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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억을 어디서" 갱신만료 세입자의 눈물... 전세대란 째깍째깍 [이코노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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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제의 답은 현장에 있습니다. 박일근 논설위원이 살아 숨쉬는 우리 경제의 산업 현장과 부동산 시장을 직접 찾아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9,510가구의 국내 최대 아파트 단지인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는 2018년 말 입주했다. 당시 물량 폭탄에 전용 84㎡ 전세 보증금은 6억 원대에 형성됐다. 2년 뒤 재계약 시점이 됐을 땐 계약갱신청구권(2년+2년)과 전월세상한제(5%)를 골자로 한 임대차법 시행으로 3,000만 원 정도만 올려 계약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올 하반기 2년 계약 만료가 다가오며 밤잠을 못 이루는 세입자가 적잖다. 이번엔 보증금을 집주인 요구대로 올려줄 수밖에 없는데 최근 전세 시세는 12억 원까지 치솟았다. 계속 살려면 5억 원 이상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J부동산중개사무소 관계자는 “계약갱신청구권이 끝나기만 기다리며 벼르고 있는 집주인이 한둘이 아니다”라며 ”5억 원을 대출받아 보증금을 올려주거나 1억 원당 30만 원씩 150만 원의 월세를 추가로 내야 하는 세입자는 곡소리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임대차법 시행 2년 전세폭등 폭풍전야
강북도 금액의 차이만 있을 뿐 사정은 비슷하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 중계주공5단지 84㎡ 전세 시세는 7억 원을 넘지만 계약갱신청구권을 쓴 물건은 5억 원도 안 된다. 임대차법 시행 2년이 되는 8월부터 이런 물건은 최소 2억 원은 올려 줘야 재계약이 가능하다. E부동산 대표는 “집주인들은 앞으로 4년간 시세까지 감안해 전세 보증금을 올려 받겠다는 생각이라 8월 이후 전셋값은 더 뛸 수도 있다”며 “이미 원수가 된 임대인과 임차인이 많은데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울 마포구 도화동 도화현대1차 68㎡ 전세 가격도 계약갱신청구권 물건은 4억 원 안팎이지만 신규 계약 시세는 6억 원 이상이다. 같은 날 계약한 같은 층 아파트 전세도 이렇게 차이가 난다.
갱신과 신규 계약 보증금 차 1.5억
부동산R114가 지난해 6월부터 올 3월까지 신고된 서울 아파트 계약 중 동일 단지 평형에서 전세 갱신과 신규 계약이 확인되는 6,781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신규 계약의 평균 보증금은 6억7,321만 원, 갱신은 5억1,861만 원이었다. 신규 계약이 갱신보다 1억5,460만 원 더 높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쓴 세입자가 새로 계약을 하는 경우 올려줘야 할 보증금 액수다.
이는 임대차법 시행 2년간 전셋값 상승 폭과도 일치한다. KB부동산에 따르면 4월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6억7,570만 원으로, 2020년 7월(4억9,922만 원)보다 1억7,648만 원 올랐다.
갱신만료 내년 7월까지 7만 건
이처럼 8월부터 계약갱신청구권이 소멸돼 보증금을 올려줘야 하는 전세 물량은 얼마나 될까. 서울시는 연말까지 갱신 계약이 만료되는 물량을 전체 전세 거래량의 15%인 월 평균 4,730건 안팎으로 보고 있다. 내년 7월까지 기간을 늘리면 총 7만 건도 넘는다. 대략 1억 원씩 보증금을 올려준다고 가정하면 1년간 서울 세입자가 부담해야 할 전세 인상분은 총 7조 원에 달한다. 대책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서울시는 무주택 임차인을 대상으로 대출 한도 3억 원 내에서 연 3%대(본인 부담 최소금리 1% 이상)까지 이자를 지원하겠다는 방안을 내놨지만 중앙 정부 차원의 대책은 전무한 상태다.
이중 삼중 전셋값, 시장 개입의 부작용
이러한 비극은 이미 임대차법 개정 당시부터 부동산 전문가와 공인중개사들이 예견했던 바다. 계약갱신청구권은 사실상 임대차 계약을 4년 단위로 하는 것이어서 보증금 인상을 2년 뒤로 미룰 뿐이다. 한 번 계약한 물건은 4년간 잠기는 만큼 결과적으로 공급이 줄면서 임대료는 더 오른다.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은 집주인은 신규 계약 시 보증금을 대폭 올릴 수밖에 없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민간 임대차 시장에 개입해 가격을 통제한다는 것 자체가 시장 경제의 원칙에 안 맞고, 가격을 일시적으로 억누르는 효과밖에 없다”며 “계약갱신청구권을 없애지 않는 한 이중 가격, 삼중 가격의 혼란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임대차법을 당장 폐지하는 건 더 큰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다.
착한 집주인 인센티브로 인상폭 줄여야
계약갱신청구권 전세 보증금 폭등 대란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먼저 보증금을 시세보다 낮게 받는 집주인에게 세금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이 가능하다. 상가임대료를 인하한 임대사업자에게 임대료 인하액의 최대 70%를 소득세 또는 법인세에서 공제해주는 제도(착한임대인세액공제)처럼 착한 집주인에겐 재산세 감면 혜택 등을 줘 재계약 시 전세 보증금 인상을 최소화하자는 취지다.
지방선거용이라는 비판이 많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전월세 계약을 새로 할 때 임대료를 5% 이내에서 올리는 착한 임대인을 대상으로 보유세를 50% 감면하는 정책 추진을 발표한 것도 이런 배경이다. 그러나 보증금을 시세대로 받을 경우 당장 수억 원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과연 수십만 원의 세금 혜택으로 집주인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뉴욕시 렌트가이드라인위원회
일각에선 미국 뉴욕처럼 임대료 가이드라인을 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 신규 계약에도 임대료 상한선을 두고 있는 도시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뉴욕시는 렌트안정법에 따라 임대인과 임차인 대표가 참여하는 렌트가이드라인위원회(RGB)에서 매년 임대료 인상률을 정하고 있다. 올해는 1년 임대 4%, 2년 임대 6% 선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1974년 전 건설된 주택으로 6가구 이상 임대한 경우와 건축 당시 세제 혜택을 받은 때 적용된다. 1, 2가구 세 주는 집주인이 많은 우리가 단순 도입하긴 어렵다. 뉴욕시에서 렌트안정법을 적용받는 주택은 100만 가구 안팎으로 전체 임대주택의 절반이 안 된다. 정부에서 관여하지 않는 임대차 계약이 더 많다는 얘기다.
기초자치단제에서 매년 ‘표준임대료’를 산정하고 공시하자는 주장도 나오지만 재산권 침해 소지와 위헌 논란이 크다. 기본적인 임대주택 관련 정보와 데이터베이스부터 구축돼야 검토할 수 있는 방안이다.
로또 된 주택임대사업자 물건
시장에선 주택임대사업자의 등록임대주택을 늘리고 세제 혜택을 줘 임대료 상승을 제한하는 게 그나마 현실적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주택임대사업자는 의무임대기간 10년 동안 재계약 시 임대료를 5% 넘게 올릴 수 없다. 계약갱신청구권과 상관없이 세입자가 바뀌어도 5% 초과 인상이 없는 만큼 임차인에게는 구세주나 다름없다.
실제로 서울 강남구 도곡동 도곡렉슬 84㎡ 전세는 시세가 19억 원이지만 주택임대사업자 물건은 10억 원대에도 나온다. 현장에선 주택임대사업자 물건이 나오는 순간 수십 명의 세입자가 달려들 정도다. P공인중개사무소 사장은 “주택임대사업자 물건은 보증금 차액이 수억 원이고 워낙 인기가 높아 집주인이 세입자 면접을 보거나 수천만 원의 뒷돈이 오가는 경우도 없잖다”고 귀띔했다.
문재인 정부도 초기엔 주택임대사업을 장려했다. 그러나 다주택자에게 과도한 혜택을 주고 매물 잠김으로 집값 상승 요인이 된다는 정치 논리에 사실상 제도 폐지로 전환했다. 종합부동산세 합산 배제와 양도소득세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을 박탈하고 아파트 매입 임대도 없애버렸다. 이를 다시 180도 바꿔 주택임대사업을 활성화하려면 사회적 공감대부터 마련돼야 한다.
공급 많은 곳 이중 가격 없어
근본적 해결책은 공급을 늘리는 것이다. 경기 광명시 철산주공13단지 83㎡ 전세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쓴 물건과 신규 계약이 모두 4억 원대로 큰 차이가 없다. 3월부터 바로 옆에 1,313가구의 새 아파트(클래스티지)가 입주하며 임대차 물량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S부동산 대표는 “전엔 계약갱신청구권 물건과 신규 계약이 1억 원 정도 차이가 났지만 새 아파트 입주로 지금은 수천만 원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주택 공급은 여전히 더딘 상황이다.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지난해보다 30% 이상 급감한 2만 가구도 안 될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의 2·4 공급 대책은 성과가 미미하고, 윤석열 정부의 재건축 재개발 규제 완화를 통한 공급도 집값이 들썩이자 주춤하는 모양새다.
최근엔 시멘트, 철근, 목재 등 건자재 가격이 급등하며 건축 인허가를 받고도 착공하지 못하는 사례까지 잇따르고 있다. 국내 최대 아파트 공사인 1만2,032가구의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도 공사비 증액 문제로 멈춰 선 데 이어 타워크레인이 해체되고 있다. 이래저래 공급에 속도가 나길 기대하긴 힘들다. 다만 경기도 아파트 입주 물량은 지난해와 큰 차이가 없는 8만여 가구, 인천은 지난해의 2배인 3만여 가구여서 서울의 공급 감소 충격을 일부 흡수할 것으로 보인다.
월세 난민으로 외곽 밀려나나
어느 하나 뾰족한 대책은 없는데 시간만 째깍째깍 흐르며 반전세나 월세 전환만 가속화할 전망이다. 부동산 정보 업체 직방이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의 서울 지역 임대차 계약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4월 월세 계약 비율은 51.6%를 기록했다. 서울 부동산 월세 비중은 2019년 41%에서 꾸준히 증가했지만 전세보다 커진 건 처음이다. 대출 금리 상승 영향과 함께 8월부터 갱신 만료 물건이 나오기 시작하면 월세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만큼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 꿈은 멀어진다.
그나마 월세로 돌릴 수 있다면 사정이 나은 편이다. 살던 곳을 떠나 더 먼 외곽으로 쫓겨나는 세입자도 적잖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임대차계약 만료 등 주택 문제 때문에 서울을 떠난 이는 18만2,929명이었다.
세입자가 임대차 계약을 2년 연장할 것을 집주인에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 한 번 행사할 수 있다. 2020년 7월 31일 시행됐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임차인은 임대차 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 계약 갱신을 요구할 수 있다. 이 경우 임대인은 법에서 정한 9가지 사유에 해당되지 않으면 이를 거부할 수 없다. 9가지 사유는 ①임대료를 두 차례 이상 연체한 경우 ②거짓이나 부정으로 임차한 경우 ③합의하에 임대인이 상당한 보상을 제공한 경우 ④임차인이 임대인 동의 없이 전대한 경우 ⑤임차인의 고의나 중과실로 주택이 파손된 경우 ⑥주택의 전부 또는 일부가 멸실된 경우 ⑦철거나 재건축이 필요한 경우 ⑧임대인(직계존비속 포함)이 실제 거주하려는 경우 ⑨그 밖에 임차인의 의무 위반이나 임대차를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경우다.
만약 임대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갱신을 거절한 뒤 2년이 만료되기 전 정당한 사유 없이 제3자에게 해당 주택을 임대한 경우 임차인이 입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그러나 어디까지 실거주로 볼 것인지를 둘러싸고 집주인과 세입자 간 분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직장 출퇴근 문제나 가족의 병간호, 임대인이 가압류를 당해 같이 살던 자녀가 입주해야 하는 경우 등은 실거주로 인정된다.
임대차 기간 중 주택이 매매된 경우엔 임차인이 계약갱신을 요구할 당시 소유주인 종전 임대인에게만 이를 거부할 권리가 있는 것으로 본다. 주택을 양수한 현 임대인은 갱신을 거부할 수 없다는 해석이 우세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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