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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부터 문재인까지... 청와대 개방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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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새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는 5월 10일을 기해 전면 개방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으로 공약 이행의 첫 단추를 끼우게 됐다.
알고보면 청와대 개방은 국민과의 소통을 중시했던 역대 대통령들의 단골 이벤트였다. 청와대를 '구중궁궐'로 여기는 국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개선하고 민심을 얻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부터 문재인 대통령까지 이어온 청와대 개방의 역사를 사진과 함께 정리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벚꽃 개화 시기가 되면 2~3일간 경무대 경내 일부를 일반에 공개했다. 당시 경무대를 찾은 시민들은 벚꽃을 비롯해 다양한 꽃이 만개한 경내 정원과 물고기가 노니는 연못을 줄지어 다니며 구경했다. 대통령 집무실 바로 앞에서 이 대통령 부부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공원이나 유원지 등 향락 시설이 마땅치 않았던 그 당시 상춘객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곳이 바로 경무대였던 것이다. 1955년 4월에는 이곳을 찾는 시민들 수가 무려 6만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4.19혁명 직후 취임한 윤보선 전 대통령은 취임 후 넉달 만인 1960년 12월 30일 ‘경무대’라는 이름을 '청와대'로 바꿨다. 집무실 이름을 바꾸고 정책도 새로 입안했지만 전임인 이 대통령의 경무대 개방 조치는 변함없이 이어갔다. 윤 대통령 시절에도 4월 벚꽃이 필 때면 청와대에는 일반 시민들로 넘쳐났다. 이때 청와대를 찾은 상춘객 대다수가 전국 각지에서 상경한 지역 주민들이었고, 서울 시민들은 청와대보다 창경원을 많이 찾았다고 한다.
5·16 군사 쿠테타로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도 청와대 개방은 연례 행사로 반드시 지켰다. 점심식사를 하거나 운동을 하기 위해 경내를 이동하던 박 전 대통령이 일반 시민들과 만나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한 번은 어린이 방문객과 마주친 박 전 대통령이 “공부 열심히 하라”고 격려하며 웃었다는 일화도 전해졌다.
그러나, 1968년 북한 무장공비가 청와대 뒷산까지 침투한 '1ㆍ21사태(김신조 사건)'가 발생하면서 청와대 개방은 장기간 중단됐고 대통령 경호가 한층 강화됐다. 청와대 앞 길을 비롯한 주변 도로가 전면 차단되고, 인왕산과 북악산 역시 순차적으로 출입이 금지됐다. 이후 20년 가까이 청와대는 국민들 사이에서 다가갈 수조차 없는 삼엄한 장소가 됐을 뿐 아니라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알 수 없는, 말 그대로 구중궁궐로 변해갔다.
12·12 군사반란으로 집권한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는 그야말로 폐쇄된 궁궐이었다. 취임식 당일 일반 시민들을 청와대로 초청했지만 그날 하루 만의 이벤트였고 이후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일반인들을 청와대에 들이지 않았다. 청와대 경내 유일한 전통 한옥 상춘재가 1984년 세워졌지만, 준공 행사조차 열지 않을 정도로 폐쇄적인 공간이 됐다.
1988년 2월 25일 국민 직접 선거를 통해 당선, 취임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청와대 개방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다. 노 전 대통령은 이 공약을 지키기 위해 그 해 3월 1일 청와대를 개방하면서 첫 손님으로 충북 음성군에 거주하는 나환자 300여 명을 영빈관으로 초청 했다. 같은 날 일반인 1,300여 명도 청와대를 방문했다. 청와대 개방이 공약이었지만 당시에는 상시 개방이 아니고 국가적인 기념행사가 있는 경우에만 개방을 했다. 이듬해는 1989년 2월 24일부터 5일간 취임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청와대를 개방했는데,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5,000여 명의 시민들이 청와대 경내를 둘러보고 돌아갔다.
'역사 바로세우기'를 기치로 내건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3년 취임과 동시에 청와대 경내에 남아 있는 군사독재의 잔재를 청산했다. 그 첫 사례가 1·21 사태 이후 설치한 청와대 앞 바리케이드. 취임식이 열린 그해 2월 25일 일반인의 접근을 막던 바리케이드를 철거해 청와대 앞길을 전면 개방했고, 인왕산 등산로도 일반인의 출입을 허용했다.
전임인 노 전 대통령이 시작한 청와대 경내 관람 범위를 넓히는 한편, 청와대 외곽에 있던 궁정동 안가를 허물고 시민들을 위한 무궁화 동산으로 조성했다. 또한, '효자동 사랑방'을 열어 역대 대통령들이 해외 국빈들에게 받은 선물을 전시하는 등 청와대 주변을 시민들을 위한 휴식공간으로 만들어 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청와대 개방 확대를 이어받아, 취임 첫해인 1998년에는 청와대 경내 관람 대상을 단체에서 개인 및 외국인까지 허용했다. 2001년 11월 청와대 서편 조선 후궁들의 위패가 모셔진 칠궁을 청와대 관람 코스에 넣었고, 첫 해에만 2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청와대를 관람하기도 했다.
2003년 취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와대 관람 범위를 더욱 확대했다. 본관을 경유해 녹지원까지 넓힌데 이어 2006년 9월엔 1·21사태로 민간인 출입이 통제된 경복궁의 북문 '신무문'을 38년 만에 개방했다. 이듬해 4월엔 역시 40년 가까이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돼 온 청와대 뒤 북악산 등산로를 국민에게 돌려줬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혼자 보기가 좀 미안한 것 같더라"고 소회를 밝혔다고 알려졌다.
낡은 권위주의를 탈피하겠다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효자동 사랑방을 확대, 개축해 역대 대통령의 발자취를 볼 수 있는 관광홍보관 ‘청와대사랑채’를 열었다. 또, 청와대 앞까지 다니는 시내버스 노선도 만들어 운행을 시작하면서 시민들의 일상적 접근성을 확보했다.
문화융성을 강조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5월 사랑채 2층 청와대관을 개편해 대통령의 애장품을 전시하거나 사진촬영과 같은 체험코너를 통해 볼거리와 접근성을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명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면서 다시 구중궁궐이라는 청와대의 별명이 부각됐고, 박 전 대통령 탄핵 후 치러진 대선에서 청와대로부터 집무실 이전이 선거 공약으로 등장했다.
2017년 5월 10일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그 해 6월 26일부터 청와대 앞길을 검문 절차 없이 야간에도 자유롭게 통행 할 수 있도록 완전 개방했다. 그 동안 주간에만 제한적으로 개방해 온 청와대 본관 앞 분수대~춘추관 구간을 야간에도 시민들이 자유롭게 걸어다닐 수 있게 한 것이다. 1968년 무장공비가 청와대 뒷산까지 침투한 1·21사태 이후 50년 만의 완전 개방이다.
문 대통령은 2020년 11월 1일 북악산 북측면을 일반에 개방한 데 이어 최근 청와대 건물 뒤편으로 이어지는 북악산 남측 면까지 개방해 54년 만에 북악산 전체를 국민들 품으로 돌려줬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취임식이 마무리되는 10일 정오에 맞춰 청와대를 시민에게 전면 개방한다고 밝혔다. 이는 역대 대통령들이 부분적으로 해 온 개방과 달리 완전한 개방을 의미한다. 그동안 청와대 개방은 일부 시민들이 정해진 코스를 이용해 청와대를 관람했지만, 이제는 미리 신청만 하면 전 국민 누구나 자유롭게 청와대 경내를 둘러 볼 수 있게 됐다. 또한, 이미 개방된 북악산 등산로를 이용하면 정상에서 청와대와 서울시내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도 있다.
50여 년에 걸쳐 국민들과 거리를 두고 있던 청와대가 국민의 품속으로 들어올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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