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구원투수' 박지현

입력
2022.05.13 18:00
수정
2022.05.13 18:0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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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 12일 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과 국회에서 성비위 사건으로 제명된 박완주 의원 문제에 대해 공식 사과한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오대근 기자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 12일 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과 국회에서 성비위 사건으로 제명된 박완주 의원 문제에 대해 공식 사과한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오대근 기자

“진심으로 고통스럽다. 잘못된 과거를 끊어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12일 성비위 혐의로 박완주 의원을 제명하면서 박지현(26) 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 자신의 SNS에 남긴 말이다. 박 비대위원장은 '불꽃'이라는 활동가명으로 성착취 범죄인 '텔레그램 n번방 사건' 공론화를 주도한 인물. 지난 대선 때 민주당이 자기 당 정치인들이 저지른 권력형 성범죄를 반성하고 쇄신하겠다는 의미로 영입한 그로서는 이번 사태가 누구보다도 곤혹스러울 터다.

□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사망한 뒤 당 지도부가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고 부를 정도로 자기 편 감싸기에 급급하고 성범죄에 둔감했던 민주당이 그나마 이번에 당 중진인 박 의원에게 당내 최고 수위 징계인 제명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박 비대위원장의 존재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문제는 당내에서 박 비대위원장 홀로 쓴소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를 영입했던 이재명 총괄선대위원장조차 박 의원의 제명 문제에 대해 “당이 먼저 조치를 했으니 지켜보겠다”며 발을 뺐다.

□ 뿐만 아니다. 그는 민심이 동요할 때마다 민주당 의원들이 강성 지지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침묵하고 있을 때 홀로 나섰다. 그는 지난달 민주당이 무리한 검수완박 입법 속도전으로 비판받을 때 “질서 있게 철수하고 민생 법안에 집중하는 길이 있다”며 신중론을 폈고, 윤석열 정부의 내각 인선을 비판하려면 “조국 전 장관이나 정경심 교수는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강욱 의원이 당내 화상회의 도중 성적 비속어를 말했다는 주장이 나오자 최 의원을 비판하고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 민심과 당심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분투하는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강성 지지자들의 문자폭탄, 욕설이다. 심지어 출신 대학을 거론하며 "무슨 능력으로 올라갔느냐"라는 조롱까지 서슴지 않는다. 박 위원장의 처지는 9회말 역전위기에 홀로 마운드로 올라가는 구원투수를 연상케 한다. 국민들의 분노지수를 끓어오르게 하는 민주당의 자기 편 감싸기 문화를 비판하고 자기 객관화를 위해 노력하는 구원투수를 고립무원의 처지가 되도록 방관하는 정당에 희망이 있을까.


이왕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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