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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부통령 남편을 보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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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부통령의 업무는 결혼식과 장례식에 가는 것이다.”
미국 34대 부통령 해리 트루먼의 말이다. 트루먼은 태평양전쟁 막바지, 일본에 원자폭탄 투하를 명령했지만 정작 그는 원폭을 제조하는 맨해튼 프로젝트에는 철저히 소외됐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사후, 대통령직을 승계한 후에야 원폭 보고를 받고 경악했다고 전해진다. 부통령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일화로 널리 인용된다. 심지어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하찮은 자리”라는 말도 있다. 미 초대 부통령 존 애덤스의 푸념이다. 예나 지금이나 조직에서 부(副)자가 들어간 직함은 실권도 영향력도 없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미국이 부통령 남편을 축하사절단 대표로 보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남편, 더글러스 엠호프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방한이 오는 20일 예정돼 있어, 백악관 패밀리 멤버를 보내 동맹에 성의를 보인 것이란 풀이는 ‘뇌피셜’의 정점이다. 한미동맹을 정상화하고 재건하겠다는 윤 정부에 대한 미국의 화답으로 인정받으려면 최소한 부통령 아니면, 서열 3위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정도가 와야 미국의 진심을 확인할 수 있을 터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대면한 미 정부 첫 인사가 민간인 신분 ‘세컨드 젠틀맨’이다. 역대급으로 서열 밖 인사다. 눈치 빠른 ‘윤핵관’이라면 윤 대통령이 미국에 홀대받고 있다는 전조를 읽고, 다음 수(數)를 내다봐야 하는데 닥치고 한미동맹만 주술처럼 되뇌고 있다.
외신들은 해외정상 취임식에 엠호프가 명함을 건네는 것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부통령이 실권도 없는데, 하물며 부통령 남편이랴. 취임 전부터 요란하게 정책협의단을 꾸려 미국 조야에 고개를 숙인 대가치곤 격에 맞지 않는 손님이다.
전조는 또 있었다. 성 김 미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가 바이든 정부는 지난해 5월 문재인 정부와 도출한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대해 “한미관계의 바이블(성경)로 여긴다”며 여기서 “한 발짝도 바꿀 생각이 없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진 외교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질의 과정에서 나온 전언이다. 당시 공동성명에서 문 정부는 미사일 사거리 족쇄를 풀었고, 판문점 선언에 기초한 대화를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한다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윤 정부는 이런 성과를 애써 깎아내리며 오로지 미국이 이끄는 자장(磁場)에 한 발짝 더 몸을 밀어 넣겠다는 ‘일방 구애’ 메시지만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 ‘당당한 외교’라고 우긴다. 국민을 우습게 보지 않으면 하기 힘든 말이다. 반면 자강(自强)하겠다는 말은 국정과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전시작전권 회수도 익숙한 핑계로 딴청이다.
일본측 사절단 부조화도 눈에 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와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장관이 그들이다. 하토야마는 퇴임 후 “독도는 한국땅”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일본은 계속 사죄해야 한다”는 등의 발언으로 자국에서 왕따 취급당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지한파로 통한다. 이에 반해 하야시는 수렁에 빠진 한일관계 책임이 한국에 있는 것인 양 “한국이 해법을 가져오라”는 적반하장 입장을 되풀이하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 최측근이다. 겉으론 한국민 정서에 호응하는 듯하면서 뒤통수치는 외교전략으로 볼 수 있다. 이렇듯 윤 정부가 공들이는 미·일 외빈들의 면면을 보면 썰렁하다 못해 서늘한 기운마저 감돈다.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이들에게 한반도의 운전대를 맡긴 것처럼 하루하루가 불안한 요즘이다. 윤 대통령은 지지자들 앞에서 자주 어퍼컷을 날린다.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섀도 복싱으로 너무 힘을 빼, 정작 링에서 쓰러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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