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타는 아들은 15년째 고향에 가지 못했다

입력
2022.05.26 04:30
수정
2022.05.28 07:34
9면

제3회 기획취재공모전 우수상작
[휠체어의 굴곡진 여정]
① 휠체어가 지역을 넘나드는 법

편집자주

한국일보 제3회 기획취재 공모전에 당선된 최우수상 1편과 우수상 2편을 게재합니다. 이번 주는 우수상작인 <20년째 '비포장' 도로, 휠체어의 굴곡진 여정>으로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밀착 취재했습니다.

노금호씨가 전동 휠체어를 타고 서울역에서 대구행 KTX 열차에 탑승하고 있다

노금호씨가 전동 휠체어를 타고 서울역에서 대구행 KTX 열차에 탑승하고 있다

‘덜컹.’

승강장치와 열차가 제대로 맞물리지 않아 난 소리였다. “설치해 주시는 분들마다 숙련도가 달라서 그렇죠. 심할 때는 휠체어가 뒤로 휘청하기도⋯.” 노금호(41)씨가 놀란 기색도 없이 말했다.

4월 11일 오후 6시 30분 KTX 서울역. 노씨는 서울에서 대구로 돌아가기 위해 열차에 탔다. 서울에 온 건 한 달 반 만이었다. 이날 오전 8시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열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삭발 투쟁 결의식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노씨는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사장이자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다. 취재팀은 이날 결의식에서 그를 만나 대구까지의 귀갓길에 동행했다. 여정엔 금호 씨의 동료 전근배(36)씨도 함께했다.

열차 출발 15분 전. 노씨와 전씨는 6번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KTX 특실 2호차 승강장에서 공익근무요원을 만났다. 키가 180㎝는 돼 보이는 공익근무요원이 노란색 리프트를 끌고 와 열차에 설치했다. 리프트는 보행상 중증장애인(휠체어 사용자)이 열차 안까지 이동할 수 있도록 돕는 이동식 연결로다.

열차에 올라탄 노씨는 곧장 장애인석에 전동 휠체어를 세웠다. 그리고선 서울에서 대구로 가는 1시간 48분 내내 이 칸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휠체어가 지날 만큼 통로가 넓지 않아서다. 열차 내에서 노씨가 유일하게 이동할 수 있는 경로는 휠체어석 앞 화장실에 가는 길이다. 그가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문은 닫히지 않았다. 문턱 밖으로 보조바퀴 두 개가 삐져나왔다. KTX 특실 2호차의 1평 남짓한 화장실에 전동 휠체어가 가득 들어찼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방향을 틀 수도 없었다. 벌어진 문틈 사이로 작은 변기가 훤히 보였다. 조작 버튼을 감싸 쥔 그의 손가락이 머뭇거렸다. “근배야, 문 좀.” 전씨가 빠르게 문을 잡았다. 노씨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는 “옛날 KTX 화장실은 너무 좁아서 보통 열차 타기 전에 미리 화장실을 다녀온다”며 “그래도 새로운 KTX(KTX-산천)는 넓은 화장실이 있기도 하다”고 했다.

노씨와 전씨의 자리는 언제나 KTX 특실 2호차 맨 앞. 전동 휠체어가 들어갈 공간이 두 칸 있다. 한 칸당 일반 좌석 두 개를 붙인 너비다. 전동 휠체어 사용자가 앉을 수 있는 자리는 열차 전체에서 이곳뿐이다. 휠체어 사용자 두 명까지 한 열차에 탈 수 있단 의미다. 이날은 노씨 혼자 휠체어석을 예매했다.

휠체어 장애인 3명은 함께 탈 수 없는 기차

모두가 노씨 같진 않다. 휠체어석이 매진돼 다음 열차를 타야 하는 경우도 있다. 미리 예매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진짜 문제는 휠체어 사용자 3명 이상이 함께 움직일 때 생긴다. 울산 남구에 사는 휠체어 사용자 권명길(37)씨는 서울에 갈 때 일행 둘과 함께 KTX를 이용한 경험이 있다. 3명 중 2명이 먼저 출발하고, 남은 1명은 다음 열차를 탔다. 서울역에 먼저 도착한 2명은 다른 1명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KTX 특실 휠체어석에 앉은 노금호씨.

KTX 특실 휠체어석에 앉은 노금호씨.

김영웅 한국장애인인식개선연구원장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KTX 열차에 전동 휠체어 2대까지 타는 건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세 명 이상이 같이 가고 싶으면 무조건 기다려야 해요. 열 명이 함께 움직이면요? 반나절은 지나야 다 모여요. 문제는 비장애인 중심 사고예요. ‘장애인이 움직이면 얼마나 움직이겠어’라고 생각하는 거죠.”

열차에 무사히 탔어도 내릴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순 없다. 권씨는 수년 전 경북 의성에 부모님을 만나러 갔지만 허탕쳤다. 무궁화호의 경사로가 작동하지 않아 내릴 수 없었다. “출발할 때 역무원들이 미리 점검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다음 역, 안동에 내렸다. 안동역에서 다음 열차를 6시간이나 기다리고서야 울산 집으로 돌아갔다. 그 이후로 권씨는 무궁화호에 탈 때마다 경사로 상태를 여러 차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저상버스가 없다

우여곡절 끝에 기차역에 도착했더라도 관문은 남아 있다. 시내로 이동해야 최종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

노씨는 고향인 포항에 내려가지 않은 지 15년째다. KTX 포항역에서 시내까지의 거리가 10㎞가 넘기 때문이다. 차로는 15분 거리지만, 버스로는 무조건 한 번 이상 갈아타야 해 50분 이상 걸린다. 포항역을 거치는 시내행 버스는 간선버스인 120번과 305번, 급행버스인 5000번뿐. 3대 모두 저상버스가 아니다. 결국 60대 부모가 아들이 있는 대구로 온다.

포항 시내 저상버스는 66대. 전체 시내버스 218대의 30% 수준이다. 지하철도 없다. 타지역에서 오는 휠체어 사용자가 대중교통으로 시내에 들어오기란 쉽지 않다. 특별교통수단에 기댈 수밖에 없다. 노씨는 “(특별교통수단이) 일부 지역 간 연계됐다고 하지만 저희가 이용하기에는 정보가 부족하다”고 했다. 안성태 부산장애인총연합회 기획부장은 "병원 진료 등 이동이 필수적인 상황에서도 제약이 있다"고 말했다.

2020년 기준 전국의 특별교통수단 운행 대수는 3,914대다. 법정 기준의 80%를 웃돈다. 보행상 중증장애인 150명당 1대. 2019년 7월부터 개정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시행규칙에 따른다(2020년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

전국 지자체는 시·군(특별·광역시 포함)별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에 따라 ‘장애인콜택시’라고 부르는 특별교통수단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법령 제정 당시 제16조인 ‘특별교통수단 운영에 관한 세부사항’을 하위법에 위임하면서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위임했다. 국가 지원이나 통일된 지침이 없어 명칭, 지역 간 이동 운영 규정과 예약 방법, 서비스 비용 등이 천차만별이다. 예컨대 용인시는 병원 방문 목적에 한해 관외지역으로 운행한 후 회차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옆 성남시는 시외로 나갈 수 없다.

예약조차 할 수 없는 휠체어 고속버스

버스 이동은 더 어렵다. 휠체어를 타고 이용할 수 있는 고속버스는 2,278대 중 10대. 0.44% 수준이다(2020년 기준). 노선은 △서울-부산 △서울-강릉 △서울-전주 △서울-당진 등 4개뿐이다. 전체 고속버스 노선 169개의 2.4%다. 버스당 휠체어 2대가 탑승할 수 있다. 이마저도 2019년 10월 전엔 꿈꿀 수 없던 일이다. 2019년 10월 28일부터야 국토교통부가 휠체어 탑승 가능 버스의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시범사업 시작 후 2년 반이 흘렀지만 보여주기식이란 비판은 여전하다. 권씨는 지난해 초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를 타려고 했지만, 출발 시간에 놀랐다. 모두 새벽 시간이었다. “원하는 시간에 고속버스를 타는 게 아니에요. 운행 시간이 딱 몇 개 있는데 그 시간에 맞춰야 해요. 예를 들면 오전 5시, 6시.” 예약은 버스 출발일 기준 3일 전까지 해야 한다.

취재팀은 4월 25일과 27일의 고속버스 서울-부산 노선 휠체어 좌석을 예매해봤다.

취재팀은 4월 25일과 27일의 고속버스 서울-부산 노선 휠체어 좌석을 예매해봤다.

취재팀도 직접 온라인 예약을 시도해봤다. 22일 오전 고속버스 휠체어 좌석 예매 웹페이지에 접속했다. 3일 뒤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휠체어 좌석 예약을 선택했지만, 예약할 수 없었다. 이용 가능 시간표가 없었다. 4개 노선의 휠체어 좌석 시간표도 확인할 수 없었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경부영동선에 전화로 문의했더니, “여기서도 시간이나 좌석이 확인되지 않아 잘 모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대중’교통이 이름 그대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글 싣는 순서
① 휠체어가 지역을 넘나드는 법
② 장애인의 요구는 어떻게 무시돼 왔나
③ 대중교통이란 무엇인가

이수빈·강지수·김수현·이수연(이화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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