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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 만에 알아낸 그리운 이름… “엄마 아빠, 저 닮은 손주들 보여드리고 싶어요” [오늘 입양의날]

입력
2022.05.11 04: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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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부모 찾아 방한한 해외입양인 김미주씨>
1979년 대흥동에서 쌍둥이로 태어나
미국 입양 후 IT 전문가·두 아이 엄마로
경찰 도움으로 친부모 이름 확인 기쁨

편집자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958년부터 2020년까지 해외로 입양된 한국 아동은 17만 명이 넘는다. 해외 입양이 집중됐던 1970, 80년대에 모국을 떠났던 이들이 이제 30, 40대 성인이 되면서 친생부모를 찾고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5월 11일 입양의 날, 한국을 찾아온 두 입양인을 만났다.

김미주(43)씨의 친부모 이름이 적혀 있는 입양 기록. 입양기관은 친부모 개인정보라는 점을 들어 이름 일부를 지워 김씨에게 제공했다.

김미주(43)씨의 친부모 이름이 적혀 있는 입양 기록. 입양기관은 친부모 개인정보라는 점을 들어 이름 일부를 지워 김씨에게 제공했다.

"이게 진짜 내 친부모님 이름이라고요? 내가 어머니와 아버지 이름을 알게 되다니 꿈만 같아요."

줄리 비엘(한국명 김미주·43)씨는 지난 4일 42년 만에 친부모 이름을 알게 됐다. 생후 3개월 무렵이던 1979년 12월 미국에 입양돼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하고 그 자신도 여덟 살과 네 살 아이의 엄마가 된 후였다.

김씨는 평생 낳아 준 부모를 그리워했다. 그리움은 결혼 후 한층 더 커졌다. 영화 '코코'에서처럼 대가족 풍습이 있는 히스패닉계 남편 가족들과 만날 때마다 '내 친부모님도 나와 닮은 손주들을 보면 얼마나 예뻐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42년 만에 고국에… 입양기관은 "친부모 이름은 개인정보"

친부모를 찾기로 결심하고 자신을 미국으로 보낸 한국사회봉사회에 요청해 받은 입양 서류엔 그러나 단서가 많지 않았다. 김씨 부모 이름은 흰색 수정테이프로 지워져 있었다. '김ㅇㅇ(28), 임ㅇㅇ(26)'. 김씨는 서울 마포구 대흥동 이순니조산소에서 태어났으며, 이미 두 딸이 있던 그의 부모님은 딸 쌍둥이를 낳자 언니만 남기고 둘째인 김씨를 보육원에 보냈다고 한다. 아버지는 전북이 본적인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가정주부였다.

김씨는 한국에 가기로 결심했다. 번역기 앱을 활용해 한글로 적은 전단지와 친부모님께 드릴 편지도 챙겼다. 42년 만에 다시 밟은 고국 땅. 부모님 이름부터 파악하는 게 수순이지만 한국엔 '김씨'와 '임씨'가 너무 많았다. 지난 3일 한국사회봉사회를 찾아갔지만 두 시간에 걸친 설득에도 "부모님 이름은 개인정보라 알려줄 수 없다"는 답만 들었다. "그 직원이 들고 있는 서류 안에 평생 동안 알고자 했던 내 친부모님 이름이 적혀 있었어요. 모든 기록이 입양인에게 열려 있는 미국과 달리, 입양기관에서 내 정보를 제공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또다시 거절당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경찰 도움으로 42년 만에 알게 된 그리운 이름

해외입양인 김미주씨가 서울 마포경찰서 실종수사팀원들과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원다라 기자

해외입양인 김미주씨가 서울 마포경찰서 실종수사팀원들과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원다라 기자

낙담한 김씨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넨 사람은 박현일 서울 마포경찰서 실종수사팀장이었다. 김씨는 지난 4일 자신의 출생지 대흥동을 관할하는 마포경찰서 민원실을 무작정 찾았고, 사연을 전해 들은 박 팀장은 흔쾌히 김씨를 사무실로 맞아들였다. 12년간 실종수사팀 업무를 해 온 박 팀장과 팀원들이 곧바로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김씨 친부모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운 이들의 이름을 받아든 김씨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박 팀장에게 부모님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물어본 뒤에야 말문이 다시 트였다. "평생 동안 원했던 일이에요. 거절당할 각오를 하고 찾은 한국에서 이런 따뜻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그런 김씨에게 박 팀장은 "그 당시 미주씨와 같은 안타까운 사연이 많았던 것 같다. 부모님에게도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을 것"이라며 "한국에서 좋은 기억만 가지고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해외입양인 김미주씨가 9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자신의 가족을 찾는 전단지를 들고 있다. 원다라 기자

해외입양인 김미주씨가 9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자신의 가족을 찾는 전단지를 들고 있다. 원다라 기자

김씨는 대흥동 일대 부동산, 떡집 등에 서툰 한국어로 직접 만든 전단지를 돌렸지만 40년 전 세 딸을 키우던 부부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동권리보장원에 가족 찾기 공고를 내고, 경찰에 실종아동찾기 DNA 등록도 했지만 기다리던 연락은 오지 않았다.

김씨는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 전단지를 돌리는 틈틈이 유튜브에서 본 한국 거리 곳곳을 열심히 찾아다녔다. 택시 대신 지하철을 주로 이용했다. 몇 번이나 열차를 잘못 타는 바람에 헤매기도 했지만 한국과 직접 부딪히고 싶었다. 김씨는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 속에 있는 것, 김밥이나 소주와 같은 한국 음식을 먹어보는 것, 모두 내가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는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15일 한국을 떠나는 김씨는 부모님께 이런 편지를 남겨 둘 생각이다. "엄마, 아빠. 언니들도 잘 지내고 있나요? 저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셨을 두 분을 이해해요. 저는 잘 자랐어요. 좋은 회사에서 IT 애널리스트를 하고 있고, 결혼해서 두 아들도 있어요. 첫째는 여덟 살이고 둘째는 네 살이에요. 괜찮으시다면 언젠가는 저를 닮은 외모를 가진 아이들을 두 분께 보여드리고 싶어요. 다시 올게요. 그때까지 늘 건강하시길 바라요."

원다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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