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무한도전’ 유재석 찾았던 우토로 마을에 ‘평화기념관’ 들어섰다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기념관이 세워져 정말 기쁩니다. 조선인이 모여 있어 차별받고 고립돼 살았는데, 이제 기념관이 생겼으니 우리가 싸워온 역사를 기억하게 돼 조금이나마 한이 풀립니다. 한국에서도 많은 분들이 방문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30일 일본 교토부 우지시 이세다초 51번지에서 열린 ‘우토로 평화기념관’ 개관식. 한쪽에서 가슴 벅찬 표정을 짓던 우토로마을 주민 한금봉(83)씨는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한씨는 오사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교토 우지시의 우토로마을로 이주, 73년간 이곳에서 살아왔다. 그는 “내 사진도 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함께 찍은 사람들이 지금은 죽고 없어 눈물이 난다”며, 차별과 빈곤 속에서도 동포끼리 서로 돕고 어려움을 헤쳐 왔던 지난날을 떠올렸다.
이날 문을 연 지상 3층, 연면적 461㎡ 규모의 기념관은 재일동포들과 한일 양국 시민들이 힘을 모아 마을을 지켜낸 역사를 상세히 전하고 있다. 1층은 마을 주민이나 관람객, 학생 등의 교류 모임을 위한 카페로 꾸며졌다. 2층 상설전시관에선 차별 속에서도 민족 교육에 힘쓰며 고국의 정체성을 이어가려던 주민들의 노력과 강제 퇴거 명령을 받은 후 투쟁 과정 등을 사진과 패널을 통해 소개한다. 다듬이 방망이, 한글을 가르치던 책, 함께 사물놀이를 하던 장구 등 당시의 생활상을 전하는 물품도 전시돼 있다. 기획전시관인 3층엔 ‘우토로에 살았던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지난 2020년 별세한 고 강경남 할머니 등 세상을 떠난 주민들의 이야기를 소개해 놓았다. 기념관 앞마당에는 오랫동안 실제 거주했던 '함바'라고 불린 조선인 합숙 시설 일부 건물을 옮겨놔, 당시의 열악한 거주 환경을 느끼도록 했다.
우토로마을은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비행장 건설에 동원됐던 1,300명의 조선인 가운데 해방 후에도 고국에 돌아가지 못한 이들이 공동체를 이뤄 살아온 곳이다. 이들은 전후(戰後) 비행장 건설이 중단된 데다 일본사회의 극심한 차별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 열악한 환경에서 빈곤한 생활을 했다. 1980년대까지 상수도 시설도 없어 우물물을 먹을 정도였다. 1989년부터는 토지 소유권을 넘겨받은 업체가 강제 퇴거를 요구해 이들을 지원한 일본 시민단체와 함께 지난한 투쟁을 벌여야 했다.
오랫동안 재일동포의 고통에 무관심해 왔던 한국 정부가 우토로마을의 상황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에서 강제 퇴거 명령이 확정된 지 5년이 지난 후였다. 한국 정부의 지원금에 한일 시민들이 모금한 금액을 더해 2010년 우토로마을의 토지 3분의 1을 매입, 강제 퇴거는 면하게 됐다. 이후 2015년 TV프로그램 ‘무한도전’을 통해 우토로마을을 방문한 방송인 유재석은 당시 유일한 1세대 생존자였던 강경남 할머니에게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해, 우토로마을에 대한 한국의 관심이 늦었다는 점을 사과했다. 이날 만난 주민들은 그러나 “한국 정부가 정말 많이 도와줬다”며 “한국 정부와 여러분이 아니었으면 기념관을 세우지 못했을 것”이라며 감사를 표했다.
기념식에 참석한 조성렬 주오사카총영사는 축사를 통해 “한국과 일본 시민이 함께 협력한다면 한일 양국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장소”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강창일 주일한국대사는 배경택 총영사가 대독한 축사에서 “재일동포들이 고단했던 삶 속에서도 서로 돕고 희망을 지니며 살아 왔다”며 “앞으로 기념관이 지역 주민과 평화롭게 교류하는 공간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