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시인'에서 '생명사상가'로… 김지하 시인이 남긴 말들

입력
2022.05.08 22:24
수정
2022.05.08 23:43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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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시인. 뉴스1

김지하 시인. 뉴스1

김지하 시인은 1975년 ‘타는 목마름으로’를 발표한다. 신새벽 뒷골목에 남몰래 민주주의의 이름을 쓴다는 내용의 시는 군사독재정권 집권기를 살아내던 사람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고인은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1980년까지 10년 가까이 수감생활을 했고 한때 문단에서 벌어진 민주화 운동을 대표하는 저항시인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고인은 좌우를 동시에 비판하거나 긍정하면서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세력으로부터 ‘변절자’라는 비판을 들었다. 고인은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자신의 행보를 설명했지만 여론은 가라앉았다 끓어오르기를 반복했다.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후보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고인을 향한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고인은 그해 11월 26일 서울에서 열린 한 강연회에 참석해 “시인인 내가 대선과 관련된 연설회에 선 것 자체가 기이하다. 조국의 위기가 나를 이 자리에 서게 했다”면서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고인은 "이제 여자가 세상일 하는 시대가 왔고 나는 여성들의 현실통어 능력을 인정한다"며 "여자에게 현실적인 일을 맡기고 남자는 이를 도와야 하는 때가 왔다"고 밝혔다.

이듬해에는 CBS 라디오에 출연해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로 박 전 대통령과 경쟁했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시대가 달라졌는데 아직도 왕왕 대고, 내놓는 공약이나 말하는 것 좀 보시오. 그 안에 뭐가 있어요? 김대중, 노무현뿐”이라고 비판했다. 무소속으로 함께 대선에 나섰던 안철수 전 인수위원장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기대를 했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다 정치"인데 “가만 보니 깡통”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2018년 고인을 인터뷰한 매체 시사저널은 고인의 언어가 현실 정치와는 달라서 이러한 비난을 불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 인터뷰에서 고인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서 자신이 잘못 판단했다고 인정하면서 “박근혜씨가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한테서 정치를 배웠고, 출중한 참모들도 있으리라 봤다. (여성 지도자로서) 섬세하게 잘할 거라고 예상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촛불집회와 미투운동에 대해서는 "여성성을 중심으로 이 나라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겪어낸 고인은 지난 2014년 자신이 그린 수묵화 작품에는 본명인 ‘영일’을 남겼다. 전시회를 기념해 열린 간담회에서 고인은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서울대 학생 때 시화전을 하면서 '지하'라는 필명을 지었는데 나중에 성명학자가 '매일 감옥에나 가겠군' 하더군요. 새 시대가 와서 나도 감옥에 안 가고 잘 살려고 지하 대신 영일이라고 썼소. 왜 잘못됐소?"

고인은 민주화 이후에는 생명과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생명사상가로서의 행보를 보였다. 고인은 2004년 생명학 구축을 위한 학술문화행사인 '세계생명문화포럼 경기 2004' 개최를 앞두고 "환경파괴와 기상이변, 또는 전쟁이라는 전지구적 재앙은 흔히 환경학이나 생태학이라고 일컫는 서구 근대에 기반한 학문이나 운동으로는 근본 치유가 될 수 없다"면서 "서구문화에서는 갖추지 못한 동아시아의 생명정신을 가미한 생명학을 수립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2007년 열린 생명학회 창립총회에서도 고인은 "우리 민족은 죽은 것보다 산 것을 좋아하는 민족"이라면서 "생명을 존중하는 우리의 근본 정신을 바탕으로 세상을 구할 생명의 학문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인은 이 자리에서 "전 지구적으로 지구 온난화, 기상이변, 생태 위험 등의 이상 현상이 퍼져있고 사회, 경제, 정치적인 혼란이 만연해 있다"면서 "이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생명'에서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고인이 2018년 집필 활동을 멈추겠다고 출판사를 통해서 밝히면서 마지막으로 내놓은 시집 '흰 그늘'과 산문집 '우주생명학' 역시 생명을 다루고 있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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