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쿠데타 발발일에 치러진 '태국 총선 전초전'…지방선거 야권 승리 유력

입력
2022.05.23 14:45

'反군부' 찻찻 후보 방콕 주지사 사실상 당선
야권, 시의원 선거서도 과반 석권할 듯
"군정 향한 염증, 개혁ㆍ변화 메시지 보낸 것"

22일 무소속 찻찻 싯티판 방콕 주지사(시장) 후보가 선거 승리를 확신하며 지지자들에게 손을 번쩍 들어보이고 있다. 네이션 캡처

22일 무소속 찻찻 싯티판 방콕 주지사(시장) 후보가 선거 승리를 확신하며 지지자들에게 손을 번쩍 들어보이고 있다. 네이션 캡처

태국 권력지형을 좌우할 총선의 전초전 격인 지방선거에서 반(反)군부 기치를 든 야권이 힘을 받고 있다. 공교롭게도 투표일인 22일은 8년 전 쁘라윳 짠오차 현 총리가 군부와 함께 쿠데타를 일으킨 날이다. 야권의 선전에 내년 3월 실시가 유력한 총선 역시 치열한 접전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졌다.

23일 태국 지방선거 비공식 개표 결과에 따르면, 무소속 찻찻 싯티판 방콕 주지사(시장) 후보는 총 138만여 표를 획득, 집권 군부 연립정당인 민주당 소속의 수짯비 수완사왓 후보(24만여 표)에 압승했다. 태국의 지방선거 결과는 일주일 뒤 공식 발표되지만, 5배 이상의 표 차이를 감안하면 사실상 찻찻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셈이다. 태국 야권을 대표하는 푸어타이(Pheu Thai)당 출신의 찻찻 후보는 쿠데타 직후 교통부 장관에서 쫒겨난 반군부 인사에 속한다.

주지사 선출과 함께 진행된 시의원 선거에서도 야권의 선전은 두드러졌다. 아직 전국 집계는 나오지 않았으나 방콕 시의회 50개 의석 중 푸어타이당과 미래선진당(Move Forward) 등 야권은 총 34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팔랑 쁘라차랏(Palang Pracharat)당과 품짜이타이(Bhumjaithai)당 등은 10석 안팎 확보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야권의 대약진은 8년 동안 축적된 군정에 대한 반감이 표출되면서 가능했다는 평가다. 유타폰 이사라차이 수코타이 탐마라티랏개방대 교수는 "시민들이 선거를 통해 현 정권에 싫증이 났다는 분명한 신호를 보냈다"고 분석했다. 지난 2020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반군부ㆍ왕정개혁 시위가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한 것이라는 평가도 제기된다. 나피사 위툴끼앗 나랏스안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이번 투표는 (시위를 주도한) 신세대들이 보낸 메시지로, 그들은 '태국을 개혁하고 변화시킬 새로운 지도자를 원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식 입장 발표를 미룬 군정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가뜩이나 총선 조기 실시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주요 지방선거까지 패했기 때문이다. 현재 연정 내부에선 팔랑 쁘라차랏당 소속 의원들의 이탈이 가시화되면서 '총리 불신임안' 제출 여부로 격론이 이어지고 있다.

파차이 부켓 태국 국가발전행정연구원(NIDA) 교수는 "이번 선거를 통해 군정이 장악했던 방콕이 민주진영의 거점으로 다시 부활했다"며 "이로써 다음 총선은 야권과 집권여당이 정면 충돌하는 선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태국 육군참모총장이던 쁘라윳 짠오차(가운데) 현 태국 총리가 2014년 5월 22일 군부 쿠데타의 당위성을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방콕포스트 캡처

태국 육군참모총장이던 쁘라윳 짠오차(가운데) 현 태국 총리가 2014년 5월 22일 군부 쿠데타의 당위성을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방콕포스트 캡처


하노이= 정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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