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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기소 분리 검찰청법 통과 "맹점 많아 취지 살릴지 의문"

입력
2022.05.02 04:0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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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확증편향 우려 입법 취지 공감하지만
"수사 실무 고려하지 않은 졸속 입법 실효 의문"
기관별 분리 아닌 검찰 내 수사·기소 형식적 분리
"부패범죄 수사 끝나면 옆방 검사에 공소 부탁?"

4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검찰청법 개정안. 오대근 기자

4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검찰청법 개정안. 오대근 기자

검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검찰청법 개정안이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국가 형사사법체계에 일대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2019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의 통과로 65년 만에 기소독점권이 깨진 검찰은 이제 수사검사가 기소를 직접 못 하는 제약도 받게 됐다. 다만 검찰에 부패·경제 등 지능형·권력형 대형 사건을 맡겨놓고 수사와 공소권을 분리하는 게 바람직한 것인지를 두고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개정안을 보면, 검사는 9월부터 직접 수사개시한 범죄에 대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검찰청법 제정 73년 만에 수사권과 공소권을 모두 쥔 검사에게 공소권 제약 조항을 새로 넣은 배경에는 기소를 염두에 둔 과격한 수사 과정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검사가 수사에 깊이 빠질수록 확증 편향에 사로잡히거나 오류 가능성을 간과한 채, 성과를 내기 위해 무리하게 수사하고 무리하게 기소해 인권침해를 낳을 위험이 크기 때문에 수사·기소 이원화로 이를 해소하자는 것이다.

검사는 현재 쟁점이 복잡하지 않은 대다수 일반 사건은 수사검사가 직접 기소하고, 동일 검찰청의 공판부 검사가 따로 공소유지를 한다. 다만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과 대장동 의혹, 대기업 수사 등 대형 사건에선 수사팀이 기소는 물론 직접 재판까지 들어가 호화 변호인단에 맞선다.

법조계와 시민단체 일각에선 비(非)수사 검사가 기소의 적정성 여부를 체크하는 것은 검찰 수사 통제 차원에서 유의미한 방향이라고 평가한다. 부장검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해외처럼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이 없기 때문에 수사 검사는 무리하게 목적을 달성하려는 유혹을 받는다"며 "노련한 기소 검사가 체크한다면 견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입법 취지와 달리 국회 다수당의 졸속 추진으로 실무상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예를 들어 검찰 직접수사 대상으로 남긴 부패·경제범죄를 반부패강력부에서 수사했다면 기소는 과연 누가 할 것인지, 피의자가 구속됐다면 수사검사와 기소검사가 기소 전까지 어떻게 업무를 쪼갤 것인지 정해진 게 없다.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에 찬성하는 쪽에서도 개정안의 맹점을 지적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정안은 수사와 기소 기관 분리가 아닌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에 방점이 찍혀 있어 '눈 가리고 아웅' 같다"고 비판했다. 중대범죄수사청 출범을 통해 수사와 기소 주체를 분리한 뒤 상호 협력과 공조체계를 강화하는 방향이 아니라, 검찰청 내 수사·기소 분리라는 형식적 구분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특정 검사가 수사하면, 공소제기는 부장검사나 같은 검찰청의 동료 검사가 '명의 대여' 형식으로 밀어붙이는 식이다. 검찰 내부망에도 "수사 상황을 그나마 잘 아는 옆방 검사에게 공소를 부탁하면 되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부패·경제범죄 사건은 직접 수사하도록 해놓고 기소 판단을 다른 검사에게 맡기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는 비판도 나온다. 수사기록이 수십만 쪽에 달하는 대형 사건의 경우 비(非)수사 검사가 기소 여부를 판단하려면 상당한 기간이 걸리고, 그 사이 자본을 앞세운 피고인 측의 대응만 탄탄해져 로펌만 거액을 쓸어담는다는 얘기다.

책임 소재가 흐려진다는 지적도 있다. 대검은 검찰청법 개정안 통과 뒤 "수사 검사는 권한만 행사하고, 기소 검사는 수사 과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재판 책임을 지는 부당한 결과가 나온다"고 문제 삼았다. 수사검사가 피의자의 구속만기 직전 또는 공소시효가 임박해 사건을 넘기면 '깜깜이 기소'로 억울한 피고인이 생길 수 있다는 비판도 빼놓지 않았다.

손현성 기자
김영훈 기자
문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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