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돼지 내장을 삶았다

입력
2022.05.01 22: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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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의료진으로서 언젠가 한 번 겪을 일이었다. 격리 준비 중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생각났다. 돼지 내장 삶기였다. 순대를 주문하면 나오는 내장이 좋았다. 염통은 묵직하고 간은 고소하고 소창은 쫄깃하고 위는 오도독했다. 소금에 찍거나 떡볶이 국물에 적시면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한정된 양 탓에 앞사람 눈치를 봐야 했다. 가끔은 내장이 떨어져서 순대만 먹기도 했다. 심지어 분식 값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었다.

어느 날 인터넷에서 2㎏ 내장이 배송비 포함 1만 원인 것을 발견했다. 200g에 1,000원꼴이었다. 여유가 생기면 주문해 원 없이 먹고 싶었다. 마침 식단을 마련하기 위해 망설이지 않고 결제를 눌렀다. 내장을 냉장고에 넣고 몸이 회복되길 기다리면서도 설렜다. 이튿날 안부를 묻는 어머니에게 자랑을 했다. "어머니 돼지 내장을 2㎏에 1만 원에 팔길래 주문했어요." 어머니는 부러운 눈치가 아니었다. "맛있지. 옛날 시골집에서 할머니가 시장에서 사와 삶아 주셔서 많이 먹었어. 그런데 냄새가 참 많이 났지."

불길했다. 어머니의 시골집에서 냄새가 많이 났다면 상당히 유의미했다. 하지만 고기는 당연히 잡내가 나는 것 아닌가. 호기심으로 얼른 내장을 삶기로 했다. 포장지를 뜯고 내용물을 개수대에 붓자 감이 왔다. 찐득하고 비렸다. 냄새가 뇌를 자극했다. "동물의 비린 냄새는 혈액에서 비롯된다. 내장은 혈액에 산소를 공급하거나 순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내장과 근육의 혈액 순환량은 차이가 크다. 도축 후 포장된 내장은 냄새가 심할 수밖에 없다."

아는 사실을 새로 배운 것 같았다. 내용물은 직업 탓에 명칭과 부위로 보였다. 양측 폐와 심장이 폐동맥으로 붙은 덩어리가 하나, 위의 단면이 하나, 쓸개를 제거한 간이 하나, 장간막이 붙어 있는 소장이 하나였다. 벌어진 좌심실 사이에 말라붙은 핏덩이가 있었고, 폐동맥이나 간문맥에도 피가 고여 냄새가 났다. 고무장갑을 끼고 핏덩이를 제거했다. 심장 내벽의 성긴 조직을 닦고 간문맥에도 손가락을 넣어 닦았다. 폐동맥과 주기관지 부근을 닦다가 기관지 내 혈전 제거를 위해 폐를 절개했다. 소장은 장간막을 펼쳐 닦았다. 냄새가 상당했지만 마음도 편치 않았다. 인간의 본성인지 직업 탓인지 알 수 없었다.

집에서 곱창집 냄새가 나고 있었다. 냄비에 소주, 마늘, 파, 후추, 커피, 월계수, 된장, 양파 등을 넣으면서 차라리 이것들을 직접 먹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적당히 삶아졌을 때 위장부터 꺼내 맛을 보았다. 확실히 비렸다. 폐를 썰어보니 숨어 있는 기관지에 혈전이 그대로 같이 삶아져 있었다. 주변 폐조직에서 푸석한 냄새가 났다. 간은 딱딱했고 심장은 비린 고기 맛이었다. 소장은 장간막으로 엉겨 붙어 낑낑대며 제거했다. 개수대와 도마가 기름투성이가 되었다.

간신히 플레이팅해서 식탁으로 가져왔다. 그동안 사먹은 내장 중에서는 가장 비린 것 같았다. 김치, 야채, 양념을 곁들이니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하지만 혼자 내장만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먹으니 전혀 신나지 않았다. 나는 몇 점 먹고 젓가락을 놓았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이 배웠다. 역시 엄마 말은 잘 들어야 한다. 돼지 내장은 사 먹어야 한다. 혼자 밥 먹으면 맛이 없다. 결정적으로 모든 일은 직접 해봐야 안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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