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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 살았구나, 그래서 네 얘기를 세상에 전할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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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어머니는 복잡한 금남로 위에 다소곳이 앉아 카메라를 응시한다.
금남로. 얼마나 어머니를 아프게 한 곳이었나. 수천 수만 번 들었어도 뛰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는 그 이름. 금남로는 42년 전 박순금(83)씨의 고등학생 아들 두선이가 계엄군 총에 맞은 장소다. 아들은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어머니를 등지고 1995년 세상을 떴다.
"아, 내가 잘 참고 지냈구나. 지금까지 지낸 덕에 널 대신해 세상과 얘기할 수 있구나." 깊은 주름이 파인 어머니는 비극의 장소에서 아들의 운명을 비로소 마주 봤다.
5·18 민주화운동 헬기 사격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광주 동구 금남로 전일빌딩245에는 1980년 5월 가족을 잃은 오월어머니들이 사건 현장과 마주한 작품들이 있다. 오월어머니들은 남편과 자식을 잃은 그 장소에서 처연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트라우마가 될 법도 하지만, 어머니들은 그 사진을 보며 오히려 '내가 잘 살았구나' 하는 위로를 받는다고 한다.
사진을 찍은 이는 김은주(53) 작가다. 제42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하루 앞둔 17일 한국일보 본사에서 만난 김 작가는 2010년부터 5·18에서 가족을 잃은 어머니들을 사건 현장으로 데려가 앵글에 담았다고 했다. 그 자신은 광주와 인연 없는 서울 태생이지만, 초등학생 때 성당에서 본 사진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5·18로 가족을 잃고 울부짖는 어머니들의 모습이었다.
"광주를 꼭 한 번 가고 싶었고, 어머니들을 유독 만나보고 싶었어요. 무작정 오월어머니회를 찾아가 당시 이야기도 듣고, 언제 어디서 가족을 잃었는지, 심경은 어땠는지를 물었어요. 가족을 잃은 장소가 어머니들한테 한이 되는 장소겠더라고요. 그때 사건 현장을 배경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는 오월어머니들을 설득하기 위해 오랜 시간 교류했다. 같이 밥도 먹고 소풍에도 따라가며 한 명씩 친해졌다. 어머니들이 마음을 열고 첫 전시회를 열기까지 2년이 걸렸다. 2011년 이후 지금까지 오월어머니를 주제로 8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김 작가는 제주 4·3, 노근리 사건과 금정굴 사건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작업을 했다. 광주 오월어머니회를 닮은 아르헨티나의 '오월광장 어머니회'(아르헨티나 군부의 민주세력 탄압으로 자녀가 실종됐거나 숨진 어머니들의 모임) 사진도 찍었다.
한이 서린 장소로 향한다는 건, 어머니들한테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김 작가는 "인터뷰 과정에서도 어머니들이 손을 떨고 말을 못 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사진작업을 하며) 과거 아픔을 상기시킨다는 우려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과거 아픔을 마주하며 결국 어머니들은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사건 현장은 더 이상 과거처럼 참혹한 곳이 아니었다. 누군가 지나다니는 길이 되었고 누군가 사는 집이 돼 있기도 했다. 현장에 선 어머니들은 1980년 5월이 아닌, 현재 모습을 보며 위로를 받았고, 세월을 꿋꿋이 견딘 자신에게 위로를 건넸단다.
"사진전에 어머니들을 초대하는데, 사진 속 당신의 모습을 보며 '내가 널 대신해 여기까지 살아왔다'는 말을 많이 했어요. 내가 지금까지 있으니까 너를 얘기할 수 있고, 이 사진에도 찍히는 거라고요. 위로를 받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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