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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과거사 대책본부'를 설치하자

입력
2022.05.04 00:00
26면

尹정부 출범 한일관계 개선 기대
과거사 문제는 여전히 걸림돌
초당적 범정부 대책본부 필요

정진석 국회 부의장이 지난달 26일 일본 총리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게 윤 당선인의 친서를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진석 국회 부의장이 지난달 26일 일본 총리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게 윤 당선인의 친서를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차기 정부의 대일 외교가 가동하기 시작했다. 정부 출범을 앞두고 일본에 '한일정책협의대표단'을 보내 일 정부, 의회의 최고 지도층 인사와 접촉하며 최악의 상황에 놓인 한일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의견을 활발히 나눴다. 강창일 주일대사가 부임한 지 1년이 넘도록 총리는커녕 외무장관도 접견하지 못한 상황에서 윤 당선인이 파견한 대표단을 기시다 총리, 하야시 외무장관, 마쓰노 관방장관, 기시 방위장관, 하기우다 경제산업장관 등 내각 수뇌부 인사들이 환대해 주었다는 것 자체로도 그 의미는 크다.

이로써 한일관계 악화의 최대 원인이었던 지도자 간의 불통과 불신을 다소나마 해소해 신뢰를 회복하고 관계 복원의 물꼬가 트일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상호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측은 강제징용, 위안부 문제에는 여전히 강경한 자세를 누그러트리지 않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대표단에 "옛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를 비롯한 양국 간 현안 해결이 필요하다"며 강제징용 문제 해결을 거듭 압박했다. 정진석 단장도 "일본은 한일 간 갈등으로 자리 잡고 있는 일본기업의 현금화 문제,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귀국 회견에서 밝혔다. 결국, 새 정부가 들어서도 과거사 현안 해결 없이 한일관계 개선을 꾀하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강제징용, 위안부 등 한일 과거사 문제는 최고 지도자의 용단만으로 간단히 풀 수 있는 과제일까. 그렇다면 왜 문재인 정부를 포함하여 역대 정부가 이 문제로 시름하면서도 속 시원하게 매듭짓지 못했을까. 한일 과거사 문제는 어느 한 사람의 지혜나 묘수로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이슈가 아니다. 이 점에서 필자는 한일 과거사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루는 가칭, '한일 과거사 대책본부' 설치를 제안한다. 본부장은 대통령이 맡고 실무총책으로 장관급의 사무총장을 두면 좋을 듯하다. 이 본부는 첫째, 한일 과거사 정책 수립 및 대일 협상, 둘째, 보상 지원 등의 피해자 구제, 셋째, 자료수집과 조사연구 및 국내외 홍보 기능을 수행한다.

사안의 성격이 국내 정치와 외교에 두루 걸쳐 있고 국민 여론이 첨예하게 반응하는 복합적 외교 이슈를 다루기 위해 특별 조직을 설치하는 사례는 미국과 일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998년 8월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하고 금창리 핵시설에 대한 의혹이 의회, 여론 등에서 빗발치자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은 1999년 페리 전 국방장관을 '대북정책 조정관'으로 임명하여 대북정책 전반을 재조정하는 작업을 진행했고 그 결과로 나온 것이 '페리보고서'이며 '페리 프로세스'이다.

일본은 2006년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를 다루기 위한 전담부서로 '납치문제 대책본부'를 내각에 설치했다. 그 이후 일본 정부는 총리를 본부장으로, 대책본부의 실무총책으로 장관을 두고 있다. 이 조직에는 수십 명의 관료와 전문가가 포진해 있고, 매년 수백억의 예산을 쓰고 있다. 일본은 납치 피해자로 단 17명을 공식 인정했다. 이 중 5명은 이미 일본으로 송환되었고, 나머지 12명에 대해 북한은 8명은 사망했고 4명은 입북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북한은 납치문제 대책본부를 "유령과 싸우는 조직"이라고 비난하지만, 일본은 납치문제를 대북외교의 최우선 의제로 15년째 다루고 있다.

우리 외교과제 중 난제 중의 난제인 한일 과거사 문제를 풀어갈 '한일 과거사 대책본부'의 총책임자는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나 김진표 한일의원연맹 회장과 같이 전문성과 정치력을 겸비한 초당적인 고위급 인사가 맡는다면 제격일 것이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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