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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 배틀'에서 이겨 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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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한국인도 육아휴직 못 쓰는 곳 수두룩하다. 감성팔이 말아라.'
여성가족부 산하 가족센터에서 일하는 결혼이주여성이 겪은 직장 내 차별을 다룬 기사에 달린 '베스트' 댓글이다. 육아휴직을 쓰고 싶었지만, 센터에서 대체 인력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던 사례를 다룬 기사였다. 이 노동자는 애초엔 육아휴직을 아예 쓰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나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구걸해 가며' 겨우 2개월의 휴직에 들어갔다고 했다. 복직 후 따돌림이 시작됐고, 자신과 달리 한국인 직원은 자유롭게 육아휴직을 쓰는 걸 보고 차별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이 노동자뿐 아니라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가 가족센터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 11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한국인 직원과 비교했을 때 차별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응답은 86.4%(102명)에 달했다. 전국의 관련 노동자는 500명 남짓. 적지 않은 인원이 조사에 참여했다. 직장 내 괴롭힘이나 인권침해로 인한 스트레스로 이직이나 사직을 고민한다는 이들(36.5%)뿐 아니라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는 이주 노동자도 7.6%나 됐다.
가족센터 내 이주노동자가 겪는 육아휴직 거부나 직장 내 괴롭힘은 법 위반이다. 이런 인권침해에 '내국인도 불행하다'라는 반응은,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대기업에 다니는 여성의 육아휴직 비율은 24.1%,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절반 수준인 12.4%로 뚝 떨어진다. 많아야 부모 10명 중 2명꼴로 육아휴직을 쓰는 셈이니 보편적인 제도라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내국인도 못 쓰니 외국인은 꿈도 꾸지 말라'는 식의 대처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에서도 개선의 의지는 없었다. 기사를 보고 전화를 걸어온 여가부 관계자는 자초지종을 알아봤다며 "그분이 스스로 대체 인력에 대한 고민으로 육아휴직을 2개월만 쓴다고 말했다더라"라고 했다. 가족센터에 외국어를 하는 사람이 없어 업무 공백이 걱정된 마음에 휴직 기간을 다 채우지 않았다는 것. 그러면서 "최근 다른 직원이 육아휴직을 가자 그런 얘기를 하게 된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최저임금 수준인 급여를 향한 불만에도 "수당을 올려주는 과정에서 내국인 직원이 '역차별'을 느끼고 있다"라는 반응이었다.
곧이곧대로 믿기 힘든 해명이지만 사실이라 치자. 노동자가 업무에 차질을 우려해 육아휴직 1년을 채 쓰지 못하고 일터로 돌아오는 노동 환경은 비정상적이다. 다른 조직도 아닌 정부, 그것도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목표를 가진 여가부에서 노동자가 자의로 권리를 포기했으니 괜찮다고 손을 털 수는 없는 일이다. 심지어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 인상을 둘러싼 역차별 운운은 온라인 반응과 다를 바 없었다.
"최근에 가족센터에서 일하는 이주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이 언론에 보도됐다. 대부분의 반응은 혐오였다. 인권침해를 당한다고 호소했는데, 왜 우리는 다시 혐오의 대상이 되어야 하나." 1일 세계 노동자의 날 열린 이주노동자대회에 참여한 가족센터 이주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기사를 쓴 당사자로서 면목이 없었다. 누가 더 힘든지 겨루는 '불행 배틀'에서 승자는 없다. 이겨 봤자 남는 건 불행뿐이다. 어차피 살아가야 한다면 너도나도 사이좋게 육아휴직을 못 가는 세상보다는 가는 세상을 위해 힘쓰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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