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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가 있는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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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댕' 멜로디와 함께 송해가 "전국"이라 쩌렁하게 선창하면, 객석은 일제히 "노래자랑"을 외치며 화답한다. 일요일 한낮을 깨우는 이 오래된 인사 세리머니는 이제 우리들 삶의 일부가 됐다. 이어 저 유명한 시그널 음악이 울려 퍼지면, 느긋하던 휴일 오후는 따뜻한 삶의 리듬 속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KBS 간판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은 단순한 방송이 아닌, 한국인들의 문화적 지문이다. 우리들의 일요일은 '전국노래자랑'이라는 공통의 감각으로 연결되어 있다. 가족끼리 모여 앉은 거실에서, 허기를 달래려 들어선 음식점에서, 게으른 휴일 늦잠에서 깨어난 한낮에 이 오래된 방송이 흘러나와야만 우리는 비로소 안심한다. 익숙한 삶의 감각 안에서 이 세계가 여전히 안전하고 평화롭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기 때문이다.
세련된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전국노래자랑'의 존재감은 여전히 크다. 어떤 연출의 자의식도 느껴지지 않는 이 소박한 음악 경연은 경쟁보다 잔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음정과 박자를 놓쳐 "땡" 하고 탈락하더라도 왁자하게 한 번 웃고 나면 그만이다. 민망함이라는 삶의 감정을 이웃들은 응원과 격려로 감싸 안는다. 그리고 화려한 조명의 도움 없이, 한낮의 햇빛 아래 삶의 민낯들이 솔직하게 비춰진다. 이 무대엔 승부의 긴장도, 우열을 다투는 악착스러움도 없다. 누구도 소외받지 않는, 모두가 주인공인 대동의 세상이다.
이 아름다운 세계의 지휘자는 송해다. 그가 없는 '전국노래자랑'은 상상할 수 없다. 그의 진행 능력이야 대체재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하지만, 가장 중요한 미덕은 그의 공감 능력이다. 서민들 삶의 애환을 함께 호흡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스스럼없이 장단을 맞춘다. 그는 방송 큐 카드도 없이 모든 상황을 즉흥적으로 맞이한다. 무대에서 권위와 체면을 다 벗어던지고, 이웃들 삶의 감정 속으로 용감하게 걸어 들어간다. 거기서 예측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캐낸다. 이 놀라운 무대 감각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다. 출연자의 사연에 함께 울고, 함께 춤추고 노래한다. 악단장에게서 용돈을 빼앗아 꼬마 출연자에게 주는 짓궂음도 송해만의 것이다. 42년 된 이 프로그램에 새로울 것이라곤 더 이상 없을 것 같은데도, 볼 때마다 빨려 드는 이유다.
이 마에스트로의 나이가 지금 아흔다섯이다. 'TV 음악 탤런트 쇼' 부문 최고령 진행자로 기네스북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프로그램을 진행한 지 벌써 34년째다. 경이롭다. 코로나19로 2년 동안 중단됐던 '전국노래자랑' 야외 녹화가 곧 재개된다고 한다. 우렁찬 송해의 목소리가 다시 일요일 한낮을 채울 것이다. 그때 우리는 잃어버렸던 일상이 회복됐음을 제대로 실감하게 될 것이다.
이 오래된 송해의 목소리가 사라진다면 일요일 한낮은 얼마나 허전하고 쓸쓸할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가 없다면 우리들 삶의 감각 일부가 떨어져 나갈 것이다. '송해가 있는 일요일'이 앞으로 얼마나 더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부디 선물 같은 이 시간이 오래오래 이어졌으면 좋겠다.
실향민인 그의 꿈은 '전국노래자랑'을 고향인 황해도 재령에서 하는 것이다. 조만간 그날이 기적처럼 오길 바란다. 긴 세월 동구나무처럼 변함없이 우리들 삶을 위로해준 그에게 머리 숙여 인사한다. 고맙습니다, 송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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