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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대신 현금 결제 안 되나요?" 새 일상 시작 쉽지 않게 하는 그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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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새로운 봄이 시작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위험이 아주 사라진 건 아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의 전면 해제와 더불어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도 완화되면서 2년여 만에 달뜬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재택근무가 종료되면서 운동을 시작하거나 더 더워지기 전에 이사를 서두르는 사람들, 산뜻하게 헤어스타일을 바꾸거나 외국어, 운전 등을 배우려는 이들도 있다.
이러한 봄 기운은 밖으로 나와 새로운 일상을 시작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을 하기도 전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로 기분이 상한다면 어떨까.
직장인 이수정(30·가명)씨는 회사 방침에 따라 이달부터 재택근무를 종료하고 사무실로 출근을 재개했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도전을 해보려고 마음먹었다. 체형 교정과 몸매 유지를 위해 필라테스를 배우기로 한 것. 그동안 재택근무로 인해 주로 집에서 활동하다 보니 운동량이 부족하고 허리가 아파서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이씨는 동네 필라테스 강습소에 등록하러 갔는데 그곳 강사이자 운영자 A씨가 "현금으로 결제하면 2만 원 빼드리겠다"며 현금 결제를 유도함과 동시에 '이중가격'을 제시했다. 이씨는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써버렸다고.
하지만 A씨의 요구를 뿌리칠 수 없었다. A씨는 "코로나19로 6개월 넘게 문을 닫았다가 지난달 간신히 문을 열었다"며 영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이씨는 15만 원 수강료를 할인받아 결제했지만,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현금영수증을 끊어달라고 얘기했다가 A씨가 펄쩍 뛰었기 때문이다.
수강료를 결제할 때까지 한마디 언급도 없던 부가세 얘기가 나왔다. A씨는 "현금영수증을 끊으려면 부가세 10%를 추가 부담해야 한다"고 말이다. 황당한 요구에 이씨는 환불받을까도 생각했지만 코로나로 힘들었을 이웃의 사정에 생각을 접었다. 이씨는 "자영업자나 소상공인들이 코로나로 힘겨운 시간을 보낸 걸 아는 이상 냉정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사실 이씨가 경험한 사례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관행처럼 굳어져 왔다. 하지만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이런 현상은 점점 더 뿌리를 내리는 분위기다. 직장인 손영식(34·가명)씨도 최근 헬스장에 등록하려고 상담을 받았는데 30만 원 상당의 금액을 신용카드 결제 시 부가세 10% 더 내라고 했다는 것이다. 또 현금 결제할 경우 현금영수증 발생을 위해서 역시 부가세를 추가 부담하라는 것이었다.
더욱 당황스러웠던 건 현금 결제 시 개인 계좌로 입금해달라는 요구였다. 손씨는 너무하다 싶어 "다른 헬스장을 알아보겠다"며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좋지만은 않았다고. 지난 2년 동안 동네 헬스장 서너 군데가 문을 닫는 광경을 지켜봤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더군다나 아는 지인도 헬스장을 운영하다 지난해 7월 정부의 코로나 거리두기 4단계 시행으로 아예 문을 닫았다. 당시 정부는 헬스장 내 러닝머신 속도를 6㎞ 이하, 음악 비트도 120bpm으로 유지하는 등 웃지 못할 방침을 세웠고, 당시만 해도 백신 미접종자가 대부분이었던 이용자들의 불만으로 많은 헬스장들이 환불 조치를 해주면서 줄줄이 폐업하는 상황이었다. 손씨는 그렇게 지인의 헬스장 폐업을 지켜봤던 터라 코로나 시국 자영업자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는 올 초부터 골프연습장에 등록해 다니고 있다. 당시에도 골프연습장 운영자는 현금 결제를 유도하며 "카드 결제 시 부가세 10% 추가 결제" 얘기를 했고, 현금영수증 발생 시에도 부가세를 내야 한다고 했다. 코로나로 인해 영업을 거의 못했으니 "사정을 좀 봐달라"는 것이었다. 손씨는 "이해가 가면서도 그 책임을 왠지 고객에게 지우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며 "이런 말하긴 싫지만 코로나 시국을 핑계로 배짱영업하는 곳이 많아진 듯하다"고 토로했다.
봄은 이사철이기도 하다. 업계에서는 2, 3월이 '이사철 성수기'라고 보고 있어서 되도록이면 이 시기를 피하는 게 이사비용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이사철 성수기를 피한다고 해도 부당하게 책정되는 비용은 어쩔 수 없다. 이달 말 이사를 계획하고 있는 주부 박수연(46·가명)씨는 지난달 포장이사업체 두 군데를 불러 견적을 냈는데 250만 원가량이 나왔다. 그런데 두 업체 모두 "부가세 10%는 별도"라면서 "카드로 결제하면 부가세 추가 부담하셔야 하지만, 현금 결제 시 부가세는 받지 않겠다"고 했다. 또 현금으로 결제하더라도 현금영수증까지 발행 시 부가세를 추가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박씨는 목돈을 한꺼번에 지불하는 게 부담돼 결국 카드로 약 280만 원을 할부 결제했다. 더군다나 현금영수증도 조건부로 끊어준다고 하니 현금으로 결제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최근 이사한 친구는 이사업체가 현금으로 결제하고 현금영수증 발행은 안 한다고 했더니, 부가세 면제와 함께 10만 원 정도 빼줬다고 하더라"며 카드 사용자에 대한 차별적 대우를 아쉬워했다.
직장인 배승호(37·가명)씨도 지난 1년 넘게 재택근무하면서 집안 인테리어를 바꿨다. 그는 지난여름 잡동사니를 쌓아놨던 방 하나를 업무 공간으로 바꾸길 원했고, 그 작업을 한 인테리어 업체에 맡겼다.
그런데 해당업체 사장 역시 현금 결제를 유도했다고 한다. 그는 "카드로 결제하면 부가세 추가 부담해야 하니 현금 결제하시라"고 말했다는 것. 현금으로 결제하더라도 현금영수증을 끊을 시 부가세를 따로 받아야 한다고도 했다.
현금 결제를 염두에 뒀던 배씨는 결국 부가세를 더 내고 인테리어 비용을 지불했다. 현금영수증을 받기 위해서였다. 신용카드 소득공제율이 15%인데 비해 현금영수증은 30%의 소득공제율을 받을 수 있어서다.
배씨는 "코로나19로 자영업자 등이 어려운 상황이라 일부러 동네 인테리어 업체에 맡겼고 군말없이 현금영수증 때문에 추가 금액까지 냈다"면서 "나중에 알고 보니 인테리어 업체는 현금영수증 발급이 법적으로 의무화돼있더라. 하지만 신고까지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신용카드 사용자에 대해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건 불법이다. 또 결제 방법(현금 혹은 카드)에 따라 '이중가격'을 제시하는 것 역시 불법. 국세청에 따르면 여신전문금융업법 19조1항에 따라 신용카드 가맹점은 신용카드에 의한 거래를 이유로 물품의 판매 등을 거절하거나 신용카드 회원을 불리하게 대우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있다.
사업자도 연 매출에 따라 의무적으로 신용카드 가맹점으로 가입해야 한다. 소득세법 162조의 2(시행령 210조의 2)에 따라 연 매출 2,400만 원 이상이면 반드시 신용카드 가맹점으로 의무가입해야 한다. 당연히 신용카드 결제 거부는 할 수 없게 된다.
만약 신용카드 결제를 거부당할 경우 신고하면 포상금도 받을 수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소비자가 신용카드 결제를 요청했으나 이를 거부당해 현금 거래하거나, 수수료 또는 부가가치세 명목으로 정가보다 높은 금액으로 카드 결제한 경우 신고할 수 있다. 거래일로부터 1개월 이내에 거래증명서류를 첨부해 국세청 홈택스를 통해 신고하거나 서면신고서를 세무서로 제출하면 되는 것이다.
신용카드 결제거부 사실이 확인되면 결제거부 금액(5만 원 초과 250만 원 이하)의 20%가 포상금으로 지급되고 소득공제 혜택도 부여한다. 단 거부금액이 5,000원 이상 5만 원 이하일 경우 지급 금액은 1만 원이며, 250만 원을 초과할 경우 50만 원을 지급받을 수 있다.
카드 결제를 거부한 가맹점은 거부 금액의 5% 가산세가 부과된다. 또다시 카드 결제 거부 시 5% 가산세 부과 및 과태료 20%가 부과되기 때문에 가맹점으로선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최근 신용카드 가맹점들의 '의무수납제 폐지'론이 재조명되고 있다.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의 부담을 덜기 위해 카드수수료율을 낮추는 것과 동시에 100원 등 소액 단위의 금액은 카드 결제를 거부하고 현금으로 받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신용카드 가맹점들은 법적으로 카드 결제를 거부할 수 없기 때문에 적은 금액의 경우 카드사의 수수료까지 떼이면 남는 게 없다는 주장을 펴왔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소비자의 불편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번번이 무산됐다. 2008년부터 국회에 1만 원 이하 소액에 대해 현금 결제를 허용하는 부분적 의무수납제 폐지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제자리 걸음이다.
현금영수증도 업종에 따라 의무발급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현금영수증 의무발행업종은 소득세법 162조의3 제4항과 법인세법 제117조의2 제4항에 따라 부가세를 포함해 거래 건당 10만 원 이상 현금거래 시 소비자가 요구하지 않더라도 현금영수증을 의무적으로 발급해야 한다. 또 거래일로부터 5일 이내 현금영수증을 자진 발급해야 한다.
현금영수증 의무발급업종임에도 미발급할 경우 해당 금액의 20% 가산세와 함께 50% 과태료가 부과된다. 국세청은 "의무발행업종 사업자는 현금영수증 가맹점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에도 현금영수증 미발급에 따른 과태료 또는 가산세 부과대상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또한 현금영수증 가맹점이 소비자의 요청에도 현금영수증 발급을 거부하거나 사실과 다르게 발급하는 경우(가맹점이 현금영수증을 임의로 취소하는 경우 포함) 신고 대상이 된다. 발급 거부를 신고한 소비자는 포상금을 받게 되는데 신용카드 결제 거부를 신고했을 경우와 같은 내용의 포상금을 지급받는다. 신고 기한도 행위가 있던 날로부터 5년 이내라 소비자에게 유리하다.
올해부터 현금영수증을 의무적으로 발급해야 하는 업종이 8개나 늘었다. 현금 거래가 많은 건강 보조식품 소매업, 자동차 세차업, 벽지・마루덮개 및 장판류 소매업, 공구 소매업, 가방 및 기타 가죽제품 소매업, 중고 가구 소매업, 사진기 및 사진용품 소매업, 모터사이클 수리업 등이다.
앞서 사례에서 소개된 필라테스·헬스장, 골프연습장 및 포장이사·인테리어 업체 등은 모두 현금영수증 의무 발행 업종에 속한다. 즉 현금영수증을 이유로 부가세를 추가로 요구할 수 없다는 말이다.
포장이사 업체에 정가보다 높은 금액을 신용카드로 결제한 주부 박씨는 "거래일이 한 달을 넘지 않았기 때문에 거래증명 서류를 만들어 신고할 계획"이라며 "주변에서도 포장이사 업체들이 부가세를 내세워 카드 대신 현금 결제하거나 현금영수증 발급을 못 받은 경우도 많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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