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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 연구조사해 놓고 뭉갰다... 재활용 비용 엉망으로 부과하는 환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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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을 배출하는 기업은 매출의 고작 0.1%만 분담금으로 내고, 지방자치단체는 세금으로 수천억 원의 재활용 비용을 메운다. 그런데 왜 정부는 재활용분담금을 올리지 않을까. 혹시 재활용 비용을 몰라서, '이 정도 분담금이면 충분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정부는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2014년 서울과학기술대가 용역을 받아 수행한 ‘생산자책임재활용(EPR) 제도 분담금 단가 산정에 관한 연구’가 그 예다.
당시 서울과기대 연구진은 회수·선별 업체와 재활용 업체를 대상으로 재활용 비용과 수익을 파악했다. 회수·선별 업체 168곳과 재활용 업체 494곳에 설문조사를 배포했고, 그중 21개 업체는 현장조사했다. 참여한 연구원만 13명에 달한다.
실제 한국일보가 박대수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용역 보고서를 보면, 당시 연구는 재활용 비용을 충분히 파악했다고 볼 수 있을 만큼 꼼꼼하다.
연구진은 재활용에 필요한 비용을 파악하기 위해 △폐기물 매입비 △인건비 △차량·시설 감가상각비 △차량·시설 유지비 △전력비 △유류비 △잔재물 처리비 △부지·건물 임차료 △일반 관리비를 다각도로 조사했다. 부대 비용까지 계산한 것이다.
이렇게 공들여 재활용 비용을 조사했는데, 재활용 시장은 여전히 ‘분담금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전문가들은 “환경부가 이런 사정을 다 알고도 기업 눈치를 보느라 분담금을 현실화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황당하게도 연구진이 산출한 분담금은 반영되지 못했다. 실제 연구진이 산정한 금액보다 최대 43%나 낮게 결정됐다.
대표적인 품목이 ‘단일재질 용기류’다. PE·PP·PET 등 단일 재질 플라스틱으로 만든 용기 전체가 해당된다. 배달 용기나 과자·밀키트 속 플라스틱 트레이를 생각하면 쉽다. 연구진은 이런 용기 1kg을 재활용하는 데 분담금 145.2원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러나 다음해 환경부가 책정한 분담금은 83원이었다. 필요한 액수의 57.2%에 그친다. 심지어 이 품목 분담금은 올해에도 104원(PET 재질 용기는 222원)에 그쳐서, 아직도 8년 전인 2014년 비용조차 맞추지 못하고 있다. 환경부는 "매년 재활용 시장 상황과 경제성장률 등을 고려해 분담금 단가를 올리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 비용을 충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비닐 재활용 금액도 턱없이 적게 책정됐다. 연구진은 비닐을 뜻하는 ‘복합재질 필름류’ 재활용에 318.7원이 필요하다고 조사했는데, 2015년 책정된 분담금은 297원에 불과했다.
2018년 ‘폐비닐 수거 거부 사태’를 겪은 뒤, 올해 분담금은 8년 전 기준보다 겨우 35.3원 높은 354원이다. 폐비닐은 모든 회수·선별 업체에 가장 큰 비용을 일으키는 항목이다. 중국이 폐비닐 수입을 금지해 폐비닐 가치가 급락하는 등 재활용 시장 여건이 달라졌지만, 환경부는 폐비닐 재활용 비용 조사·연구를 하지도 않았다.
환경부는 "분담금 단가는 기업과 재활용 사업자로 이뤄진 ‘공동위원회’에서 결정한다"고 반박한다. 분담금은 기업과 사업자 간 합의에 의해 결정될 뿐 환경부가 관여할 수 없다는 취지다.
그러나 환경부는 △법령 제ㆍ개정 △재활용사업공제조합 설립 인가 △주체 간 갈등 조정을 도맡는 제도 운영 기관이고, 실제 공동위원회에는 환경부 담당 과장과 산하 기관인 한국환경공단 본부장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한다. 만약 환경부 말대로 기업과 사업자들이 분담금을 자율결정하고 있다면 사실상 정부가 폐기물 정책을 포기하고 있다는 뜻이어서 더 심각한 문제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에서 생산된 플라스틱 등 폐기물 중 70%는 생산기업에 재활용분담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환경부가 여러 이유로 EPR 적용에 '예외'를 뒀기 때문이다. 그린피스와 충남대가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2017년 기준 EPR 제도로 관리되는 생활계폐기물 플라스틱류는 전체 생산량의 약 30%에 불과하다.
만일 재활용 업체가 100㎏의 폐기물을 처리한다면, 이 중 폐기물을 애초 생산했던 업체로부터 지원받는 돈은 30kg에 불과하게 된다. 만일 재활용분담금이 ㎏당 50원이라면, 재활용 업체는 100㎏을 처리해도 비용 5,000원 중 1,500원만 지원받는다.
앞서 1회 기사에서 지적했듯이, 플라스틱 생산업체가 생산량 전체에 분담금을 부과받는 것이 아니라 '재활용의무율'(단일재질 플라스틱 용기 84.5%)에 따라, 100톤 중 84.5톤에만 분담금이 부과되어서다. 또 연 매출액이 10억 원 미만인 기업 등도 EPR 적용을 받지 않는 등 면제 범위가 너무 넓다.
결국 예외 적용을 받는 폐기물 70%에 대해 재활용분담금을 매기거나, 적용 대상 30%에 대해 분담금 단가를 2배 이상 높이지 않으면 실제 재활용비용보다 턱없이 낮은 '분담금 공백'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
배재근 서울과기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예외 조항으로 인한 분담금 부족 탓에 지자체가 톤당 30만~40만 원씩 예산을 들여 폐기물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내가(생산기업) 생산한 플라스틱은 전부 재활용되어야 한다’는 원칙 하에서 무임승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재활용지원금을 분배하는 방식도 문제다. 플라스틱 등 폐기물 생산업체에서 거둬들인 분담금은, 회수·선별·재활용 업체에 분배되는데 그 기준을 고치는 게 시급하다.
재활용 산업은 회수·선별 업체가 폐기물을 수거하고 재활용 업체가 폐기물을 녹여 재활용하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회수·선별 업체가 먼저 폐기물을 재질별로 깨끗하게 선별하면, 이를 재활용 업체가 사다가 녹여 양질의 재활용품을 만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해외 EPR 제도에서는 지원금을 재활용 업체가 아닌, 회수·선별 업체에 지급한다. 상대적으로 비용이 많이 들고 영세한 회수업체에 지원금을 주고, 이것이 선별품을 거래하는 과정에서 재활용 업체에 흘러가도록 만드는 전략이다.
그러나 한국은 지급 방식이 거꾸로다. 재활용 업체에 지원금을 더 많이 주고 있다. 지난해 EPR 지급액을 보면, 회수·선별 업체에 329억9,800만 원이, 재활용 업체에 1,105억1,100만 원이 지급됐다. 약 3.3배 많은 돈이 재활용 업체로 흘러간 것이다.
배재근 교수는 “제도 도입 초기 회수·선별 업체 중 영세사업자가 많아 관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재활용 업체에 지원금을 지급하도록 제도가 설계됐다”며 “재활용 업체가 지급받은 지원금을 회수·선별업체의 선별품 구입비로 쓰면 다행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기대만큼 돈이 원활하게 흘러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한국처럼 재활용업체에만 분담금을 많이 지원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며 "폐기물 수거·선별 과정에서 가장 비용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쪽에 지원을 늘리고 지자체가 개입해 폐자원 출고량 관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생산자들이 재활용 과정에서 어느 범위까지 책임져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물론 원칙은 ‘자신이 만든 플라스틱은 모두 직접 재활용한다’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생산자가 재활용시장에 위탁하는 구조인 만큼 공공성을 담보할 최소한의 책임을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생산자재활용체계(CITEO)처럼 기업의 분담금이 ‘폐기물 수거·분류·처리작업에 드는 총 기준 비용의 73%를 조달한다’는 식의 원칙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실제 재활용에 드는 비용 파악과 시장 변동에 따른 업데이트도 필수다. 벨기에의 EPR 제도에서는 매년 수거·분류·재활용에 드는 실제 비용과 수거량 추정치를 계산해 다음 해 요금을 정한다. 네덜란드·독일 등도 매년 현황을 반영한다. 반면 우리 정부는 2014년 용역 조사 이후 관련 비용을 정확히 산정한 적이 없다.
근본적으로 한국에선 '재활용'의 범위가 너무 넓어, 목표 재설정도 필요하다. 폐플라스틱을 다시 플라스틱제품으로 만드는 물질재활용이 '진짜 재활용'인데, 소각해서 에너지로 쓰는 것 등도 모두 동일선상에 놓는다.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이사장은 “똑같은 재질의 상품을 그대로 만들어 내는 것이 최고의 재활용이자 앞으로 추구해야 할 자원순환”이라며 “재활용체계와 기업의 책임을 재설정할 때도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향이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플라스틱의 나라, 고장난 EPR
<1>플라스틱 쏟아내도 푼돈만 부과
<2>벌칙금조차 너무 적다
<3>부족한 비용은 세금으로
<4>누더기 산정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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