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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왜, 북한 미사일을 ‘미사일’이라 부르지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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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잠시 연재했던 ‘정승임의 궁금하군’을 다시 새롭게 시작합니다. 군 세계에 정통한 고수보다는 ‘군알못’(군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는 글을 씁니다.
‘북, 동해상으로 미상발사체 발사’
북한에서 미사일을 쏘아 올리는 징후를 포착한 합동참모본부가 출입기자들에게 보내는 최초 공지입니다. 포착하고 통상 4, 5분 뒤 언론에 알립니다. 기자들은 이를 전달받자마자 합참 발표를 인용한 속보를 내보냅니다. "미사일을 미사일이라 부르지 못하는 문재인 정부"라는 유의 댓글이 줄줄이 달리는데요. 지난 4일 북한이 올해 들어 13번째 미사일(3월 방사포 훈련 제외)을 시험발사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발사체는 미사일과 방사포(다연장로켓), 인공위성 등 지상에서 쏴서 날아가는 모든 것을 통칭하는 넓은 개념입니다. 군 당국이 ‘미사일’로 특정하지 않고 중립적 의미의 ‘발사체’라고 두루뭉술하게 부르는 것은 "남북관계를 중시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의식하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곤 합니다. 발사체 앞에 ‘미확인’을 뜻하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도 미심쩍다는 시선이 있지요.
일본과 비교하면 의심은 더 깊어집니다. 일본 방위성은 최초 공지부터 ‘미사일’이라고 못 박는가 하면, 북한의 무력시위 소식을 합참보다 먼저 공개한 적도 꽤 많습니다. 아베 신조에서 스가 요시히데, 기시다 후미오에 이르기까지 전ㆍ현직 일본 총리들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미사일의 종류와 제원까지 확인해 준 경우도 적지 않고요.
문재인 정부는 정말 의도적으로 지난 5년간 미사일을 미사일이라 하지 않았던 걸까요. 그렇다면 대북 강경노선을 표방한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 ‘미상 발사체’라는 표현도 사라지게 될까요.
합참이 지금처럼 북한이 쏘는 미사일을 실시간 탐지할 수 있게 된 건 ‘탄도탄 감시레이더’를 도입한 2013년부터입니다. 그 이전에는 미군이 알려주기 전까지 북한이 미사일을 쏜 사실 자체를 알지 못했습니다. 미군이 북한 무력시위가 벌어지고 하루가 지나서야 귀띔해줄 때도 있었으니, 국민들에게 즉각 알리는 건 언감생심이었고요.
현재 우리 군은 지상에 배치된 ‘그린파인 탄도탄 조기 경보 레이더’와 해군 이지스함에 구축된 ‘SPY-1 레이더’ 등으로 북한의 발사체를 탐지하는데요. 우리의 통신ㆍ정보 자산과 미군의 정찰위성을 비롯한 정찰자산까지 동원해 한미 공조로 발사 직전의 사전 징후까지도 포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고성능 자산으로 실시간 탐지를 한다 해도 최초 공지는 ‘미상 발사체’일 수밖에 없다는 게 군 당국의 설명입니다. 점쟁이가 아닌 이상, 발사와 동시에 탐지된 궤적만으로 탄도미사일인지, 방사포인지, 위성인지 가려내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한미가 포착한 통신ㆍ영상 정보 등을 토대로 추가 정밀 분석이 필요하다는 거죠. 통상 ‘미상발사체 발사’ 공지 이후 1시간 전후로 미사일이냐 방사포냐, 위성이냐가 판가름 나고, 2, 3시간 전후로 사거리와 고도, 속도 등 제원이 공개됩니다.
보수 정부라고 해서 방식이 다를 리 없습니다. 실제 박근혜 정부에서도 합참의 최초 공지는 ‘불상 발사체’였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미상 발사체’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지금처럼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속보까지 챙겨보던 시절이 아니라 우리 기억에 없어 생긴 오해에 가깝습니다.
실제 문재인 정부 초기까지는 ‘불상 발사체’란 표현을 썼습니다. ‘미사일이 불상(佛像) 발사체가 됐다’며 부처님 형상과 미사일을 합성한 조롱조의 패러디물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떠돌자, 군 당국이 고심 끝에 미상(未詳) 발사체로 바꾼 것이라고 합니다. 오는 10일 윤석열 정부가 출범해도 이 구조가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떻게 처음부터 ‘미사일’로 공지할 수 있는 걸까요. 지구 지표면, 해수면의 곡률(굽은 정도)을 감안하면, 일본은 북한에서 미사일을 쏘고 나서 일정 고도 이상 올라간 뒤에야 탐지가 가능합니다. 우리보다 늦었으면 늦었지, 빨리 포착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이야깁니다. 정찰위성으로 북한의 동향을 파악한다 해도 24시간 북쪽만 쳐다보는 정지궤도 위성이 아니라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비결은 ‘배짱’입니다. 틀릴 가능성을 감수하고 무언가가 탐지되면 일단 발표부터 하고 보는 식입니다. 북한이 쏘는 발사체는 십중팔구 탄도미사일이라 위험 부담도 적습니다. 일본 방위성의 발표가 “북한 단거리 탄도미사일 쏜 듯”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과 같이 추측성으로 나오는 이유입니다.
실제 초기에 잘못된 정보를 발표해 뒤늦게 수정한 적도 많습니다. 가장 가까운 예로 올해 1월 14일에 북한이 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1발이라고 했다가 이틀이 지나 2발로 정정했는데요. 이미 우리 군 당국은 14일에 2발 발사로 발표했습니다. 군 관계자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사실을 공개하는 데 있어 신속하게 알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정확성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우리의 경우는 정확성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겁니다.
일본이 이렇게 무리수를 두는 이유는, 북한의 시험발사가 일본 국민들에게 실질적 위협이 되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전쟁을 각오하지 않는 이상, 남한을 위협하는 미사일이라 해도 남쪽이 아닌 동해상으로 시험발사하는데요. 자칫하다간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을 넘어 본토에 떨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일본 정부로선 긴급 사태에 대비해 주민들에게 가급적 빨리 알릴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북한이 1998년 8월 쏘아 올린 대포동 1호(광명성 1호)가 처음으로 일본 열도 상공을 넘어 태평양에 떨어졌을 때 일본은 패닉 상태에 빠졌습니다. 자신들 머리 위로 미사일이 지나갔다는 것 자체가 공포로 작용한 겁니다. 일본이 우리보다 북한의 시험발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입니다.
만약 북한이 남쪽으로 미사일 시험발사를 한다면 우리의 선택도 일본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실제 남쪽을 겨냥한 북한의 미사일 공격 징후가 탐지되면 행정안전부에서 15~30초 안에 대국민 경보를 하는 시스템이 구비돼 있다고 합니다.
미사일 도발로부터 하루가 지나도 군 당국이 ‘발사체’라는 판단을 유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북한이 지난달 16일 발사한 ‘신형 전술유도무기’ 때 그랬는데요. 이튿날 오전 북한 매체가 보도한 직후에야 합참이 이 같은 사실을 공개하면서도 미사일이 아닌 “2발의 발사체를 포착했다”고 밝혔습니다. 늑장 공개한 것도 모자라 ‘발사체’라고 공지하자 또다시 '청와대 개입설'이 나왔습니다.
군 당국은 “초기 탐지된 제원이 밝힐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며 “제원이나 외형은 탄도미사일에 가깝지만 체계나 운용 측면에서는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고 해명했습니다. 실제 탐지된 이날 발사체의 고도는 25㎞, 사거리는 110㎞로 웬만한 방사포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습니다. 방사포일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 미국 국방부도 이를 미사일이 아닌 장사정포로 규정했습니다.
장사정포는 미사일과 달리 추진기관과 유도 기능이 없어 정확성이 떨어집니다. 다만 북한은 장사정포에 일부 유도 장치를 추가한 방사포도 다량 운용하고 있는데, 이 경우 우리 군 당국의 지침상 미사일로 보지 않습니다. 초대형 방사포처럼 위협적인 무기가 아니면 관례에 따라 언론에 별도 공지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북한의 기술이 발달하면서 미사일과 방사포를 무 자르듯 구분하는 식의 분류가 무의미해졌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습니다.
“모든 발사체를 다 공개하진 않는다”는 합참이 발사 사실을 공지하는 경우는 크게 탄도미사일과 초대형 방사포를 쏘았을 때인데요. 상대적으로 덜 위협적인 순항미사일이나 자잘한 포 사격까지도 일일이 알리다 보면, 하루가 멀게 브리핑을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대국민 공지 여부를 결정하는 최초 승인권자가 대통령이나 합참의장이 아니라 정권 입맛에 맞게 악용될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게 군의 설명입니다. 원인철 합참의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합참 지휘통제실에서 북한의 발사 사실이 탐지되면 작전부장과 작전본부장 선에서 판단한 뒤 1차로 언론에 발표한다”며 “그 다음 2보, 3보에야 저한테 보고를 하기 때문에 누가 발표를 해라, 마라 하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럼에도 불필요한 오해가 계속 생기는 건, 북한을 지나치게 의식한 문재인 정부 탓이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북한의 반발을 우려해 “한미연합군사연습(한미훈련)을 연기하자”는 말을 공공연히 하는가 하면 북한의 무력시위를 ‘도발’로 규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청와대가 군 당국의 대북 메시지에 사사건건 관여하며 수위 조절을 요구했고요.
다만 그렇다고 해서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거쳐 판문점선언, 평양공동선언, 9ㆍ19 군사합의 등 적대행위를 중지하는 남북 합의를 이끈 현 정부의 성과까지 부정해선 안 됩니다. 천안함 피격사건(2010년 3월), 연평도 포격전(2010년 11월), 목함지뢰 폭발사고(2015년 8월)와 같이 우발적 충돌로 우리 군이 인명피해를 입은 사건이 지난 5년간 없었다는 건 호평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을 총괄해온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최근 “평화라는 것이 어느 날 손에 들어왔다고 해서 온전히 보존되지 않기 때문에 이 평화를 제도화하는 게 우리의 숙제였지만 최종적 목표에 이르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하면서도 “안보는 다른 분야와 달리 (정권 교체에 상관 없이) 연속성을 가져야 하는 분야”라고 강조했습니다.
다행히 윤석열 정부 초대 국방장관으로 지명된 이종섭 장관 후보자도 최근 현 정부의 군사 및 대북 정책 가운데 계승이 필요한 부분 중 하나로 ‘북한과의 긴장 해소 노력’을 꼽았습니다.
그러면서 남북 긴장 완화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 9ㆍ19 군사합의에 관해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은 아니다”라며 “남북 간 긴장 해소와 신뢰 구축 취지에 부합하도록 충실한 이행 여부를 확인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안보에는 여야가 없고, 보수 진보가 따로 없다’는 말이 이번에는 현실이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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