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똑 닮은 자들의 정치

입력
2022.05.04 00:00
27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반대(왼쪽)와 대통령 집무실 용산이전 반대 집회. 연합뉴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반대(왼쪽)와 대통령 집무실 용산이전 반대 집회. 연합뉴스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과 검수완박, 두 사안이 서로 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둘 다 '묻지마 ○○'이라는 점에서 닮았다. 청와대 이전과 검수완박, 필요하면 할 수 있다. 다만, 대통령실 용산 이전이 왜 대통령 인수위의 첫 국정과제이어야 하는지, 검수완박이 왜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의 첫 핵심 과제여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윤석열 당선인과 민주당 모두 충분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두 주체 모두, 우리 사회 주요한 변화를 가져올 일을 추진하면서,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핵심적인 질문들에 답하지 못한 채, 디데이를 향해 그저 내달리고 있다.

두 이슈 모두 시기 및 절차에 있어서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닮았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미래 서울의 모습을 설계하는 것과 연결된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전 자체도 중요하지만, 이전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를 모아내는 것 또한 중요하다.

검수완박 역시 마찬가지이다. 검찰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에 일정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현재 민주당에서 추진하고 있는 검수완박의 시기나 방식에 대해, 또 어렵게 성사된 여야 간 합의를 깨뜨린 국민의힘에 대해서 많은 시민들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사회 구성원과 충분한 논의를 거쳐 차분히 진행하면 될 일들이, 시기 및 절차적 정당성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채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과 검수완박은 서로 닮았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서로를 향해 비방을 쏟아내는 이들이, 정작 일을 추진하는 방식에서는 서로 놀랍도록 닮아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나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정치권이 실체가 없는 허공에서 서로 섀도복싱을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을 어렵게 하는 진짜 문제와 싸우게 할 수는 없는지 말이다. 이루고자 하는 선한 목표를 민주적 절차의 정당성도 함께 확보하며 추진하게 할 수는 없는지 말이다. 시민들이 제기하는 의문에 진지하게 답하게 할 수는 없는지 말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선수를 바꾸면 해결되는 문제인지, 바꾼다면 어떤 선수로 바꿔야 하는지,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매일 질문한다. 쉽게 답을 찾지 못하니 답답하다. 그럼에도 쉬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공동체의 진짜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는 존재들 간의 연대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매일 안갯속을 걷는 것 같지만, 그 와중에 기쁜 소식이 있다. 나와 비슷한 질문을 가진 이들을 요즘 하나, 둘, 열, 스물, 백 만나고 있다는 거다. 새로운 세계관을 탑재한 이들이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를 직접 그려보겠다며, 길을 나서고 있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다는 거다.

"우리는 없던 길도 만들지"라며 뚜벅뚜벅 담대하게 걸어가는 존재들이 있다. 세상을 바꿀 수는 없어도, 없던 길을 만드는 이들과 함께 걸어갈 수는 있는 법. 늘 같은 속도, 같은 열정으로 걸어가진 못해도, 질문하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다.

"없던 길을 만들어줘서 고맙습니다." 가던 길을 계속 가도 되겠는지 답답해 하늘을 올려다볼 때마다, 계속 걸어갈 힘을 주었던 동료들에게, 담대하게 새 길을 만들어내고 있는 동 세대 동료들에게 이 지면을 빌려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김경미 섀도우캐비닛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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