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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인멸의 기술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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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고발사주 의혹(직권남용 혐의)을 불기소 처분하며 밝힌 대로라면 검사들의 수사 무력화는 경악할 수준이다. 고발장을 건넨 손준성 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의 부하 검사들은 PC 하드디스크를 교체하거나 초기화하고 메신저 대화를 모두 삭제해 증거를 증발시켰다. 복구를 못하게 안티포렌식 앱까지 설치했다. 고발장을 받은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휴대폰을 교체하고 통화내역을 삭제했으며 차량 블랙박스를 지웠다. “기억나지 않지만 검찰은 아닐 것”이란 그의 선택적 기억력은 유죄를 피하는 진술법도 알려주었다.
□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검언유착 무혐의 처분을 받은 과정도 개운치는 않다. 아이폰 비밀번호를 밝히지 않아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고등학생 딸의 논문 대필, 영문 전자책 발행, 돈 내고 게재하는 미국 신문 인터뷰 등 의혹이 불거졌는데 보도 후 원문 자료들이 속속 삭제되고 있다. 해당 신문 웹사이트와 아마존 서점에서는 더 이상 인터뷰 기사와 전자책을 찾아볼 수가 없다. 수사든 검증이든 증거만 없으면 된다는 것인지 의아하다.
□ 검사를 수사할 때면 검찰도 한통속이었다. 최근 대통령비서실 공직기강비서관에 임명된 이시원 변호사도 유우성씨 간첩 조작에 대한 형사 처벌을 면했다. 간첩 조작은 징역 7년부터 사형까지 선고 가능한 중범죄다. 유씨를 수사·기소한 검사였던 그는 거짓진술을 압박하고 유씨 무죄 증거를 묵살했는데도 검찰은 국정원 직원들만 기소했다. 검찰은 심지어 유씨를 다른 혐의로 보복기소까지 했으니, 라임사태 주범으로부터 접대받은 금액을 99만 원으로 맞춰 검사들을 불기소한 것은 애교라 하겠다.
□ 법을 잘 알고 증거를 찾는 전문가인 만큼 검사는 증거 인멸에도 해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수사기관으로서의 전문성 때문에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을 막지 못하는 현실은 정상이 아니다. 유죄는 피해도 공직은 박탈해야 마땅하다. 더구나 고위 공직에 나서겠다면 적극 검증을 받아 의혹을 소명하는 게 옳은 태도다. 불법만 아니면, 증거만 없으면, 기자를 고소해 의혹 보도만 막으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 자체로 공직자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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