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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겪고 보니 "코인 위험" 경고 꾸짖던 정치인들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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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충격으로 시작된 '유동성 잔치'가 끝나가는 2022년, 서서히 위축되던 암호화폐 시장이 '루나 사태'라는 '예견된 폭탄'을 맞았다. 세계 암호화폐 시장에서 급성장하던 한국산 '스테이블코인' 테라USD와 그 쌍둥이 코인인 루나가 사실상 '상장폐지'에 몰릴 정도로 급격히 몰락한 사건이다. 전 세계의 투자자들이 손실을 호소하고 있지만, 사실상 '피해 구제'라는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 '무법지대'인 코인 시장의 특성상 이들을 구제할 수 있는 수단은 코인시장의 '선의' 외에는 찾을 수 없다.
불과 1년 전인 2021년, 금융당국이 암호화폐를 투기성 자산으로 간주하며 보호할 수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자, 국회는 여야를 막론하고 대거 훈계조로 나왔다. "2030세대의 열광"을 이유로 들며, 타당한 우려마저 "꼰대적 발상"으로 치부했다. 이때 국회의원들은 투자자를 '보호'하겠다며 여러 법안을 내놨지만, 모두 발의만 했을 뿐 제대로 논의하지 않았다. 정치권은 대선이라는 큰 이벤트에 휘말려 1년의 시간을 흘려보냈고 이때 호통을 친 정치인 중 일부는 지방선거에 출사표를 냈다.
그동안 정부와 암호화폐 시장의 관계는 잠정 적대 관계로 이해됐다. 2018년 당시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가 목표"라는 발언을 했다가 당시 청와대가 정정하는 일이 발생했다. 암호화폐 투자자들 사이에서 이 사건은 '박상기의 난'이라 부르며 비웃음거리로 회자됐다.
2018년이 '박상기의 난'이었다면 2021년은 '은성수의 난'이었다. 은성수 당시 금융위원장이 암호화폐를 "화폐로 인정할 수 없다"면서 "가상자산에 투자한 이들까지 정부가 다 보호할 수는 없다"고 발언한 것이 문제가 됐다. 그는 "사람들이 많이 투자한다고 보호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거나 "하루에 20%씩 올라가는 자산을 보호해 주면 오히려 더 그쪽으로 간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암호화폐 투자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로 볼 수 있는 발언이었음에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유난히 거세게 반발했다. 이광재 민주당 의원은 "암호화폐 시장이 위험하니 막겠다는 접근은 시대착오적"이라며 "우리가 인정하지 않는다고 사라질 게 아니다. 폐쇄한다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다가 현재는 6·1 지방선거 강원지사 후보로 나섰다.
역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한 박용진 의원은 "아무런 투자자 보호 대책 없이 단속만 하려는 인식으로는 4차 산업혁명은 말도 꺼내지 말아야 한다"면서 "블록체인 기술은 장려한다면서 비트코인은 단속하겠다는 생각은 꼰대적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노웅래 의원은 "코인 투자자 중 누가 정부에다가 손실을 보상해 달라고 했나"라면서 "가상화폐를 미래 먹거리로 활용할 생각은 안 하고 투기 수단으로만 폄훼하고 규제하는 건 금융권의 기득권 지키기이자 21세기판 쇄국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전용기 의원은 "기성세대의 잣대로 청년들의 의사 결정을 비하하는 명백한 꼰대식 발언"이라고 주장했다.
지금의 국민의힘(당시 야당) 측 정치인들도 빠지지 않았다. 홍준표 당시 무소속 의원은 "청년들이 돌파구로 택한 비트코인을 불법으로 몰아간다면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신기술이 모두 사장되는 시대 역행이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국민의힘으로 복귀해 대선 경선에 나섰다가 탈락한 후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당시 제주지사)은 자신이 경험 차원에서 비트코인을 구매했다고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코인러들의 절박한 광풍을 정부가 너무 나 몰라라 했다"면서 "범죄 소탕하듯 박멸시키는 방식은 잘못됐다. 그러면서 무슨 디지털 혁신을 이야기하나"라고 주장했다.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은 "600만 명의 블록체인 가상화폐시장을 못 본 척한 채 관 주도와 규제로 장악 가능한 시장이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사고"라면서 "블록체인 미래 도로가 깔리고 있는데 미래차는 거부한 채 범칙금만 떼러 다닌다"는 주장을 폈다. 김 의원은 경기지사 선거에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한 상태다.
쏟아지는 비판 속에 은 위원장은 "코인이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는 위험을 강조했던 것"이라고 반박했지만, 당시 활황을 누리던 암호화폐 시장의 분위기와 그 기반 기술이라는 '블록체인'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 속에 묻혔다. 은 위원장은 그해 8월 임기 1년을 남기고 사의를 표명했다.
여야 의원들이 은 위원장을 향한 '비판 퍼포먼스'에 앞장선 것은 당시 코인 투자에 친화적으로 알려진 '2030 민심'을 잡겠다는 의도로 해석됐다. 당시 민주당이 4·7 재보선에서 참패한 원인으로 2030 민심을 지목하면서 이를 되돌리기 위해 이런 행동을 했고, 국민의힘은 지지를 유지하기 위해 비판 대열에 동참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암호화폐의 투기성은 인정하면서도 "투자자를 보호하고 사기를 막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의원들이 약속한 '암호화폐 투자자 보호'는 사실상 말뿐이었다. 의안정보시스템을 보면 21대 국회에서 '가상자산산업법' 등 가상자산의 성격을 규정하려는 신규법안은 7개가 등장했고, 이외에 특정금융정보법과 전자금융거래법을 개정하는 방안 등도 제시됐지만, 이들 모두 법안심사소위를 통해 상정된 후 추가 논의가 없었다.
여야는 가상자산을 법적으로 규정하는 데 실패하고도 '규제 공백'을 이유로 내세우며 가상자산 수익에 대한 과세를 1년 유예한다는 소득세법 개정안만 간신히 통과시켰다. 대선 유력 후보였던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모두 암호화폐 투자자 보호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윤석열 대통령의 인수위원회는 가상화폐 과세 시기를 내후년까지 1년 더 늦추겠다는 입장을 검토했다. 내세운 이유는 동일하다. 법이 없고 제정할 시간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루나 사태'가 터진 현재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루나와 테라의 폭락으로 인한 피해 실태 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사실상 금융당국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거래소에는 정보제출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은 위원장의 후임인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17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근거법이 없어 별도 조치가 어렵다"면서 "투자는 본인 책임 영역이긴 하지만 투자자들이 각별히 유의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방향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암호화폐 시장에 간섭하는 정부' 대 '자유로운 암호화폐 시장'의 구도는 한국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비슷하게 나타나 왔다. 정부에 비해 의회 의원들이 상대적으로 암호화폐에 우호적인 발언을 내놓는 분위기 역시 비슷하다. '집무실 불륜 키스' 사건으로 보건장관직을 사임한 맷 행콕 영국 보수당 의원이 최근 '크립토마니아'로 변신해 입지를 되살리려 노력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루나 사태'는 이런 분위기를 뒤집는 결정적 전환점이 되고 있다. 미국에선 그동안 달러 등 현금을 담보로 가치를 유지하는 스테이블코인을 금융 건전성 규제 차원에서 관리하자는 의견이 많았지만 이번에는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제까지 검토되는 상황이다.
암호화폐의 제도권 편입에 우호적 입장으로 알려졌던 신시아 루미스 공화당 상원의원은 키어스틴 질리브랜드 민주당 상원의원 등과 공동 검토 중인 암호화 규제 체계에서 '테라(UST)' 같은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 발행 유인을 없애는 방식으로 "사실상 차단"하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암호화폐 시장 자체를 전방위적으로 제도권에 편입하려는 시도도 있을 수 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11일 상원 의회에 출석해 암호화폐 규제를 의회에서 빠르게 도입해달라고 밝혔지만, 재무부 내부에서는 '루나 사태'로 인해 상황에 따라서는 의회의 움직임 없이도 규제적 대응에 나설 명분이 섰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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