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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바뀌어도 '부모찬스'는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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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생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와 93년생 곽민해 뉴웨이즈 매니저가 2030의 시선으로 한국정치, 한국사회를 이야기합니다.
야당 의원들의 수준 낮은 질문에 묻히긴 했지만, 청문회를 통해 드러난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의혹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 특히 '부모찬스'와 관련된 논란들이 그렇다. '한**'으로 웃음거리가 된 보육원 컴퓨터 기증 건은 빼자. 그걸 빼더라도 석연찮은 점들은 꽤 많다.
한 후보자의 딸은 어려서부터 각종 봉사단체와 인터넷 매체를 설립해 활동했고, 고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국가부채나 반독점법, 코로나19와 무역 등을 주제로 논문을 썼다. 기하학과 기초미적분학, 세포 주기와 유사 분열에 대한 영어 전자책을 내기도 했다. 미술 전시회도 열었다. 만일 이 모든 스펙을 일절 부모 도움 없이 쌓아올린 거라면, 한 후보자의 딸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버금가는 불세출의 천재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정말 그 정도의 천재였다면 진즉 화제가 되었을 것이다.
부모가 두 팔 걷고 나서서 만들어주는 휘황찬란한 스펙은 결코 상식적이거나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다. 미국 대학들이 학생 선발 과정에서 교외 활동을 살피는 게 부모의 역량을 보기 위함은 아니었을 터, 그런 점에서 '부모찬스'는 위법은 아니겠지만 분명한 편법이다. 이건 초등학생들 방학 숙제를 부모님이 대신해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한 후보자뿐이 아니다. 이번 청문회에선 유독 '부모찬스' 이야기가 많이 들렸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자신이 부원장·병원장으로 있던 당시 두 자녀가 해당 의대에 편입학한 게 드러났고, 사퇴한 김인철 전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자신이 동문회장으로 있던 풀브라이트에서 온 가족이 장학금을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한동훈을 조국만큼 수사하라"는 조국 전 장관 지지자들의 요구에 보수정당 지지자들은 "위법은 아니다"라며 애써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늘 그렇듯 부모찬스나 불공정 논란은 법에는 부합하나 상식에서 벗어날 때 발생한다. 불법이냐 아니냐 정도만 따지던 청문회에 부모찬스 항목이 추가된 건 말할 것도 없이 조국 전 장관 때문일 것이다. 당시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표창장 위조나 인턴 경력증명서 허위 발급이 집중적으로 보도되며 가려진 측면이 있지만, 사실 조국 사태의 본질은 사회지도층의 '스펙 품앗이'와 그로 인한 입시제도의 불공정성에 있었다. 표창장 위조나 허위 인턴증명서가 정경심 교수 개인의 일탈이었다면 '스펙 품앗이'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병폐였다. 이준구 서울대 교수 말마따나 영어로 논문을 쓰는 '가짜 천재'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던, 반칙이 횡행하는 시대의 한 단면이었다.
재미있는 건 조국을 쥐 잡듯이 털었던 그 검사가 바로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라는 점이다. 역사는 수레바퀴처럼 돌고 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권에 해가 될지도 모를 윤석열과 한동훈을 쫓아냈지만, 그들은 결국 오이디푸스처럼 돌아왔다. 마찬가지로 조국을 공정의 이름으로 탈탈 털었던 한동훈은 같은 내용으로 여론의 심판대에 섰다. 이런 문제는 앞으로도 거듭될 것이고, 어쩌면 그건 윤석열 정부의 성패를 가를지도 모른다.
"부모찬스 역시 위법은 아닐지라도 결코 정의롭다고 할 수는 없다. 만약 부모가 해외주재원이라 자녀가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면 100m 달리기에서 남들보다 10~20m는 앞에서 뛰는 셈이다. 그런데 부모가 개입까지 해서 결과에도 영향을 끼치려 한다면 이건 90m 앞에서 뛰게 하겠다는 거다"
재작년 한국일보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공정을 말하다'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조국 사태 이후 공정에 대한 요구가 빗발치던 때였다. 조 전 장관은 물러났고 정권도 바뀌었다. 심지어 당시 공정을 말하던 사람들이 권력을 잡았다. 하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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