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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너머의 응원

입력
2022.05.14 00:00
22면
ⓒ게티이미지뱅크·한국일보 자료사진

ⓒ게티이미지뱅크·한국일보 자료사진

출퇴근길에는 470번 버스를 탄다. 상암에서 출발하는 이 버스는 연대, 이대와 독립문을 거쳐서 종로와 남산을 지나 한남대교를 타고 강남과 양재로 향한다. 굵직굵직한 포인트를 거쳐가는 노선이라 타고 내리는 승객 수가 많고 그 면면도 다채롭다.

연대에서는 '과잠'을 입은 대학생들이 우르르 내리고, 영천시장 즈음에서는 등산복 차림의 중년 승객들이 바쁘게 버스를 나선다. 광화문과 종로에 이르면 정장을 입은 회사원들과 태블릿을 쥐고 영어 단어를 외우던 학생들 몇이 내린다. 강남에 들어서면 또 회사원과 학생 한 무리가 내려 각자의 목적지로 흩어진다. 그렇다 보니 아침마다 버스 안은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하지만, 이 패턴에 맞춰 곧 내릴 듯한 승객의 옆에 서 있으면 높은 확률로 영천시장을 지나기 전 자리에 앉을 수 있다.

그렇게 치밀한(?) 계획하에 빽빽한 버스 안에서 겨우 자리를 잡고 창밖을 바라보자면, 광화문을 지나 종로와 강남으로 들어서는 순간 이질적인 존재들이 몇몇 눈에 띄기 시작한다. 바쁘게 움직이는 행인들 사이에서 미동 없이 서 있는 이들. 1인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다. 더러는 피켓을 들고, 때로는 큰 판을 목에 걸고 무언가를 외치면서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들이 주로 서 있는 곳은 기업 본사나 공공기관 건물 앞이다. 팻말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들 또는 이들의 가족이 그곳에 다니다 부당해고를 당했거나, 산재나 의료 사고를 당해 피해를 호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힘과 자본을 갖춘 집단에 대항할 여력이 없는 억울한 개인들에게 남는 것은 길에서 피켓을 들 자유 정도니까.

이처럼 홀로 시위하는 이들을 처음 눈여겨보게 된 것은 몇 년 전, 대기업과 재단 등을 상대로 자녀의 의문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투쟁하는 부모들을 인터뷰한 이후였다. 대형 로펌과 비협조적인 경찰을 상대로 기약 없는 투쟁을 벌이면서 언제나 사건에 대한 증거 자료철을 가방에 가득 넣어 다니는 이들은 각자 엄청난 양의 슬픔과 분노, 책임감을 짊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볍지 않은 무게를 지탱하는 것은 누구라도 이 사실을 알아 주었으면 하는 절박함이었다.

매일 아침 차를 타고 멀찍이 지나치며 본 시위자들 역시 비슷한 수준의 절박함을 품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창밖으로 건너 본 이들은 저마다의 일로 바쁜 사람들 사이에서 너무 수수하고 외롭게 보였다.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을 사건들이 평범한 일상 사이로 너무 쉽게 섞여 있는 것이 눈에 밟혀, 나는 매일 출근길에서 버스가 그들의 앞을 지나칠 때면 일부러 피켓과 현수막의 글들을 꾹꾹 눌러 담듯 읽는다.

얼마 전 국민청원 페이지가 폐지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차창 너머 매일같이 목격하던 시위자들이었다. 청원 시스템이 대단히 효율적인 창구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최소한 혼자 몸으로 싸워야 하는 이들이 불특정 다수에게 사건을 전달하고 공감을 모으는 공론장으로서는 나쁘지 않았는데. 그들이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더 줄어든 것 같아 씁쓸할 따름이다. 그들이 들고 있는 피켓의 무게는 그만큼 무거워질 것이다. 그저 눈여겨보고 마음으로 응원하는 것 외에, 나는 그들의 짐을 어떻게 덜어줄 수 있을까. 당분간은 출근길마다 입맛이 쓸 것 같다.



유정아 작가·'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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