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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 말 박사논문 심사는 호텔에서 했다? [팩트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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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김인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자진 사퇴에 대한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의 해명이 온라인에서 누리꾼들의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하 의원은 전날 김 후보자가 1999년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이른바 방석집(접대원이 있는 저렴한 술집)에서 했다는 의혹 보도에 대해 "당시에는 방석집이라고" 했지만 "건전한 한정식 집"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 스토리를 쓴 분이 저랑 가깝다"며 "책에 쓴 것도 미담으로 쓴 거지 김인철 후보자 흠잡으려고 쓴 게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어떻게 미담이 될 수 있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그는 "당시에는 호텔에서 심사하는 문화가 있었다고 한다"고 답했다. 해당 '스토리'를 쓴 이성만 국민의힘 전 인천 연수구청장의 방송통신대학 선후배가 해당 방석집 주인의 자식이었고, 이 전 구청장의 박사논문 심사 소식을 듣고 "비싼 데 갈 필요가 뭐가 있냐, 축하해 줄 테니까 여기서 식사도 하면서 심사를 한 거"라는 설명이다. 이 사실을 전하는 하 의원은 "상당히 좀 오해"가 있지만 "당시에는 방석집"이라고 불렀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이날 인터뷰를 담은 유튜브 동영상이 12만 조회를 기록하는 등 화제가 되자 방송사는 검수완박, 새 정부 인사청문회, 안철수 인수위원장 지방선거 출마에 대해 하 의원이 언급한 부분은 빼고, 해당 부분만 재편집해 내보내기도 했다.
한데 이성만 전 구청장이 논문 심사를 받은 1999년에는 진짜 "호텔에서 논문 심사하는 문화"가 있었을까. 하 의원은 이 부분을 소개하며 "호텔에서 박사논문 심사하는 게 주로 많았다"고 다시 강조하기도 했다.
국내 주요 대학 홈페이지의 대학원 학사안내란을 보면 박사논문 심사는 통상 심사위원을 5명으로 구성하고, 이 중 일정 수 이상을 외부 대학 교원으로 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심사 시간과 장소는 규정에 담지 않는 대학이 많고, 일부 대학은 '심사위원장 또는 지도교수가 심사 시간과 장소를 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중앙대 등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발 이후 "비대면 심사가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요즘 거의 모든 학위 논문 심사는 '교내'에서 이뤄진다. 2016년 9월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일부 학생들이 심사위원들에게 지급했던 거마비(車馬費‧교통비)가 완전히 사라지면서다. 박사과정의 경우 논문 심사 자체가 '학과 공식 행사'로 시간‧장소가 모두 대학 홈페이지에 공지되는 분위기도 '교내 심사' 이유로 꼽힌다.
"주로 많았다"는 하 의원의 주장과 달리, 20여 년 전에도 호텔에서의 논문 심사는 '일부'에 그쳤다. 2001년 8월 29일 교수신문의 기획 기사 '21세기를 위한 교수사회 : 이것만은 버리고 갑시다'에 따르면 당시 대학가에서 논문 심사 거마비가 문제라고 지적하며 "거마비로 300만 원 이상을 쓴 윤모 대학강사" 사례를 소개했다. 한데 기사에서 윤 강사는 "호텔에서 논문을 심사받고, 적지 않은 접대비까지 준비해야 하는 일부 호화판 논문 심사에 비하면 자신은 양호한 편"이라고 위안을 받는 걸로 묘사됐다. 당시도 '호텔 논문 심사'는 '호화판'으로 인식된 셈이다.
1989년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A교수는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호텔이나 식당에서 심사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논문 심사 때 심사위원 지적, 논문 저자 반박이 계속되는 토론에 가까워 밥 먹으면서 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다만 A교수는 "구제박사의 논문 심사는 식당에서 했을 가능성이 있다. 밥값도 논문 저자가 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학력자가 부족하던 시절 학‧석사 학위를 갖고도 국내 대학에서 교수로 채용됐는데, 이후 대학원 정규과정을 밟지 않고 논문 제출만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을 '구제박사'라고 일컫는다. 동료 교수 학위논문 심사를 학생처럼 깐깐하게 할 수도 없고, 심사하며 먹은 밥값이야 구제박사가 사지 않았겠냐는 말이다. 국내 구제박사 제도는 1975년 종료됐다.
구제박사가 아니라도, 2000년대 중반까지 '일부 대학, 일부 학과에서는 외부 심사를 보기도 했다'는 증언도 있다. 2005년 국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B교수는 기자와 통화에서 "제가 그런 경우"라며 "당시 1, 2차 심사는 지도교수 연구실이나 강의실에서 보고 3차 심사는 일부에 한해 (대학교) 외부에서 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외부 심사에는 여러 전제조건이 붙었다. 해당 대학, 해당 학과에서 외부 심사가 관례화된 데다, 심사위원이 모두 동의한 경우다. B교수는 "90년대 해외박사 소지자들이 국내 대학에 자리잡으면서 상당수 대학, 학과에서 외부 논문 심사가 사라졌다"면서 "그런 관례가 남은 학과들은 대개 실권을 쥔 원로 교수가 외부 심사를 고집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요컨대 외부 심사 자체는 '구악'으로 인식됐고, 이미 보편적이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는 "당시 외부 심사를 해도 호텔 심사는 극히 이례적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김영란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최종 심사에서 박사논문이 통과되면, 고급 식당에서 뒤풀이를 열고 이 비용을 논문 저자, 즉 대학원생이 부담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2007년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C교수는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2016년 전까지 상당수 대학에 뒤풀이 문화가 있었지만, 논문 심사 자체를 외부에서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고 말했다. "특별히 탁월한 논문이 아니고서야" 3차 심사를 할 때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C교수는 "1, 2차 심사에서 심사위원이 한 지적을 최종 학위 논문에 반영했는지를 확인하고 설명 듣는 데만 통상 2시간 내외가 필요하다"면서 "예전에도 박사논문 심사는 일시·장소를 다 학과에 공지했고, 논문 심사 평가서에도 기록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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