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관을 대신해 소리 전달...난청인 돕는 '인공와우' 원리

입력
2022.05.03 04: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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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귀 뒤쪽에 인공와우를 착용했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코클리어코리아 제공

아이는 귀 뒤쪽에 인공와우를 착용했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코클리어코리아 제공

올해 아홉 살이 된 에린(Erine)양은 태어난 지 보름 만에 청각장애 진단을 받았다. 에린양의 청각기관은 빠르게 악화됐고 세 살이 되기 전 양쪽 청력을 거의 잃었다. 선천적으로 달팽이관에 문제가 있는 '감각신경성 난청'이었다. 한창 말을 배우던 시기의 청력 손실은 언어 발달에까지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았다. 에린양의 부모가 택한 방법은 달팽이관을 대신해 외부 소리를 전달해주는 장치, '인공와우'였다.

현재 에린양은 한국어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며 태권도와 수영, 체조를 즐긴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귀 뒤쪽에 특별한 장치가 있다는 점만 빼면 여느 아이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고장난 귀의 기능을 인공와우라는 기계가 대신해주고 있는 덕분이다.

"소리라는 진동을 전기신호로"...달팽이관 역할 대신하는 인공와우

인공와우가 소리를 전기신호로 변환해 달팽이관에 전달하는 원리. 코클리어코리아 제공

인공와우가 소리를 전기신호로 변환해 달팽이관에 전달하는 원리. 코클리어코리아 제공

우리 귀가 소리를 듣는 과정에는 수많은 기관이 관여돼 있다. 한 군데라도 기능을 하지 않으면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다는 뜻이다.

먼저 공기를 타고 귀에 닿은 소리는 귓바퀴를 통해 모아져 고막을 진동시키고, 이 진동은 중이에 있는 추골, 침골, 등골이라는 세 개의 뼈(이소골)를 지나 달팽이관에 전달된다. 긴 관이 두 바퀴 반 말려 있는 형태인 달팽이관에는 림프액이 가득 차 있다. 진동이 림프액을 자극하면 코르티 기관 속 2만여 개의 미세한 유모세포가 이를 감지해 전기신호를 생성한다.

이 과정에서 달팽이관의 바깥쪽 부분은 높은 주파수(고음)를, 안쪽 부분은 낮은 주파수(저음)를 감지한다. 소리라는 '공기의 진동'이 비로소 청신경이 해석할 수 있는 다양한 '전기 신호'로 바뀌어 뇌로 전달되는 것이다.

난청은 이 과정에서 특정한 부분에 문제를 겪는 상황을 의미한다. 진동을 증폭하는 외이와 중이 부분에 문제가 생기는 '전음성 난청'인 경우 보통 보청기를 착용한다. 외부 소리를 키워 주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이, 특히 달팽이관에 문제가 생기는 감각신경성 난청이다. 달팽이관이 기형이거나 유모세포 이상으로 고도·심도난청이 생기면 아무리 큰 소리를 들려줘도 제대로 된 소리로 인식하기 어렵다.

인공와우는 소리를 전기신호로 변환하는 과정을 대신하는 장치다. 귀 뒤에 걸거나 붙이는 '어음처리기'와 두개골에 이식하는 '임플란트', 달팽이관 속으로 삽입되는 전극으로 이뤄져 있다. 어음처리기가 외부 소리를 포착해 디지털 신호로 변환하고, 이 신호는 피부를 통과해 체내 임플란트로 전달된다. 임플란트는 신호를 전기자극으로 바꿔 전극을 통해 달팽이관 속으로 직접 전달하고, 청신경은 이를 뇌로 보낸다. 달팽이관의 역할만 대체하기 때문에 청신경이 정상 기능을 해야 수술이 가능하다.

1981년 설립돼 현재 전 세계 인공와우 시장의 70%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코클리어 관계자는 "신경다발마다 전기신호가 닿을 수 있도록 해 각자 다른 음역대 소리를 자극한다"며 "어린이에게 이식하더라도 최대한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도록 티타늄과 플래티늄 소재로 제작한다"고 설명했다.

수술만으로 끝이 아니다... '매핑'과 청각재활훈련 필수

귀 뒤쪽 두개골에 이식되는 인공와우 임플란트. 연결된 전극은 달팽이관에 삽입된다. 코클리어코리아 제공

귀 뒤쪽 두개골에 이식되는 인공와우 임플란트. 연결된 전극은 달팽이관에 삽입된다. 코클리어코리아 제공

인공와우 수술 후엔 재활 과정이 필수다. 아기가 태어나 처음 소리를 듣고 말을 배우는 과정을 인위적으로 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편하게 받아들이는 소리의 주파수와 범위가 달라 이를 맞춰주는 작업도 필요하다. 이때 적용되는 기술이 '매핑(mapping)'이다. 코클리어 관계자는 "매핑은 환자가 가장 자연스럽게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전기량을 조절하는 과정"이라며 "주기적으로 꾸준히 조율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소아 난청의 경우 장애를 인지한 뒤 최대한 빠른 인공와우 수술이 권장된다. 귀 안쪽 측두엽에 있는 청각피질은 오랫동안 소리 자극을 받지 못하면 쪼그라들기 때문이다. 난청 기간이 오래될수록 언어 습득과 재활이 어려운 이유다. 코클리어 관계자는 "최대 3세 이전에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해야 청각과 언어 중추 퇴화를 방지할 수 있다"며 "수술이 늦어질수록 정상적인 언어 발달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인공와우 수술을 받더라도 건청인이 듣는 것만큼 넓은 범주의 소리를 듣지는 못한다. 시끄러운 환경이거나 소리 크기 자체가 작은 경우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출시된 인공와우는 스마트폰 등과 연동돼 깨끗한 음질로 통화하거나 콘텐츠를 즐기는 것도 가능하다. 에린양의 경우 학교 교사들이 모두 마이크를 착용한 상태로 수업을 진행하고, 이 소리가 바로 에린양의 인공와우 어음처리기로 전달된다. 청각장애를 가진 학생이더라도 정상적인 학교 생활이 가능한 이유다.

최근엔 고령화로 성인 난청 환자가 증가하면서 인공와우 수술 중요성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프랭크 린 존스홉킨스 의과대 교수 등은 고심도 난청의 경우 치매 진단 확률이 5배나 높다는 연구결과를 2011년 발표했다. 사회로부터의 고립으로 우울증과 무기력 등 정신적 질환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코클리어코리아 관계자는 "난청 진료환자는 10년 전보다 56%나 증가했다"며 "소아 난청은 물론 성인 난청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곽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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