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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연장·청년고용'… 尹 정부, 두 마리 토끼 잡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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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구 논설위원이 노동ㆍ건강ㆍ복지ㆍ교육 등 주요한 사회 이슈의 이면을 심도 깊게 취재해 그 쟁점을 분석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코너입니다. 주요 이슈의 주인공과 관련 인물로부터 취재한 이슈에 얽힌 뒷이야기도 소개합니다.
정년 연장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2019년 홍남기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년연장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으나 코로나 사태 장기화 등으로 흐지부지됐던 논의의 방아쇠가 윤석열 정부 출범을 즈음해 다시 당겨졌기 때문이다.
지난 1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구와 미래전략TF'가 윤석열 정부 인구정책 방안으로 ‘청년 세대 공존을 고려한 정년 연장’을 제안한 것이 계기다. 특히 정년 연장은 청년세대와 기성세대 간 일자리 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젊은 남성층의 지지도가 높은 윤석열 정부가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 관심사다. 이 TF를 이끌었던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문재인 정부도 정년 연장의 필요성을 인식했으나 결과적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며 “윤석열 정부에서는 최소한 다음 정부를 위한 정년 연장 준비를 완료해야 연착륙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급격했던 저출산 고령화라는 인구구조의 변화 폭과 속도는 코로나19 사태로 더 빨라졌다. 출산율 저하는 앞으로 20년 뒤 인구구조ㆍ산업구조에 영향을 미치지만, 당면 과제는 10년 안으로 직면하게 될 노동력 부족 현상이다. 주요생산인구인 25~59세 인구는 2015년 2,691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로 돌아서 2027년 2,500만 명 아래로 떨어지고 2031년이면 2,293만 명까지 하락한다. 2021년과 비교하면 315만 명이 감소하는 것으로 이는 부산 인구와 맞먹는다.
정부와 인구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출생아 숫자가 마지막으로 반등했던 이른바 에코세대(1991~1996년생)의 노동시장 진입이 마무리되는 2020년대 후반부터 노동력 부족현상이 가시화할 것으로 예측한다. 이 시점을 즈음해 우리 사회는 외국인 노동인력에 대한 대폭적인 개방, 경력단절 여성 고용률 제고 등과 함께 정년 연장을 노동력 부족의 해소 대안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예측이다.
2019년 대법원이 육체 노동자의 가동(稼動)연한을 65세로 간주했듯 충분히 일할 수 있는 고령층의 조기 은퇴가 가져올 노후빈곤 문제도 정년 연장 논의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 남재량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생애 주(主) 일자리를 이탈한 50~69세 근로자의 소득분배를 추적한 연구(2021)에 따르면 근로자가 주된 일자리에서 이탈하면 빈곤율은 급증한다. 연구에 따르면 주된 일자리에서 이탈한 가구원이 있는 가구가 빈곤계층인 소득 1, 2분위에 속하는 비율은 가구원이 주된 일자리에 떠난 해 10.7%에서 이듬해 20.2%, 그다음 해에는 25.8%로 상승한다. 4가구 중 1가구는 은퇴 후 2년 정도 지나면 소득 하위 20%에 속하게 된다는 분석이다. 월 평균 국민연금 수령액이 57만 원에 그칠 정도로 공적 노후보장제도가 취약한 상황에서 정년퇴직에 따른 근로소득 감소의 충격 완화를 위해 정년 연장은 효과적 카드다. 현재 62세인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2033년 65세까지 하향되기 때문에 법정 정년(60세)과 연금개시 연령 간 ‘소득 크레바스(crevasse)’도 커진다. 은퇴연령과 연금개시 연령과의 정합성을 맞추는 것은 정권의 성격을 불문하고 정부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년 연장은 노동력 부족, 노후 빈곤, 복지 재정 부담이라는 '3중고'의 해법으로 꼽히기는 한다. 그러나 정년 연장이 청년층의 고용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는 걸림돌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주장은 엇갈린다. 고령층과 청년층 일자리가 경쟁하기 때문에 정년 연장이 청년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주장과, 양측의 고용이 대체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큰 영향이 없다는 주장이 대립한다.
독일, 일본, 스웨덴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들의 정년 연장과 노동시장 영향을 분석한 한국은행의 ‘국제경제리뷰’(2015)는 “대체적으로 청년층과 고령층 고용 간에는 대체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1982~2009년 고용지표로 청년층과 고령층 고용관계를 분석한 안주엽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청년층과 고령층 일자리 사이에는 한 직종을 두고 두 세대가 일자리 경합을 벌이는 직종경합보다는 직종별로 두 세대가 분리되는 직종분업 현상이 강하게 나타난다”고 밝힌 바 있다. 고령층을 노동시장에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한 정년 연장이 청년층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반면 한요셉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이 60세 정년 의무화가 청년 고용에 미친 영향을 실증분석한 연구(2019)에 따르면 민간부문에서는 정년 연장으로 1명의 고령 고용이 증가할 때 청년 고용은 평균 0.2명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학술적 논란과는 별개로 청년층들에게는 정년 연장은 그렇지 않아도 좁은 취업문을 더 좁힐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세대 간 일자리 전쟁을 촉발할 수 있는 인화성 때문에 인수위 인구와 미래전략TF도 ‘미래 세대 공존을 고려'한 정년 연장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60세 정년제를 전면 시행한 지 5년밖에 되지 않았고 정년제 도입의 충격을 완충할 수 있는 임금 개편이 충분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청년층들은 정년 연장에 부정적인 목소리가 크다. 이른바 MZ세대 조합원들이 활발하게 활동 중인 금호타이어 사무직 노조 김한엽(35) 위원장은 “정치권이 60세로 정년 연장을 하면서 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기업자율에 맡긴 결과 기업 부담이 크게 늘었다고 본다”며 “이제 막 시작된 베이비붐 세대 퇴직으로 절감한 비용은 설비 투자나 임직원에 대한 성과 분배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시점에서 정년 연장을 하면 신규 채용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며 “정년 연장은 임금체계 조정 등이 이뤄진 후 세대 간 합의를 거쳐 진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청년세대로 노동운동에 뛰어든 이희민(26) 한국노총 연합노련 차장은 복잡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조직(한국노총) 차원에서 정년 연장을 찬성한 점에 동의는 한다”면서도 “내 주위 청년세대 입장에서는 취업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데 정년 연장은 (기성세대가) 숟가락을 얹으려는 것처럼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지현 한국노총 대변인은 “정년 연장은 필요하지만 세대 간 상생은 많이 고민되고 있다”며 “60세 이후 연장되는 부분은 노동시간을 줄여 기업의 임금 부담을 낮추고 정부 지원도 병행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계는 신중론이다. 임영태 한국경영자총협회 고용정책팀장은 "숙련된 고령인력 활용이 필요하다는 점에 경영계도 공감하지만 연공급 중심의 임금체계를 성과 위주로 임금체계를 바꾸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주 5일제ㆍ주 52시간 근로제 시행 등과 마찬가지로 정년 연장을 할 경우 대기업ㆍ공공부문 등 ‘좋은 일자리’ 종사자들에게 먼저, 추가적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는 점에서 정년 연장이 정책의 우선 순위에 놓여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용노동부의 ‘사업체노동력 부가조사’(2021년 6월 기준)에 따르면 300인 이상 사업장은 93.8%가 정년제를 운영하지만 30~99인 사업장은 79.2%, 10~29인 사업장은 51.7%로, 기업 규모에 따라 정년제 적용의 격차가 크다.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 96.1%가 정년제가 운영되는 반면 노조 없는 사업장은 17.7%에 불과했다. 정년 연장이 노조의 보호를 받는 고임금 좋은 일자리를 가진 이들의 추가 혜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부 교수는 “청년고용에 영향이 없는지를 시뮬레이션한 다음 정년 연장을 유도해야 한다”며 “공공기관과 대기업은 제외하고 중소기업부터 자율적으로 시도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에서 과연 정년연장 시도가 필요할까. 필요하다면 정년 연장은 어느 시점에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할까.
새 정부에서 정년 연장 논의를 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전문가 대부분은 동감했다. 다만 시기와 속도에 대해서는 입장 차이가 났다. 노후 빈곤 해소와 복지재정 관리를 위해 정년 연장을 강조하는 전문가들은 윤석열 정부에서부터 속도를 내야한다는 입장을, 노동력 부족 해소를 우려하는 전문가들은 상대적으로 이를 중장기 과제로 봤다. 다만 연착륙을 위해서는 윤석열 정부에서 최소한 정년 연장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고 로드맵을 제시해 차기 정부로 과제를 넘겨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했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혁신센터 소장은 “국민연금 수급연령이 2033년 65세로 맞춰져 있으므로 정년도 무조건 이에 맞춰야 한다”며 “11년이라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만큼 최소한 윤석열 정부에서는 앞으로 어떤 스케줄로 진행할지는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삼식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장은 “여러 가지 목표 중 노동력 부족 해소에 초점을 맞추고 정년 연장 논의를 유도해야 한다”며 “2023, 2024년 정도부터 일본처럼 3년에 1세씩 정년을 올리는 방식을 추진하면 노동력이 부족해지는 시점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구체적 시점과 방식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이미 인력부족 현상이 발생하는 업종과 그렇지 않은 업종 간 정년 연장 로드맵을 달리해 충격을 줄일 수 있는 유연한 제도 설계도 필요하다고 이 원장은 덧붙였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새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세대의 고학력화로 노동생산성이 유지돼 예상만큼 빠르게 노동력 부족현상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그도 윤석열 정부의 마지막 해인 2027년께에는 정년 연장 논의를 시작하는 게 적절하다고 봤다. 이 시기는 새로 노동시장에 들어오는 청년층의 절대 인구가 줄어 세대 간 갈등이 완화된 상황에서 정년 연장을 논의할 수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한요셉 KDI 연구위원은 “논의는 시작하되 시행은 급진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년을 연금개시 연령에 맞추겠다는 식으로 조급하게 타임 테이블을 만들기보다는 청년 고용 상황을 감안해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노동시장에 충격을 가져올 정년연장 법제화보다는 정년 이후 계속 고용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추진해야 한다”면서 “정년 이후 노동자를 활용하는 촉탁직(비정규직)보다는 임금이 높지만 정규직보다는 임금이 낮은 새로운 고령 임금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구체적 해법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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