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1위, 관리 꼴찌의 과학기술 현주소

입력
2022.05.18 00: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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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과학기술분야에 쏟아붓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예산에서 세계 1위를 달리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서울대 정부경쟁력센터에 의하면 연구개발(R&D) 분야에서 한국정부의 정책전환 능력은 OECD 34개국 중 26위로 하위권에 속한다. 돈은 엄청나게 쏟아붓는데, 잘 관리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흔히 청와대 수석이든 부총리제든 컨트롤타워를 둬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컨트롤이 너무 많고, 규제가 많아서 연구에 지장을 받는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이다. 노벨상이 나오도록 연구행정체제를 획기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우선, 방만한 국책연구소를 통폐합해야 한다. 현재 설립근거도 다양한 25개 연구소가 난립해 있고, 소관부처도 다양하다. 관련 분야 연구소들은 통폐합한 후, 대형화된 연구소의 실제 운영은 원장이 아닌, 실제 연구실행 하위조직인 '센터'나 '실험실'이 중심이 되는 방향으로 분권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박사급 연구원들이 소위 'PBS(project based system)'라고 해서, 외부프로젝트로 돈벌이를 해야 보수가 채워지는 것도 큰 문제이다.

다음으로, 서울이든 지방이든 대학들이 처한 연구비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 기업들이 지원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대학의 연구진흥 자체보다는 대학이 기른 고급인력을 스카우트해 가는 데 급급하다. 이제 이론연구가 강한 대학 중심으로 현장에서 연구개발이 활발히 이뤄지도록 플랫폼이 마련되어야 한다. 예컨대, 앞서 지적한 대로 개편된 국책연구소(혹은 분소)를 서울대와 같은 우수대학에 이전시키거나 위탁경영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밤낮으로 실험실에 갇혀 사는 연구인력들이 상시적으로 교류하게 하는 것이 절실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교수, 국책연구소 연구원, 민간기업 연구원 등이 같은 식당에서 식사하면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협력하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다. 이를 위해 대학, 국책연구소, 기업 등 각각에 속한 연구인력에 대해 학위수여, 공동연구를 하는 경우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셋째, 연구비 행정의 지출 프레임을 다시 짜야 한다. 현재 기자재 구입뿐만 아니라, 유지비, 시약구매 등에 각종 규제로 연구원들이 시달리고 있다. 2,000만 원 이상의 지출은 조달청 입찰을 거쳐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해외 직구가격의 3배를 주면서 국내 수입업체를 통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기자재 구입, 관리면에서 어처구니없는 요식행위에 맞춰야 하는 행정제도들이 많이 있다. 한국이 세계적 연구를 하려면, 막스 플랭크 연구소와 같이 연구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마음껏 연구하도록 바꾸는 것이 절실하다.

요즘 경제사정이 좋지 않은 선진국들이 연구예산을 줄이고 있지만 우리도 이를 따라서는 안 된다. R&D는 민간에게 전적으로 맡길 수도 없다. 고가장비가 필요하고, 실패의 확률이 높은 분야이고, 한번 시기를 놓치면 만회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제, 연구행정의 키워드는 '과학기술 연구자의 자율성'이다. 즉, 실제로 현장에서 일하는 우수한 인력들이 연구 열정을 불태울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것이다. 서울대와 같은 대학이 세계적 연구생태계의 중심에서 우수 연구인력의 연구를 리드하게 해야 한다. 대학, 연구소, 민간들이 칸막이를 만들고 연구비 수주 경쟁을 하는 가운데 '위에서' 정책을 짜는 것보다는 연구현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우칠 때가 되었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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