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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 "우리 편만 무조건 옳다는 정치, 계속할 이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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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에 호통과 유머 섞인 정치인 김부겸의 거리연설은 없었지만 중앙안전재난대책본부를 묵묵히 지킨 국무총리 김부겸이 있었다. 그렇게 '마지막 공직'을 마무리하는 김 총리를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만났다. 정치 은퇴의 이유를 물었을 때 그는 “우리 편은 무조건 옳고 상대 편은 무조건 나쁘다고 해야 설 자리가 있는 게 지금의 정치다. 이런 정치를 계속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자기 편을 선동하는 쉬운 길보다 상대 편을 설득하는 어려운 길을 걸어온 정치인이었다. 지역 통합을 위해 경기 군포시에서 대구로 지역구를 옮겨 보수 유권자의 마음을 얻었지만 21대 총선 낙선으로 다시 진영 정치의 벽을 절감했다. 편가르기 정치에, 묻지마 팬덤에 더 이상 정치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준 시기가 불투명하다. 새 정부 출범을 돕는 것까지 총리 역할이라고 했는데 장관 임명제청권을 대신 행사하나.
“조심스럽지만 총리 임명이 늦어지면 국회 청문보고서가 채택된 분들 중심으로 내가 제청하는 게 자연스럽다. 문재인 대통령도 (인수위 기간이 없었던 탓에) 각료가 아무도 없었는데 유일호 총리 권한대행이 역할을 했다. 당시 조류인플루엔자(AI)로 고생한 김재수 농림부 장관은 석 달이나 우리와 같이 일했다. 우리 사회가 그 정도는 성숙했다. 상징성 있는 첫 국무회의는 새로운 모습(새 내각)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있다. 청문보고서 채택이 안 된 후보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기한을 정해 국회에 한 번 더 요청하게 돼 있는데 그것까지 전임 정부 총리가 하기는 적절하지 않다.”
-내각에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역대 정부 모두 드림팀을 만들려 했다. 하지만 인사를 해 보면 특정 지역을 소외시키는 진용을 피하는 게 최우선 가치가 된다. 편중된 인사는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다. 새 정부도 차관 등 후속 인사로 더 다양한 풀을 만들 것이라 본다. 그래야 국가가 굴러간다. 소외시키고 반감을 키우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
-총리 유임설이 알려졌을 때 선을 그었다. 협치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은 안 했나.
“당선인 주변에서 아이디어 차원에서 이야기한 것이 보도된 것이다. ‘협치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임명동의를 놓고 여야 갈등을 막을 수 있다’는 논의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협치는 당과 당, 정치세력 간에 해야지 앞 정부의 인물을 한 명 데려다 쓴다고 협치가 되는 건 아니다. 적절하지 않다.”
-검수완박 입법이 민주당의 강행, 국민의힘의 합의 파기 끝에 아수라장 본회의를 거쳐 국회를 통과했고 3일 국무회의서 공포됐다. 정권교체를 앞두고 이렇게까지 무리하게 해야 하냐는 비판이 많다.
“법안에 여야가 합의하지 않았나. 말하자면 국가적 과제라는 거다. 민주공화국에서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솔직히 현재 검찰이 누리는 막강한 권력의 상당 부분이 과거 정부에서는 국정원에 의해 견제가 됐던 것들이다. 감독자가 있을 때는 순한 양들이 (현 정부에서) 무섭게 돌변했다. 국가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이런 문제는 고쳐야 하는 것 아닌가. 형사사법 체계, 국가 형벌권은 선량한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인데 어느 한 기관이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는 건 말이 안 된다.”
-검찰개혁 명분에는 동의하는 국민이 많다. 하지만 절차적 민주주의를 훼손해서야 되나. 위장 탈당뿐만 아니라 위성정당 설립, 재보궐 선거 후보를 내기 위한 당헌당규 개정 등 민주당이 절차와 원칙을 무시한 사례가 많다. 원칙 있는 패배를 주장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산을 이렇게 쉽게 내버려도 되나.
“그건 잘못했다. 부끄러운 장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노 전 대통령 같이 멀리 내다보고 국민과 소통하고 설득하며 합의 수준을 높여 가는, 더디 걸려도 공동체가 합의할 수 있는 입법 과정을 거쳤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다음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게 뻔한 상황에서 지금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성이 있었을 것이다. 부족한 것은 앞으로 고치고 채워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이 6·1 지방선거도 있는데 온 국민을 분노시켜 망할 길로 가려고 이걸 했겠나. 시대의 과제로서 정당성이 있기 때문에 한 것이다. 자꾸 문재인 대통령이나 이재명 후보를 보호하기 위한 거라는데, 요즘 새 정부 인사청문회를 보니 정말 보호받아야 할 사람은 그쪽에 있는 것 같은데.”
-문재인 정부 첫 행안부 장관, 마지막 총리로서 지난 5년간의 가장 큰 성과와 아쉬움을 꼽는다면?
“성과는 사회안전망을 광범위하게 정착시킨 점이다. 가장 큰 게 문재인 케어다. 건강보험 재정을 거덜냈다는 터무니없는 비난은 안 했으면 좋겠다. 자기 집에 중환자, 암환자 있는 사람들은 이게 얼마나 소중한지 안다. 한 집안이 거덜나는 일은 더 이상 없다. 잠시 일자리를 잃었을 때 보호하기 위한 전국민고용보험도 있다. 2025년까지 특고, 예술인, 자영업자 등 2,100만 명으로 가입이 확대되면 일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화려한 성과는 아니지만 세계 10위권 국가라면 꼭 있어야 할 배려와 제도다. 코로나라는 악재를 만나 재정 운용의 제약이 많았던 게 안타깝다.
아쉬운 점은 미래 먹거리에 대한 단단한 주춧돌을 못 놓은 것이다. 정부 초반에 일자리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길어져 산업구조 고도화, 미래 먹거리에 대한 준비, 디지털 전환이 늦은 데다 바로 코로나19를 맞았다. 부동산 정책은 자산 양극화의 수렁을 못 벗어나게 했다는 점에서 제일 아픈 점이다. 장기적으로 집값은 하향안정화해야 하고 고층(고가 집값)을 잡으려 한 건 맞는데 거래세는 조금 유연했어야 했다. 그래서 대선에서 국민들에게 혼이 나지 않았나. 다음 정부도 이런 현실을 잘 판단하기를 바란다.”
-코로나 대응은 방역 효과, 국민 수용성, 경제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해서 쉽지 않았을 텐데 최근 인수위가 “정치 방역”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은 비슷한 규모의 국가 중에서 코로나 사망자 수(2만3,000여 명·치명률 0.13%)가 제일 적다. 온 국민이 마스크를 쓰면서 협조한 덕이다. 실외에서 벗어도 된다고 했는데도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에 많이 쓰고 다닌다. 그런 신뢰로 여기까지 왔다. 2년 반 전 국민의 노력을 정치 방역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다. 정치 방역이었으면 마스크도 진작 벗었다. 나도 정치인인데 시원시원하게 할 줄 몰라서 안 했겠나. 국민을 납득시킬 때 5,100만이 모두 만족할 방법은 없다. 다만 죄송스러운 건 감염병으로부터 보호하려다 결국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엄청난 희생을 떠안았다는 점이다. 손실 보상을 집행하려니 물가, 부채 등을 고려해야 했고 우리가 쓸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절충해야 했다. 다음 정부가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질병관리청, 행안부 모두 지금까지의 일을 정리하고 있다.”
-비슷한 위기가 계속 있을 텐데 민주당은 정쟁화하지 않고 협조할 수 있나.
“경험자로서 협조해야 한다고 말하겠다. 정당의 존재 이유가 뭔가. 야당도 논쟁은 했지만 결국 협조했다.”
-총리 임기를 시작할 때부터 ‘마지막 공직’이라고 공언했는데.
“박지원 국정원장이 ‘전 세계에서 나이 80까지 공직을 맡고 있는 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한국 국정원장밖에 없다’고 이야기해 웃었다. 내가 31년 전에 김대중·이기택 민주당 공동대표 밑에서 노무현 대변인, 박지원 부대변인과 함께 부대변인을 했다. 31년이 지났다. 세상의 변화를 얼마나 감당하겠나. 벌써 판단하는 기준이 달라졌고 새로운 세대가 올라오고 있고 책을 읽어 그들을 이해할 뿐이다. 정치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 조정해 도움을 주어야 하는데, 이래 가지고 어떻게 하나. 디지털 시대 초입까지 힘겹게 따라온 아날로그 시대 사람이 변화를 예측도 못하면서 공동체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겠나. 30년 동안 개인적으로 좌절의 시기도 있었고 영광의 시기가 있었다. 국민의 사랑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이 정도로 끝내는 게 옳지 않겠나. 은퇴 후 시설 보호가 종료되는 자립준비청년을 위해 멘토단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이다.”
-과거 대구에서 선거 유세를 할 때 “대구 민심이 전국 민심과 이렇게 동떨어져서야 되나” “얼굴도 안 보고 찍어주는 선거 언제까지 할 거냐”고 보수 유권자를 질타하며 설득했고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 지금처럼 편가르기와 정치 양극화가 심각한 정치 환경에서 총리처럼 다른 편을 설득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정치인으로 해야 할 역할이 더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
“냉정하게 보자. 정치를 하면 한 진영에 속해야 하고 우리 진영에서 박수를 받으려면 상대편을 가차없이 욕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진영 내에 설 자리가 없다. 그러려면 학생운동 할 때부터 가져 온,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삶이라는 나의 가치를 버려야 한다. 인간인 이상 왜 출세하고, 권력을 갖고 싶은 욕망이 없겠나. 그래도 절제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가치, 인간으로서의 존재 이유를 잡고 있었던 덕분이다. 지금 정치를 더 하려면 우리 편은 무조건 옳고 상대편은 무조건 나쁘다고 해야 한다. 이런 정치를 계속해야 하나.”
-그런 정치를 바꿔보겠다고 보수적인 대구에서 노력해 온 것 아닌가.
“그렇게 해서 (21대 총선 때) 대구에서 떨어지지 않았나. 내가 한 일이 없어서 떨어뜨린 줄 알았다. 한 달 전에 (옆 지역구에서) 넘어온 사람(주호영 의원)을 찍어주는데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겠나. 나와 똑 같은 고민을 하다 내려온 사람이 김영춘 전 의원이다. 우리 정치 스타일이 이 시대에 안 맞는 것 같다. 소설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를 보면 시대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 그런 힘으로 우리 세대가 올라왔지만 지금은 강철이 힘을 못 쓰는 디지털 시대다. 국민이 적절한 때에 ‘이런 정치는 아니다’라고 심판할 때가 오겠지만, 우리 몫은 아니다.”
-정치가 바뀌어야 하고 이런 노력을 하는 정치인이 있어야 하는데 안타깝고 서글프다.
“과거엔 시대의 어려움이 있을 때 이러면 안 된다며 국민을 격동시키는 지사, 사상가가 있었다. ‘김대중-오부치 공동 선언’을 발표할 수 있는 그런 거물 정치인도 이제는 나오기 어렵다. 보수든 진보든 금도가 있고 부끄러움을 알아야 하는데 지금처럼 적극 지지자만 열광하는 어젠다로는 한일 관계 같은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없다.
정당구조가 바뀌어야 하고, 승자가 독식하는 권력 구조도 바뀌어야 한다. 그러려면 선출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더 고민해 봐야겠지만 독일 시스템이 성공적이라고 본다. 70여 년 동안 총리가 10명만 나왔는데 각각 시대의 과제를 훌륭하게 수행했다. 자기 정당에 불리해도 한다. 국가 운영 시스템이 선진적이고 민주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다. 과거 역사의 과오를 부인하지도 않는다. 연동형 비례제표제가 그런 방향으로 가는 첫 단계였는데 (위성정당으로) 제대로 놓지 못했다. 그걸 ‘소탐대실’이라고 말했다가 또 (당내에서) 얻어맞았다.”
-격동의 시대가 아니라 조롱의 시대가 됐다. 여야 모두 편가르기에 여념이 없고 정치 언어는 노골적 조롱으로 가득하다. 지난 대선이 그렇게 치러진 비호감 선거였다.
“대선 토론과 논쟁의 수준이 아쉬웠다. 연금개혁, 권력구조 개편, 사회안전망 토론으로 갔다면 좋았을 것이다. 부자 증세에 반감이 있다면 기득권층이 사회에서 얻은 것을 다시 돌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그런 논쟁이 있어야 했다. 후보들이 공약을 발표하기는 했는데 국민들이 ‘맞아, 이게 필요하지’하고 공감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정치권이 외면한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삶에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국가부채 증가나 양도세 중과 유보에 비판적으로 이야기하며 정부 정책이 흔들리면 안 된다고 했었다. 새 정부가 들어서 바뀌는 정책이 많을 텐데 이것만큼은 유지·계승하면 좋겠다는 게 뭔가.
“새 대통령의 철학이 있고 국민 지지를 얻었으니 변화가 있겠지만 국민과 이해당사자를 설득하고 적응 기간을 주는, 일정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특히 이어가기를 바라는 것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은 소상공인 지원인데 새 정부가 잘 할 것으로 믿는다. 또 4차 산업혁명 대응, 신산업 지원, 탄소중립 등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정책은 유지·계승할 필요가 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전국민고용보험, 국민취업지원제도 등 사회안전망도 지속적으로 촘촘하게 확대해야 한다.”
-거대 야당으로서 민주당은 무엇을 해야 하나.
“쉽지 않을 것 같다. 출중한 리더가 있는 것도 아니고 170석이 넘는 입법권을 갖고 있지만 정책 집행의 당사자는 아니다. 공동체를 위해 적절하게 협력하거나 나서야 하는데 여야의 대립이 너무 강하다. 유능하게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지방선거 결과가 나침반이 될 것으로 본다.”
-심정이 홀가분한가, 아쉬운가.
“몇 가지 조금 더 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문재인 정부의 과제는 여기까지라고 국민이 정했으니 정리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30년 넘는 공적 영역의 삶을 돌이켜보면서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제2의 삶을 준비하겠다. 당분간은 정치물을 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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