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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분리배출, 돈으로 보상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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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잖아도 심각했던 쓰레기 문제가 코로나19 이후 더욱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쓰레기 문제는 생태계 파괴뿐 아니라 주민 간, 지역 간, 나라 간 싸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쓰레기 박사'의 눈으로 쓰레기 문제의 핵심과 해법을 짚어 보려 합니다.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의 저자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이 <한국일보>에 2주 단위로 수요일 연재합니다.
요즘 '돈이 되는 분리배출' 캠페인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주민들이 페트병 등을 깨끗하게 씻어서 거점장소나 무인회수 기계로 가져오면 포인트 등으로 보상받는 시스템이다. 언뜻 보면 너무 좋은 캠페인이다. 소비자 호응도 좋다. 소비자 책임에만 짓눌려 있다 뭔가 보상을 받으니 캠페인에 참여한 소비자 모두 기분 좋아한다. 나쁠 게 전혀 없어 보이는 캠페인인데 나는 솔직히 목에 가시가 걸린 듯 불편하다.
분리배출이 소비자 개인의 통장에 꽂힐 만큼 돈이 되는 것은 아니다. 폐지나 고철을 모아 고물상으로 가져가면 소액이나마 돈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 외에는 없다. 페트병이나 캔은 재활용 시장에서 유상으로 거래되는 품목이기는 하지만 개별 소비자가 소량을 굳이 돈을 주고 판매할 정도의 가치는 없다. 개별 소비자로부터 모아서 재활용 업체로 가져가는 데 드는 운반비용이 더 크다. 페트병 한 개당 재활용 업체에 판매하는 가격이 5원 내외일 텐데 소비자에게 몇십 원을 보상할 수는 없다.
현재 전국 곳곳에서 페트병이나 캔에 포인트를 주는 소비자 보상 거점수거 방식은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사업이다. 소비자에게 보상해 주는 비용과 운반비 등의 적자를 지자체 등이 메우는 방식인데, 일부에 한정된 캠페인이 아니라 지자체 전역을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하기는 어렵다. 쓰레기 관리에 지자체가 지출해야 할 비용이 한두 곳이 아닌데 페트병만을 주민보상 방식으로 과연 모을 수 있을까? 요란하게 보여주기 캠페인만 하다가 어정쩡하게 중단하면 혼란만 가중된다.
독일에서는 소비자가 페트병을 마트로 가져가면 보상하지 않느냐고 반론하는 사람도 있는데, 페트병 보증금 시스템을 오해한 것이다. 소비자가 마트에 페트병을 가져갔을 때 병당 300원을 주는 것은 보상이 아니라 소비자가 낸 돈을 다시 돌려주는 것뿐이다. 보증금 제도의 핵심은 소비자 보상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다. 편하게 문 밖에 페트병을 버리면 보증금을 버려야 하고, 보증금을 돌려받고 싶으면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쓰레기를 많이 발생시키는 소비에 대해 제대로 버리도록 소비자에게 강한 책임을 요구하는 게 보증금 제도다. 독일 페트병 보증금 시스템을 소비자 보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쓰레기를 제대로 버리는 것은 기본적으로 소비자의 책임윤리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우리 소비가 야기하는 문제를 소비자가 알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경제적 보상이 주가 되면 우리 소비가 야기하는 문제의 본질을 소비자가 성찰할 수 없게 된다.
다만 분리배출이 누구의 인정도 받지 못하는 그림자 노동이 돼서는 안 된다. 그림자 노동이란 대가 없는 노동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대가란 금전적 대가만이 아니라 노동 가치에 대한 인정을 포함한다. 아내가 열심히 분리배출을 해도 남편이 집 안에서 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타박을 하면 아내의 분리배출은 그림자 노동이 된다. 소비의 결과에 대해 구성원들이 동등하게 책임지지 않는 가정을 비롯한 집단 내 불평등이 분리배출을 그림자 노동으로 만든다.
분리배출은 소비자의 책임이고, 소비자가 자기 소비에 대해 책임지는 노동을 할 때 그 가치는 인정받아야 한다. 그 인정은 기계적으로 매겨지는 돈이 아니라 내 할 일을 한 것에 대한 내적 희열과 가족과 이웃의 격려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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