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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까닭

입력
2022.05.14 04:30
22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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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형제의 아들딸과 나는 사촌이다. 비슷한 나이로 친구처럼 지내며 성장기의 기억을 공유하는 사촌은 직계가족 외에 가장 가까운 관계이다. 그래서 사촌은 '가까운 이', '진정한 친구들'로 쓰이는데,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말이 '이웃사촌'이다. 이웃에 살면서 자주 보면 정도 많이 들고 도움을 주고받기도 쉬워 이웃이 곧 사촌인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사촌을 가깝고 소중한 관계로 말하고 있을까? 우리가 쓰는 말을 잘 챙겨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우선 가깝기만 하면 다 사촌을 가져다 붙이곤 한다. 통 씻지 못해 몰골이 말이 아닌 사람은 '까마귀 사촌', 극도로 가난해지면 결국은 얻어먹으러 나선다는 '가난과 거지는 사촌 간' 등에서 사촌은 부담 없이 붙는다. 또한, 사촌은 놀림조에 많이 등장한다. 술 취한 사람이 뒷감당도 못할 호언장담을 하면 '술을 먹으면 사촌한테 기와집도 사 준다'고 하고, 입을 잠시도 다물지 못하고 줄곧 떠드는 사람을 두고는 '장돌뱅이 사촌'이라 한다. 실천은 없이 그저 말로만 한다면 무슨 말인들 못하겠느냐는 비유로, 사촌이란 편한 대상인 만큼 폄하되기도 쉬운 셈이다.

심지어 속담에서 사촌은 종종 방관자이다. '사정이 사촌보다 낫다', '억지가 사촌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남에게 의지하기보다는 억지로라도 자기 힘으로 하는 것이 낫다는 긍정적 말로도 읽히지만, 부당한 일이라도 고집을 부리거나 사정만 잘하면 웬만한 것은 통할 수 있다는 말로 더 많이 쓰인다. 여기서 사촌은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면서도 정작 도움이 필요할 때는 나서지 않는 얄미운 사람이다. 게다가 사촌은 이기적이고 인색한 사람으로도 그려진다. 장사하는 사람은 인색하기 마련이라고 할 때 '참외 장수는 사촌이 지나가도 못 본 척한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사촌을 대하는 자신의 자세이다. 나에게 사촌이 있다면, 그에게 나도 사촌이다. 사촌의 얄미운 점을 조목조목 빗대던 사람도 자신이 사촌이 되면 현실적인 행동을 한다. '사촌네 집도 부엌부터 들여다 본다'는 말은 얻어먹을 것만 바라며 남을 만나는 이를 말하는데, 자신도 사촌이 되면 사촌 덕을 보려 하고 있지 않는가? 사촌을 가깝다고 하면서도, '자식도 장가보내면 사촌 된다'라고 할 때는 직계가족보다는 먼 사람이라 경계를 긋는다. 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사촌은 가깝고도 먼 애증의 관계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은 따져보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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