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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비경이 품은 강제 이주 아픔...'지심도', 명품 관광섬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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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8개의 섬을 가진 세계 4위 도서국가 한국. 그러나 대부분 섬은 인구 감소 때문에 지역사회 소멸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생존의 기로에서 변모해 가는 우리의 섬과 그 섬 사람들의 이야기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경남 거제의 작은 바위섬 '지심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음 심(心)자를 닮아 '오로지 마음(지심·只心)'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섬 절반 이상을 동백나무가 뒤덮고 있어 '동백섬'으로도 불린다. 동백꽃이 만개하는 겨울철이면 10만 명 넘는 관광객이 찾는 명소다.
거제의 또 다른 섬 외도와 언뜻 유사해 보인다. 외도는 대형 수목원과 동백꽃으로 유명한 '전국구 스타'다. 이와 달리 지심도는 관광명소 그 이상의 아픈 역사를 품고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군사기지로 짓밟혔고, 섬을 떠났던 주민들은 해방 이후 다시 돌아왔지만 온전히 삶의 터전을 되찾지 못했다. 이 섬은 대체 어떤 기구한 이야기를 간직해온 것일까. 지난 2일 지심도를 찾았다.
지심도는 거제 본토에서 동쪽으로 불과 1.5㎞ 거리다. 지세포와 장승포 여객선터미널에서 도선을 타고 25분이면 도착한다. 선착장에선 동백꽃을 연상시키는 빨간 지붕의 여객선터미널과 인어상이 타지 여행객을 반겼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황량한 느낌에 관광지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선착장에 으레 늘어선 선박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섬을 둘러싼 바다 수심이 깊어 방파제를 설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바닷속에는 물고기 떼가 분주히 헤엄치고 있었다. "지심도가 동백꽃으로 유명해지기 전에는 낚시꾼들에게 이름난 곳이었다"는 선착장 관리자의 말과 다름없었다. 이곳 주민들이 '고기가 뜬다'고 할 정도로 지심도 연안에는 물고기가 많이 몰려든다고 한다. 물이 맑기로 유명한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위치한 데다 물살이 세고 남태평양과 인접한 지리적 조건 덕분이다.
지심도는 사람이 거주하는 섬 가운데 생태환경이 잘 보존된 편에 속한다. 지난 수십 년간 일본군과 국방부가 부지를 소유하면서 민간인 접근이 어려웠던 탓이다. 또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개발에 제한이 많았다. 그 덕에 여행객들은 자연 그대로의 원시 비경을 접할 수 있는 곳이다. 민간업체가 운영을 맡아 관광지로 육성해 발전시킨 외도와 대조적이다.
지심도에는 희귀식물을 포함해 133종의 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섬의 60%가 넘는 면적은 동백나무 차지다. 이곳에서 25년째 살고 있는 조동일(71)씨는 "주민들이 일부러 심지 않았는데도 동백나무가 많이 자랐다"며 "해풍과 염기를 잘 견디는 수종인 데다 바람을 타고 씨가 온 섬에 골고루 퍼지면서 군락지가 형성된 것 같다"고 말했다.
지심도를 수놓은 붉은 동백꽃을 구경하다 보면 언덕길 곳곳에 자리 잡은 민박집을 마주할 수 있다. 모두 10곳이 있는데, 섬 전체 인구가 15가구인 점에 비춰 주민 대부분이 관광업에 종사하고 있는 셈이다. 주민들은 원래 유자, 밀감 등 과실나무를 기르며 살았지만 2003년 태풍 '매미'로 상당수 나무가 유실되자 낚시꾼을 상대하는 관광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특히 삼삼오오 사비를 모아 도로를 정비하고 홍보물과 관광 오디오가이드를 제작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 덕분에 지심도는 연평균 13만 명이 찾는 명소로 거듭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지난 2년간 방문객은 3만~4만 명선으로 급감했다. 다행히 최근 일상 회복 분위기를 타고 섬을 찾는 관광객의 발길이 꾸준하게 늘고 있다. 널리 알려진 외도에 비하면 아직은 지심도라는 이름이 생소할는지 모른다. 하지만 미리 알고 오든 아니면 우연히 찾든 상관없이 난생처음 접하는 천혜의 자연환경에 흠뻑 젖어 감탄하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김거림(38·경남 김해)씨는 "어린이날을 앞두고 가족여행으로 거제에 놀러왔다가 지심도가 유명하길래 들렀다"며 "동백꽃이 활짝 피는 계절에 아이들과 또 오고 싶다"고 말했다. 류재천(63·울산)씨는 "외도를 구경하다가 우연히 지심도에 대한 설명을 듣고 방문했다"면서 "외도는 인공적으로 가꾼 섬인 반면에 지심도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더 좋았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은 지심도를 군사기지로 삼았다. 중일전쟁을 2년 앞둔 1935년 일본 해군은 지심도를 쓰시마, 시모노세키 등과 함께 진해만요새사령부 작전 지역으로 낙점했다. 지심도에 1개 중대 100여 명의 군사가 주둔했고 전쟁 말기에 이르러서는 군함 2척, 육군 특전대 군인 320명까지 배치돼 지심도는 주요 군사거점으로 비중이 커졌다. 섬 곳곳에선 당시의 흔적을 접할 수 있다. 넓고 평탄한 섬 중심부에는 활주로가 있고 해식절벽을 따라 탄약고와 포진지, 탐조등보관소, 방향지시석 등이 자리 잡았다.
전쟁의 포연을 피해 주민들은 지심도를 떠났다. 지세포 선창마을과 대동마을로 사실상 강제 이주를 했다. 1945년 해방이 되면서 일부 주민들이 지심도에 돌아왔다. 그러나 섬은 더 이상 이전의 평화로운 안식처가 아니었다. 대대로 살아온 땅을 돌려받지 못한 것이다.
일본군이 사용한 섬이라는 이유로 정부는 지심도의 소유권을 통째로 국방부에 넘겼다. 그러자 국방부는 주민들이 거주하는 건축물에 대한 소유권만 인정해줬다. 주민들은 집터에 대한 토지 불하(국가나 공공단체에서 국민에게 토지나 건물 등의 재산을 매각하는 일)를 요구했지만 그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국방부와 임대차 계약을 맺고 60년 가까이 임대료를 내면서 살아야 하는 기막힌 상황으로 내몰렸다. 주민 서철만(78)씨는 "선조 때부터 지심도에서 살아왔지만, 군을 상대로 말을 꺼내기 어려운 당시 상황 때문에 임대료를 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5년 전 국방부에서 거제시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그런데도 주민들은 또 한번 강제 퇴거 위기에 처했다. 거제시에서 지심도를 자연생태학습장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주민들이 불법 거주하고 있으니 섬에서 나가달라"고 퇴거 명령을 내렸다.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길 처지에 놓인 주민들은 격렬히 반발했다. 갈등이 격화되자 섬연구소가 앞장서 문제를 공론화했다. 이어 국민권익위원회가 중재에 나섰다. 그 결과 지난해 6월 거제시가 주민들의 이주를 강제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협약을 맺으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거제시는 주민들의 거주를 보장하면서 동시에 지심도를 관광지로 개발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았다. 시와 섬주민들이 '강제 이주 없이 관광명소화 사업에 협력한다'는 큰 틀에서 이견을 좁히는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를 실행하기 위한 세부사항 합의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 강제윤 섬연구소장은 "2년 전 권익위에서 양구 펀치볼 무주지(無主地)를 주민에게 조건부 매각할 수 있도록 중재한 사례가 있다"며 "이처럼 주민들의 입장을 고려한 적극적인 중재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섬이 삶의 전부인 주민들은 지심도가 과거의 아픔을 딛고 '명품 관광섬'으로 도약하길 고대하고 있다. 이상철 지심도 반장은 "지심도가 자연환경을 온전히 유지하면서도 여행객 불편을 개선해 관광지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다할 수 있길 바란다"며 "이를 통해 거제가 관광도시로 우뚝 서는 밑거름이 돼 서로 상생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위치 : 경남 거제시 일운면 옥림리 산1번지 일원
인구 : 15가구 30명
면적 : 33만8,609㎡
산업구조 : 관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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