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일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문 초안 하나가 유출되는 사건이 있었다. 미시시피주에서 통과된 낙태금지법안의 위헌에 관한 것인데, 사건심리와 구술변론이 이미 끝났고 7월경에 판결될 예정이었다. 유출된 초안에 따르면 1973년 연방대법원의 판례로 확립된 낙태에 대한 '헌법적' 권리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는데, 대법원 판결이 있다고 해서 미국에서 낙태가 전면적으로 금지되지는 않는다. 낙태가 헌법으로 보장된 권리는 아니라는 것이며, 정치인들이 입법을 통해서 자유롭게 규제할 수 있게 변하는 것이다. 현재 낙태에 관한 연방법이 없기 때문에, 각 주별로 낙태에 대한 정책을 정할 수 있게 된다.
우선, 낙태를 더 엄격히 제한하는 방향으로 바뀔 주는 최대 28개 정도이다. 첫째, 13개 주에서는 연방대법원의 위헌 심사를 염두에 두고 미리 위헌 소지를 포함한 법안을 최근 일부러 통과시켰었다. 소위 '트리거 법안'이라고 불리는데, 미시시피주 법안이 위헌이 아니라고 대법원이 판결함과 동시에 이들 법안은 바로 작동한다. 둘째, 5개 주에서는 이전에 있던 낙태금지법이 위헌으로 무효화는 되었지만 법 자체가 없어지지 않아서 대법원 판결 이후 주의회의 결정으로 금방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셋째, 공화당이 의회와 주지사를 모두 장악하고 있어서 이들의 주도로 조만간 낙태금지법이 통과할 가능성이 높은 주가 10개 정도 된다.
그런데, 현재도 낙태에 제한을 두는 정도는 주마다 다르다. 작년 기준으로 낙태를 매우 제한적으로만 허용하는 주는 21개이고, 비교적 중립적인 주는 23개이며, 낙태의 권리를 광범위하게 보장하는 주가 6개이다. 다만, 주목할 점은 이렇게 극단적인 다양성을 보이는 현상이 매우 최근 일이라는 것이다. 2001년에는 낙태에 극히 제한적인 주가 4개뿐이었고 낙태를 적극적으로 보장하는 주는 캘리포니아주 하나뿐이었다.
불과 20년 사이에 양극화된 것인데, 2010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압승하면서 다수의 주의회를 장악한 이후 생긴 변화이다.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여러 주에서 발의된 낙태 제한 법안은 연평균 19.7건이었는데, 2011년 93건으로 급격히 증가했고, 이후 10년 동안은 연평균 52.8건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이번 연방대법원의 결정이 나오면 더욱 극단적인 양극화 모습을 띨 수밖에 없어 보인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낙태반대운동의 큰 승리인 것은 분명하다. 일부에서는 크게 고무되어 전국적 낙태금지를 추진하자고 주장한다. 또, 낙태 건수의 절반을 차지하는 '낙태약'에 대한 규제를 확대하고 사후피임약의 사용을 제한하자는 움직임도 이미 시작되었다.
반대로, 낙태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단체나 민주당은 이 문제를 11월 중간선거의 주요 이슈로 부각시키려 한다. '트리거 법안' 때문에 즉각적으로 낙태를 금지시킬 수 있는 13개 주에서는 낙태 반대 여론이 높지만, 그 이외의 주들은 상황이 다르다. 전국적으로 보면 미국인들의 3분의 2 정도가 낙태 권리를 보장하는데 찬성한다. 거기에, 조만간 낙태 금지 범위를 확대시킬 것으로 예상되는 15개 주 중에 5개 주만 반대여론이 앞서고, 10개 주는 낙태의 권리를 인정하자는 여론이 우세하다. 특히, 선거전의 주요 무대가 될 플로리다(56-38), 미시간(55-39), 애리조나(54-41), 펜실베니아(53-41), 위스콘신(54-41), 노스캐롤라이나(49-44), 조지아(49-46) 등의 낙태권 찬성 여론은 주목할 만하다.
바이든 대통령의 낮은 국정지지도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대승이 예상되는 와중에 낙태 이슈가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을지 큰 관심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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