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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모독 칼부림과 군부 막후정치로… 난장판 된 파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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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파키스탄 펀자브주(州) 파이살라바드 경찰서에 한 달 전 실각한 임란 칸 전 총리와 그가 이끄는 정당 파키스탄정의운동(PTI) 지도부를 상대로 ‘신성모독죄’ 고발장이 접수됐다. 파키스탄 언론 매체 ‘돈(DAWN)’에 따르면 고발인은 무함마드 나임이라는 이름의 ‘평범한 시민’이라고 한다. 고발장에는 이른바 ‘신성모독법’으로도 불리는 파키스탄 형법 295조(종교를 모독할 의도로 예배 장소를 해롭게 하는 행위 처벌)와 그 추가 조항인 295조 A항(종교 신념을 모욕함으로써 종교적 감정을 자극하려는 사악한 행위 처벌), 그리고 종교 집회 방해 행위 처벌 조항인 296조, 선동죄 처벌 조항 109조 등이 동원됐다.
칸 전 총리가 신성모독죄 혐의를 받게 된 경위는 이렇다. 4월 10일 칸 전 총리 불신임안이 의회에서 가결된 이튿날 정권을 잡은 파키스탄무슬림연맹(PML-N) 소속 셰바즈 샤리프 신임 총리는 4월 말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다. 당시 공식 일정 중 하나로 이슬람 성지인 메디나의 이슬람 사원을 찾았는데, 파키스탄 순례자로 추정되는 한 무리 사람들이 샤리프 총리 일행에게 야유를 퍼붓고 규탄 구호를 외친 사건이 있었다. 고발인은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를 기리는 신성한 사원에서 소란을 일으킨 행위는 신성모독”이라는 논리를 펴면서 “이번 사건은 칸 전 총리와 PTI 지도부가 치밀하게 기획한 음모”라고 주장했다.
라나 사나울라 내무부 장관과 아잠 나지르 타라르 법무부 장관도 기자회견을 열어 “이 같은 고발을 하지 않을 합당한 이유가 어디에도 없다”면서 칸 전 총리를 몰아세웠다. 파키스탄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비판받고 있는 신성모독법을 정적 제거용 수단으로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칸 전 총리 정부에 몸담았던 시린 마자리 전 인권부 장관은 “더러운 책략”이라며 맹비난했다.
신성모독법은 영국 식민통치 시절이던 19세기에 타 종교에 대한 비방을 금지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한 세기가 흐른 1980년대 지아 울 하크 전 대통령 치하 군부독재를 거치며 ‘이슬람 모독 금지법’으로 변질됐다. 1982년 코란을 의도적으로 훼손하면 종신형에 처할 수 있는 규정(295조 B항)이 신설됐고, 1986년에는 선지자 무함마드를 모독하는 행위에 종신형 또는 사형으로 처벌하는 조항(295조 C항)이 추가됐다. 1991년 PML-N이 정권을 잡으면서 법은 더 엄격해졌다. 처벌 조항에서 종신형을 지우고 ‘사형’만 남겨둔 것이다.
이후 신성모독법은 정치적 반대 세력은 물론 소수 종교와 종파를 억압하는 도구로 악용돼 왔다. 2009년 6월 기독교인 여성 아시아 비비가 무슬림 이웃과 사소한 말다툼을 벌이다 신성모독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사건이 대표적이다. 비비는 2018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될 때까지 무려 10년이나 수감 생활을 해야 했다. 나지르 바티 ‘파키스탄 크리스천 포스트’ 편집장은 필자에게 “PML-N이 정권을 잡으면 신성모독 사례가 증가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2011년 단 1건에 불과하던 신성모독 처벌 사례는 2013년 5월 PML-N 정부 출범 1년 만에 100건으로 불어났다.
우연인가 필연인가. 칸 전 총리가 물러난 뒤 다시 PML-N 정부가 들어서자 신성모독죄 고발이 늘고 있다. 인권단체인 ‘파키스탄 인권위원회’는 “칸 전 총리에 대한 고발을 즉각 철회하라”며 “어떤 정부나 정당도 신성모독법을 또다시 무기화해서는 안 된다”고 성토했다.
그런데 칸 전 총리가 신성모독법을 지지해 온 인물이라는 점은 크나큰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는 2018년 7월 7일 총선을 불과 18일 남겨두고 수도 이슬라마바드에 모인 이슬람 지도자들에게 “형법 295조 C항을 지지하며 이 조항 수호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흥미롭게도 과거에는 입장이 정반대였다. 그는 2011년 출간한 자서전에서 신성모독법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경호원에게 암살당한 살만 타시르 전 펀자브주 주지사를 언급하면서 “당시 암살을 선동한 종교 지도자들을 그냥 내버려둔 것을 후회한다”고 썼다. 시시때때로 상황에 따라 바뀌는 말과 태도는 이슬람 극우세력도 마다않는 그의 포퓰리스트 면모를 잘 보여준다.
칸 전 총리 실각에는 아이러니가 하나 더 있다. 파키스탄 군부 특유의 ‘막후정치’다. 칸 전 총리는 그 막후정치의 도움으로 정치 기반을 다진 ‘수혜자’인 동시에 그 막후정치 때문에 권력에서 쫓겨난 ‘피해자’이기도 하다. 전면에서 거론되지는 않았으나 칸 전 총리가 축출된 배경에는 칸 전 총리와 카마르 자비드 바즈와 육군참모총장 간 미묘한 갈등이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파키스탄 내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두 사람이 틀어지게 된 데는 두 가지 정치적 맥락이 영향을 미쳤다. 우선 칸 총리 재임 시절 그와 친분이 두터웠던 파이즈 하미드 전 정보국(ISI) 국장이 올해 11월 임기를 마치는 바즈와 육참총장 후임을 맡고 싶다는 희망을 공공연히 내비쳤는데, 바즈와 총장이 이를 견제하면서 두 장성이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바즈와 총장은 ISI 국장직에 하미드가 아닌 다른 사람을 앉히고자 했으나 칸 총리는 자신의 심복인 하미드에게 계속 맡기기를 원했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칸 총리는 나딤 안줌 중장을 새 ISI 국장에 임명, 결국 바즈와 총장의 압박에 굴복했다.
갈등의 골은 점점 더 깊어졌고, 둘의 관계는 봉합할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달았다. PML-N과 파키스탄인민당(PPP)이 주축이 된 야당연합은 이 갈등을 파고들어 칸 총리 불신임을 추진했다. 설상가상으로 칸 총리를 호위해야 할 PTI 소속 의원 30명이 탈당하면서 PTI의 제1당 지위마저 흔들렸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이름을 밝히지 않은 전 PTI 의원은 “ISI로부터 종종 전화가 걸려 왔고, 무엇을 할지 말지에 대한 지시도 받았다”며 “칸 총리와 가까운 하미드 ISI 국장이 떠난 뒤에는 전화도 중단됐다”고 털어놨다. ISI의 ‘뒷심’이 사라진 PTI는 야당연합의 맹공에 맞닥뜨렸고, 칸 총리가 불신임 불복 수단으로 꺼낸 의회 해산 시도는 대법원의 의회 복구 판결로 속절없이 무너졌다.
파키스탄에서 5년 임기를 채운 총리는 지금껏 단 한 명도 없다. 부패 혐의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파키스탄 군부와 ISI의 막후정치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1970년대 군부 치하에서 교수형을 당한 줄피카르 알리 부토 총리가 그랬고, 샤리프 현 총리의 친형이자 칸 전 총리의 전임자였던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가 그랬다. 그리고 불과 3년 전 “우리 정부와 군은 한 배를 탔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던 칸 전 총리 역시 전임자들과 같은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부토 전 총리의 손녀로 현재 작가로 활동 중인 파티마 부토는 2018년 파키스탄 총선 당시 영국 가디언 기고문에서 “선거에서 승리한 칸은 파키스탄군이 조종하는 서커스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할 뿐”이라 꼬집기도 했다.
지금 파키스탄에선 칸 전 총리 지지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이러한 저항 움직임은 군부와 정치의 ‘하이브리드’ 결합으로 왜곡됐던 파키스탄식 민주주의를 대중운동으로 바로잡을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단, 칸 전 총리가 주장하는 미국의 ‘정권교체’ 음모론에 동조하는 게 아니라 군의 막후정치를 바로잡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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