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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회복 첫 스승의날 '눈치게임'..."선생님마다 선물 챙기면 한 달 학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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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에서 중3, 고3 아들을 키우는 50대 직장인 송모씨는 올해 스승의날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최근 2년 동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온라인 수업이 잦아져 아이들이 학교 수업만으로 따라가기 부족한 과목을 과외 시켰는데 큰 아이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전 과목, 작은 아이도 3개 과목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과목당 사교육비는 40~50만 원선. 코로나19 이전 큰 아이는 2개 과목을 과외시키고, 작은 아이는 학원만 보냈던 것과 비교하면 사교육비가 한 달에 수백만 원 늘었는데 스승의날 선물까지 챙긴다면 부담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현재 송씨 가족의 한 달 생활비에서 사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이 넘는다.
송씨는 "수학은 한 선생님이 두 아이를 봐주셔서 그나마 챙겨야 되는 선생님이 7명인데, 5만 원짜리 커피 쿠폰을 돌려도 얼추 한 과목 과외비가 된다"면서 "코로나19 이전에 이런 문제로 고민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혀를 내둘렀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후 맞는 첫 스승의날에 학부모들의 고민이 깊어졌다. 청탁금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고 6년이 지났지만 학원, 어린이집은 청탁금지 대상에서 빠져있는 데다 코로나19로 사교육이 부쩍 늘면서 '챙길 선생님'들이 만만치 않게 많아졌기 때문이다. 최근 급격한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아무리 간단한 선물을 준비해도 한 과목 학원비가 든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2016년 청탁금지법이 적용된 후부터, 스승의날 학부모들의 고민 대상은 학교 교사에서 학원‧과외 강사로 옮겨갔다.
서울 마포구에서 중3 딸, 고3 아들을 키우는 40대 직장인 이모씨 사정도 송씨와 비슷하다. 이씨 자녀들의 경우 다니는 학원 수가 코로나19 이전보다 1.5배가량 늘었는데, 학원들도 한국인 교사만 담당하던 영어 수업에 원어민‧한국인 교사를 격주로 배치하는 등 코로나19 이후 "과외로 빠지는" 학생들을 줄이기 위해 분투했다. "같은 학원비에 원어민 선생님 수업까지 들으니 좋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잠시, 스승의날이 되니 챙길 선물도 두 배로 늘었다. 고민 끝에 이씨는 5만 원 내외 선물세트를 준비했다.
그는 "(선물비가) 얼추 한 과목 학원비(30만 원) 정도 드는 것 같다"면서 "청탁금지법이 생기고 난 후 학교 선생님 선물 드릴 일은 없어졌지만, 그만큼 학원이나 과외 선생님을 챙기게 된다"고 말했다. 스승의날뿐만 아니라 명절에도 학원 원장과 주요 과목 강사들의 선물을 챙긴다는 이씨는 "솔직히 아이들 입시 교육은 학교보다 학원에 의지하지 않냐"고 되물었다.
코로나19 이후 사교육이 급증하면서 스승의날 부담도 덩달아 커졌다. 교육부‧통계청의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보면 학생 1인당 사교육비는 2019년 32만1,000원에서 2021년 36만7,000원으로 올랐다.
물가 상승으로 학원비‧과외비가 올랐다고 볼 수만도 없다. 같은 기간 주당 사교육 참여 시간도 6.5시간에서 7.0시간으로 늘었는데, 특히 고등학생의 사교육 시간이 5.7시간에서 6.3시간으로 급증했다. 경기도교육연구원이 2020년 도내 800개 학교의 학생(2만1,064명), 보호자(3만1,042명), 교사(3,860명)를 대상으로 설문한 '코로나19와 교육 : 학교 구성원의 생활과 인식을 중심으로' 보고서에서도 코로나19 이후 사교육 받는 시간이 늘었다는 응답이 22.9~33.7%에 달했다.
물가 상승으로 스승의날 인기 있는 선물 가격이 오른 것도 부담이다. 원두값 폭등으로 올초 스타벅스‧커피빈 등 프랜차이즈 카페가 대부분 커피값을 인상하면서 커피 쿠폰 가격도 당연히 올랐다. LG생활건강‧아모레퍼시픽 등 화장품 업계도 원자잿값 급등으로 올봄 4~10% 화장품 가격을 인상했다. 밀가루값 폭등으로 파리바게뜨 등 제과업계도 빵‧케이크 가격을 올렸다.
특히 자녀가 저학년일수록 스승의날을 맞는 학부모 고민이 많다. 어릴수록 보살핌이 더 필요한 데다, '학부모가 처음'이라 '선을 넘지 않고' 자녀의 선생님께 성의 표시하는 방법을 알기 어려워서다. 특히 자녀가 취학 전이라면, 등원하는 기관마다 청탁금지법 적용 여부도 다르다. '교육부 관할'인 유치원은 국공립, 사립 여부와 관계없이 원장과 담임교사, 보조교사 모두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이지만, '복지부 관할'인 어린이집은 원장만 청탁금지법에 적용된다.
서울 은평구에서 입시학원 국어 강사로 일하는 30대 이모씨는 올해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스승의날 부담이 지난해보다 줄었다. 작년까지 딸을 유치원이 아닌 어린이집에 내리 3년 동안 보냈던 이씨는 매년 5월 15일마다 원장과 담임교사, 보조교사 두 명까지 총 네 명의 선물을 챙겼지만, 올해는 선물 대상이 학원 선생님 두 명으로 줄었다. 이씨는 "제가 강사라 스승의날 선물받은 학생이나 안 받은 학생이나 가르칠 때 차이가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지만 학부모 입장이 되니 또 달라지더라"면서 "학부모가 선생님께 선물하는 장면을 보게 되면, 아이들끼리 선물을 비교하게 되기 때문에 남들 눈 피해서 주는 요령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각 지역 인터넷 맘카페 회원들은 스승의날을 앞두고 '선 넘지 않는 선생님 선물'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7세 아들을 키우는 30대 송모씨는 "어린이집에 보냈던 재작년까지 매년 스승의날마다 선생님 선물을 챙겼다"면서 "누가 무슨 선물을 했는지 묻지 않는 게 불문율이라 동네 맘카페 글을 보고 눈치껏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해부터 아들을 유치원에 등원시키며 스승의날에 개별 선물하는 일은 없어졌지만, '성의 표시 방법'을 두고 또 고민에 빠진다. 송씨는 "올해는 학부모 대표가 '선생님 사랑해요' 스티커를 마스크에 붙여 아이들을 등원시키자고 제안해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일명 '영어 유치원(영유)'이라 불리는 종일제 영유아 영어교육기관을 보내는 학부모들의 고민이 가장 깊다. 영유는 학원으로 분류돼 원장이든, 담임 강사든 청탁 금지 대상이 아니기 때문. 일부 영유는 스승의날을 앞두고 '간식을 비롯한 각종 선물이나 촌지를 금하니 협조해달라'는 공문을 보내기도 하지만, 별도 안내가 없을 경우 학부모들이 눈치껏 선물을 준비해 전달한다. 경기 분당에서 6세 딸을 키우는 30대 강모씨는 "이번주 초에 아이 영어 유치원에서 '스승의날 선물 챙기지 말아달라'는 공문을 받아 마음을 놓았다. 손으로 쓴 감사 카드만 보냈다"고 말했다. 반면 인천에서 영어 유치원을 보내는 학부모 A씨는 "담임 두 분과 원장께 상품권을 준비해 드렸다"면서 "별도 공지가 없으면 선물을 준비하는데 영어 유치원이다 보니 외국인 선생님 중 채식주의자가 있을 수도 있어 선물 고르기가 더 까다롭다"고 말했다.
청탁금지법 시행 후 학교에서는 예전과 같은 스승의날 행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예전 일부 학교는 스승의날에 학교장 재량 휴업을 하기도 했지만 청탁금지법 이후 선물 관행이 없어지고 코로나19로 비대면수업이 늘면서 하루라도 등교 일수를 채우기 위해 대부분 학교들은 정상수업을 실시한다. 경기 B고등학교 교장은 "올해는 스승의날이 일요일이라 13일 7교시 수업 후 반별로 조촐하게 행사한 걸로 안다. 선생님들께 드리는 카네이션은 제가 준비했고, 교과 선생님‧급식 조리사‧행정 직원께는 학생회 아이들이 찾아가 카네이션을 달아드렸다"고 말했다. 그는 "청탁금지법은 내신 성적에 영향을 주는 담임‧교과 교사에게 재학생‧학부모가 주는 선물을 금지하고 있지만, 교사는 무조건 선물받으면 안 되는 줄 알고 졸업생들도 빈손으로 찾아온다"고 덧붙였다.
교사들이 바라는 스승의날 선물은 교권보호와 교육과 무관한 업무 비중을 줄이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4월 29일~5월 6일 전국 유‧초‧중‧고‧대학 교원 8,43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응답자들은 '교직생활 중 가장 큰 어려움'으로 문제 행동‧부적응 학생의 생활지도(24.6%‧복수 응답 가능)와 학부모 민원(22.1%), 교육과 무관한 잡무(18.8%)를 꼽았다. 학교 현장에서 교권이 잘 보호되고 있냐는 질문에는 55.8%가 '아니다(별로 그렇지 않다 34.8%‧전혀 그렇지 않다 21%)'라고 답했고, 최근 1, 2년 동안 사기가 떨어졌다는 응답자가 78.7%(대체로 떨어졌다 43.8%‧매우 떨어졌다 34.9%)에 달했다.
교총은 "갈수록 교단이 위축되고 열정을 잃어서는 미래교육은커녕 교육 회복조차 어렵다"며 "다시 활력 넘치는 학교를 만들고 교원들이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특단의 교권보호 대책과 교육여건 조성에 나서야 한다"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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