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한전 최악 적자에 ‘SMP 상한’ 카드… 발전사들 “반시장적 조치” 부글부글

입력
2022.05.25 04:3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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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부담은 줄여줘야 하는데
물가 압박에 전기료는 못 올려
학계·발전업계 "납득이 어렵다"

10일 서울시민이 전력량계 앞을 지나가고 있다. 뉴시스

10일 서울시민이 전력량계 앞을 지나가고 있다. 뉴시스

한국전력(한전)이 발전사에 지불해온 전력도매가격(SMP)에 상한선이 설정된다. 이에 따라 한전의 전력 구매 부담도 다소 줄어들 전망이다. 사상 최대의 적자 늪에 빠진 한국전력공사 구하기에 나선 정부 방침에 따라서다. 한전에 직접적인 재정지원 대신, 사실상 발전사 이익 억제 방식으로 한전의 부담을 줄여주겠단 얘기다. 이에 대해 발전사들은 “시장 흐름을 거스른 조치”라며 반발하고 나서면서 정부와 또 다른 충돌도 점쳐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4일 전력시장에 긴급정산상한가격 제도의 신설 내용을 포함한 ‘전력거래가격 상한에 관한 고시’ 개정안을 행정 예고했다. SMP가 비정상적으로 오를 경우 한전이 발전사들로부터 전력을 구매할 때 적용하는 가격에 상한선을 두겠다는 게 골자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한전은 전력 구매 부담은 줄어들면서 발전사들의 수익 또한 감소하게 될 전망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직전 3개월간의 SMP 평균이 과거 10년간 월별 SMP 평균값의 상위 10%에 해당할 경우, 1개월간 상한 가격이 적용된다. 상한 가격은 평시 수준인 10년 가중평균 SMP의 1.25배 수준으로 정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행정예고는 다음 달 13일까지 20일간 이어지고, 이후 규제 심사 과정을 거쳐 이르면 7월부터 개정안이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일단 1분기 연결 기준 7조7,869억 원의 영업손실을 낸 한전 부담도 어느 정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한전은 석유·석탄·액화천연가스(LNG) 등을 이용해 전력을 생산한 발전사들로부터 전력을 사들이고 소비자에게 판매하는데, SMP가 급등하면 한전이 발전사들에 제공할 정산금도 급증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달 SMP는 킬로와트시(㎾h)당 202.11원을 기록, 전년 동월(76.35원)보다 164.7%나 급등했다. 전력 수요 회복으로 수급이 불안했던 가운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까지 발발, 발전 원료인 국제 연료 가격이 크게 뛰면서다. 유연탄 가격은 지난 20일 기준 톤(t)당 436.07달러로 2년에 비해 622%나 급등했고, 같은 기간 유가는 156%, LNG는 398% 뛰었다. 하지만 전력 구매 비용이 많이 늘어났음에도, 판매 가격인 전기요금은 정부가 물가 안정 등을 이유로 억누르면서 한전의 적자 폭은 커졌다.

정부의 이런 방침에 대해 해당업계와 학계를 중심으로 부정적인 시각도 나온다. 한전 적자 문제의 본질인 전기요금을 동결한 채 전력도매가 제한에 나선 건 '언 발에 오줌 누는 처사'란 지적에서다. 실질적으로 한전의 재무 개선 효과가 크지 않은 데다, 한전 적자를 줄이겠다며 애먼 발전사들의 재무악화를 부추기는 ‘개악’이란 얘기다.

정부는 이날 발전사들의 반발을 고려해 전력 생산에 든 연료비가 상한 가격보다 높은 발전사업자에 대해선 연료비 보상 방안 등을 마련했지만, 발전사들은 “실질적인 손해가 클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발전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력시장가격에 상한선을 두는 건 시장 섭리를 거스르는 행위인 데다, 한전 적자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방법도 아니다”며 “추진 방식과 내용 모두 비합리적이어서 발전사 입장에선 도저히 납득이 어려운 조치”라고 꼬지었다.

학계에서도 본질을 피하려는 정부 조치에 우려를 나타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정부가 전기요금을 인상하기엔 부담을 느껴 도매가격을 잡기로 했는데, 이 경우 발전 원가가 SMP 근방에 있는 발전사업자들이 경영상 어려움에 처해 전력 공급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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