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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눈높이’ 아닌 ‘가슴높이’의 정치를

입력
2022.05.09 00:00
수정
2022.05.09 10:01
27면

안철수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이 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원회 공동기자회견장에서 국정과제를 발표한 후 취재진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안철수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이 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원회 공동기자회견장에서 국정과제를 발표한 후 취재진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 함께 잘 사는 국민의 나라'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가 발표됐다. 5월 10일 새 정부 출범을 하루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국민 마음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가 심상치 않다. 떠나는 대통령 지지율이 새로 시작하는 대통령 지지율을 근소하나마 앞서고 있으며, 공수 교대하는 여당과 야당은 총리와 장관 임명 동의를 놓고 밀고 당기기를 늦추지 않고 있다. 정치권과 여론에 드러난 국론 분열의 수준은 매우 심각하며, 봉합의 단초도 보이지 않는다. 다가오는 지방선거가 지역사회 도약, 그리고 잘 사는 지역주민을 위한 선거가 아닌, 또 다른 국론 양분 선거가 될 것 같아 심란하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언론도 모두 국민 ‘눈높이’를 이야기한다. 허리를 숙여 국민 눈높이에 맞춰서 국민의 생각을 사려 깊게 경청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국민 '눈높이 정치'가 국민 ‘눈치보기’ 정치가 되고 있다고 보는 것은 나의 편견일까. 역설적이지만, 눈앞의 여론 향방과 선거 결과만을 바라보는 포퓰리즘 정치가 결코 국가와 사회의 진보를 보장하지 않는다.

대의 민주주의에서의 대통령 임기제는 임기 동안 국민의 국정 위임을 의미한다. 근소한 득표율 차이로 당선된 대통령에게도 같은 권한과 책임이 위임된다. 성숙한 민주주의는 제도에 의해 선출된 지도자의 권한을 보장하고, 국민은 또 다른 민주적 제도를 통해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그래서 신임 대통령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국민에게 약속한 국정과제의 충실한 수행의 책임을 다하고, 이에 대한 국민의 평가와 판단을 겸허히 기다려야 한다.

신임 대통령이 국민 눈높이가 아닌 국민 ‘가슴높이’에 맞추는 정치를 했으면 한다. 국민 눈빛의 관찰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심장 박동을 직접 듣는 것이다. 의사가 환자의 눈빛을 바라보며 문진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청진기를 환자 가슴에 대어 소리를 듣고, 초음파 등 첨단장비로 심장의 상태를 상세히 살피는 것임은 자명하다. 이로 인해 비로소 최선의 처방이 만들어진다. 이는 주술가가 아닌 전문 의사의 역량과 경험으로만 가능하다.

국민 가슴높이에서의 수준 높은 진료와 처방을 위해서는 ‘전문가 지성’이 필수적이다. 특히 제4차 산업혁명 이후, 인류 역사 속에서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국제정세, 경제, 보건, 환경, 사회,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각 분야 최고 전문가의 지식과 경륜, 그리고 이들 분야를 연계하는 초연결 지성의 실행 능력이 필요하다. 새 정부가 필요로 하는 문제 해결 전문가들이 갖추어야 하는 실력이다. 대학에는 이런 전문가 지성이 차고 넘친다. 이를 적시 적소에 잘 활용해야 한다.

전문가 지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때, 지도자는 국정 자신감을 잃고 다시 눈치보기 정치를 하게 된다. 오롯이 우호적 여론만이 자신을 지켜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는 광적인 팬덤에 의존하는 대중 정치의 한계에 계속 머물게 되고, 따라서 국정과제의 철학과 이상을 실현하기도 힘들게 된다. 국민 눈높이 정치 자체가 잘못은 아니지만. 국민 눈치보기 정치에의 집착은 분명히 심각한 문제다.

윤석열 정부가 제시한 ‘국가 재도약’과 ‘국민 공생’의 가치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런데 이들 두 가지 가치는 숙명적으로 상호 모순적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무수히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이 갈등 관리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국가는 한 걸음도 앞으로 정진할 수 없다. 이들 가치의 최적 조화 문제를 원숙하게 해결하는 것이 전문가 지성의 역할이고, 또한 윤석열 정부의 소임이다. 이를 위해 국민 눈치보기 정치가 아닌, 국민 가슴높이 정치를 과감히 펼치기를 바란다.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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