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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는 '신분상승' 아닌 '평등' 이야기다

입력
2022.05.07 04:30
12면

<69> 페미니스트가 본 신데렐라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 상속제의 문제를 짚어 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비평 전문가 이연숙 작가는 영화, 미술, 만화 등이 여성을 어떻게 그리는지를 통해 성별화된 감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2015년 디즈니가 영화로 제작한 '신데렐라' 포스터. 다음영화 캡처

2015년 디즈니가 영화로 제작한 '신데렐라' 포스터. 다음영화 캡처


곤경에 처한 여성을 백마 탄 왕자가 구해준다. 둘은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다. 오늘날에도 드라마나 영화로 많이 사랑받고 있다. 그런데 이런 유형의 이야기를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결혼을 통해 신분상승을 이루는 의존적 여성상을 그렸다는 이유다. 과연 그럴까?

중세 유럽사를 통해 알아낸 백마 탄 왕자의 역사적 실체는 반대다. 신분상승을 한 쪽은 오히려 남성이다. 물려 받을 작위나 영지가 없는 왕자들이 조건이 좋은 공주를 찾아 백마를 타고 떠돌아 다녔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야기 속 백마 탄 왕자가 구해서 결혼하는 여성들은 다 공주들이다. 백설 공주, 잠자는 공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안드로메다 공주… 굳이 지나가던 모르는 왕자에게 청혼받지 않아도 원래 이웃 나라 왕자와 결혼하게 되는 공주들이다.

그런데 왕자와 결혼해서 계모의 구박과 고된 가사 노동에서 벗어나게 된 신데렐라는 공주가 아니다. 신데렐라의 아버지는 그림 형제 판본에는 부자(Reichen Manne)로, 페로 판본에는 신사(Gentilhomme)라고 적혀 있다. 왕족끼리 결혼하는 유럽 왕실의 풍속으로 보면 신데렐라는 왕자와 정식 결혼을 할 수 없는 신분이다. 이런 여성이 왕자와 사랑에 빠지면 어떻게 될까?

'귀천상혼' 금지의 역사

1842년 '지젤'을 연기한 발레리나 카를로타 그리시 초상화. 위키피디아 캡처

1842년 '지젤'을 연기한 발레리나 카를로타 그리시 초상화. 위키피디아 캡처


고전 발레로 유명한 '지젤'을 보자. 농민의 딸 지젤은 영주의 아들 알베르트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알베르트는 지젤에게 시골 청년 로이스라며 신분을 감춘다. 약혼한 공녀가 있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사실을 알게 된 지젤은 상심 끝에 죽어서 숲에 들어온 젊은이를 죽을 때까지 춤추게 만드는 요정 '빌리'가 되었다. 그러나 알브레히트가 죽을 위기에 처하자 구해준다.

'지젤'은 독일판 처녀귀신 전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설화는 기록되지 않은 민중의 역사다. 실제로 '백마 탄 왕자'를 만난 평민 여성의 사랑은 이런 슬픈 결말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신데렐라'처럼 정식으로 결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드물게 있기는 있었는데, 그런 결혼을 '귀천상혼(貴賤相婚·morganatic marriage)'이라 불렀다.

국립발레단의 '지젤' 공연 한 장면. 국립발레단 제공

국립발레단의 '지젤' 공연 한 장면. 국립발레단 제공


귀천상혼은 말 그대로 귀한 신분의 사람과 천한 신분의 사람이 결혼하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왕이나 공작, 후작, 백작 등 귀족 가문의 남성과 낮은 신분 출신 여성의 결혼을 말한다. 이때 아내는 남편의 작위나 특권을 함께 누릴 수 없다. 태어난 아이들은 아버지의 작위나 영지, 가문의 재산을 상속받을 자격을 박탈당한다.

예를 들어 공작과 농부 여성이 결혼한다면, 여성은 공작부인의 대우를 받을 수 없다. 둘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아버지의 공작 작위와 영지, 유산을 물려받을 수 없다. 단, 둘의 결혼은 법적으로 승인받는다. 여성은 첩이나 정부가 아니라 정실부인이다. 그러나 귀부인이 아니기에 귀족 사회의 공식 행사에 초대받지 못하고 따돌림을 당한다.

게르만족의 관습법은 원래 남자 후손에게 토지를 균등하게 분할해 상속하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 땅의 면적은 한정된 반면 상속받을 사람은 계속 늘어난다. 갈수록 영토가 작아져서 가문의 영향력은 약해지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왕족이나 귀족의 전체 숫자를 줄이는 방법을 고안한다. 왕족은 왕족끼리, 귀족은 귀족끼리 결혼하게 한다. 격이 떨어지는 결혼은 상속권을 박탈한다. 그 결과, 수백 개의 봉건 영주 국가로 나뉘어 발전한 독일어권 지역은 프랑스나 영국에 비해 귀천상혼 금지가 더 엄격히 지켜졌다.

843년 3개로 분열한 프랑크 왕국 지도. 프랑크 왕국은 카롤루스 사후 게르만 상속법에 의해 3개로 분할 상속되어 국력이 약해졌다. 분열된 동프랑크, 서프랑크, 중프랑크는 지금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로 발전한다. 위키피디아 캡처

843년 3개로 분열한 프랑크 왕국 지도. 프랑크 왕국은 카롤루스 사후 게르만 상속법에 의해 3개로 분할 상속되어 국력이 약해졌다. 분열된 동프랑크, 서프랑크, 중프랑크는 지금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로 발전한다. 위키피디아 캡처


봉건제가 성립하는 과정에서 유럽 귀족들 간에 장자 상속제가 자리 잡는다. 그로 인해 비교적 결혼의 자유를 얻은 다른 아들들과 달리 가문을 계승할 장남은 엄격한 귀천상혼 금지를 지켜야 했다. 장남이 가문의 반대를 무릅쓰고 낮은 신분의 여성과 결혼하려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대신 작위를 계승시킬 남동생이 있는 경우에는 지위와 상속을 포기하면 결혼이 가능했다. 그러나 외동아들인 경우, 부모는 가문과 하나뿐인 아들 둘 다 포기할 수 없었기에 아들의 귀천상혼을 승낙해 주지 않았다. 귀천상혼도 둘째 이하 아들의 경우에나 가능했던 것이다.

귀족을 사랑한 죄… '마녀'의 이유가 되다

1618년 신성로마제국 지도. 현재의 독일어권 지역인 신성로마제국에 300여 개가 넘는 나라가 있다. 독일어권에 백마 타고 떠돌아 다니는 왕자가 많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위키피디아 캡처

1618년 신성로마제국 지도. 현재의 독일어권 지역인 신성로마제국에 300여 개가 넘는 나라가 있다. 독일어권에 백마 타고 떠돌아 다니는 왕자가 많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위키피디아 캡처

그런데, 신데렐라가 사랑에 빠진 남자는 하급 귀족의 아들도 아니고 무려 한 나라의 왕자님이다. 이런 경우가 진짜로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바이에른-뮌헨 공작 알브레히트 3세는 아그네스 베르나우어(1410년경~1435년)와 결혼했다. 알브레히트는 아버지 에른스트 공작의 유일한 아들이었다. 아그네스는 이발소 혹은 목욕탕집 딸이라고 전해진다. 알브레히트와 아그네스는 1432년경 비밀리에 결혼한다. 에른스트 공작은 유일한 상속자인 아들의 귀천상혼을 용납할 수 없었다. 같은 신분의 공녀와 정략 결혼시켜서 거액의 지참금을 받거나 처가의 영지를 상속받아 공국을 부강하게 만들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게다가 이 결혼으로 탄생할 자손은 공작 작위 계승권이 없다. 그렇다면 후에 주인 없는 바이에른-뮌헨 영지를 탐내는 이웃 나라들과 전쟁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에른스트 공작은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을 없애려 든다. 며느리인 아그네스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아들이 집을 비운 사이에 마녀라는 누명을 씌워 아그네스를 체포하여 도나우강에 빠뜨려 죽인다. 알브레히트는 아버지와 전쟁을 준비하다 황제가 중재에 나서자 포기하고 아그네스를 애도하기 위해 수녀원을 짓는다. 에른스트 공작도 아그네스를 위한 교회를 지었다. 이후 부자는 화해했다. 그리고 알브레히트는 아버지가 주선해준 브라운 슈바이크의 공녀 안나와 결혼해서 자녀를 10명이나 낳았다.

이렇듯, 왕자와 귀천상혼에 성공하여도 시댁에서 며느리로 인정받기란 어려웠다. 차별받고 따돌림당하고 공작부인으로 행세하지 못하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천한 것이 감히 귀족 남성을 홀린 죄로 마녀로 몰려 처형당할 수도 있었다. 평민 여성이 왕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은 행운이 아니었다.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일이었다.

유럽 왕실은 후궁이나 하렘을 두지 않았다. 일부일처제를 규정한 크리스트교의 영향이다. 그렇다고 왕실의 남성들이 모두 정략결혼한 부인에게 충실했던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지참금과 영지를 가져오고 후계자를 낳아줄 여성과 결혼하고 개인적인 애정을 위한 여성을 따로 만났다. 그러기에 평민 여성이 사냥이나 영토 시찰 중인 '백마 탄 왕자'를 만나는 것은 결코 행운이 아니었다. 왕족으로 편입해 신분상승할 기회가 아니라 강제로 첩이 될 위험에 처한 것이다.

신데렐라가 '혁명적'인 이유

1873년 월터 크레인의 신데렐라 삽화. 구글 캡처

1873년 월터 크레인의 신데렐라 삽화. 구글 캡처


이런 현실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자. '신데렐라'의 요정 대모는 왜 신데렐라에게 "밤 12시 전까지 돌아오라"고 당부했을까? 밤 12시까지 돌아오라는 말은 그날 안에 돌아오라, 잠을 자지 말고 오라는 말이다. '잠을 잔다'는 것은 성관계를 하는 것을 돌려서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 당부는 왕자와 섣불리 성관계를 해서 첩이 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닐까?

신데렐라는 당부를 명심한다. 더 있어달라는 왕자를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따금 구두 한 짝을 꺼내 보며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 즐거운 추억이 생긴 정도에 만족한다. 한편, 무작정 붙잡던 눈먼 욕망이 식고 나서도 왕자는 신데렐라가 그립다. 신분과 상관없이 그녀를 진지하게 대할 것을 다짐한다. 왕자는 구두 한 짝을 들고 신데렐라를 찾아 나선다. 마침내 둘은 모든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정식으로 결혼한다. 이리하여 신데렐라는 귀천상혼에 제약받지 않고 왕자비가 되었다.

'신데렐라'는 구전되던 설화가 바탕인 이야기다. 설화를 즐기던 민중들은 이렇게 하룻밤 성적 노리개가 되거나 잘되어 봐야 첩이 될 신분의 여성을 왕자와 정식으로 결혼시킨다. 한참 왕자가 달아올랐을 때 뿌리치고 가버리는 신데렐라는 보여준다. 우리는 너희들의 욕망을 위해 이용당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신분, 재산, 권력과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사랑은 평등한 관계에서만 진실하다는 것을. 그러기에 나는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놀라운 혁명성을 발견한다. 신데렐라 이야기가 오랜 시간 동안 전 세계에서 사랑받은 진짜 이유는 바로 이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스트라고 '백마 탄 왕자 이야기'나 '신데렐라'를 부정적으로 보고 즐기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없다.


박신영 작가

박신영 작가


박신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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