며 또다시 딸을 떠올린다. 고정관념을 타파하기 위해 '휠체어를 타지만 체육을 좋아하는 소녀'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내 딸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체육 '점수'를 받아야 해 수업에서 소외됐다. 운동장 한 켠에 우두커니 있거나 텅 빈 교실이나 도서관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는 장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주변 인물들이 나온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극중 김우빈이 이야기한 "(다운증후군이 있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는 말이 현실에 가깝다.

아직 우리 사회는 장애 수용 정도가 낮아서 이런 현실을 더 많이 보여줘야 할 수도 있다. 장애인이 나와서 돌아다니고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이 부족해서다. 경사로나 엘리베이터 같은 인프라만 말하는 게 아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바깥의 휠체어를 보고도 내릴 생각을 안 하는 이들, 지하철에서 중얼거리는 발달장애 청년을 '위험인물'로 신고하는 이들, 흰 지팡이를 든 시각장애인을 고려 않고 노란 점자블록에 멈춰 서 있거나 킥보드를 세우는 이들. 이런 인식의 장애물이야말로 장애를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딩동댕유치원의 영감이 된 미국 '세서미 스트리트'에는 1970년대부터 무려 25명이나 되는 다양한 장애 캐릭터가 등장했다. 프로그램 작가 중 한 명에게 자폐 아들이 있었다는 게 강력한 계기가 됐다. 작가들은 한 이미지로 고정시키지 않으려고 다양한 자폐인과 가족들을 인터뷰했다고 한다. 자폐성 장애를 가진 줄리아란 캐릭터는 처음 등장 후 고정 캐릭터가 되기까지 그렇게 2년의 세월을 거쳤다.

두 프로그램의 등장을 계기로 감히 바란다. 장애가 방송 주인공이 되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다양한 장애인과 가족들이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기를. 그렇게 장애가 아닌, 사람이 주인공이 되기를.


홍윤희 장애인이동권증진 콘텐츠제작 협동조합 '무의'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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